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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토퍼 베일리 신임 버버리 CEO |
최고경영자(CEO)의 연봉은 도대체 얼마가 적절할까?
영국에서 CEO들이 지나치게 높은 연봉을 받고 있는 데 대한 논란이 확산되면서 시민사회단체들을 중심으로 연봉을 법으로 규제하자는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소득불평등이 날로 심해지는 사회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 버버리 주주들, 신임 CEO 연봉에 뿔났다
영국 명품 패션브랜드 버버리가 신임 최고경영자에게 고액연봉을 지급하려던 계획이 주주반대로 무산됐다. 크리스토퍼 베일리 신임 버버리 CEO가 지나치게 많은 연봉을 받아가는 데 대해 주주들이 반기를 든 것이다.
고액연봉 논란의 주인공은 버버리 신임 CEO 크리스토퍼 베일리다. 1970년생인 베일리는 도나카렌과 구찌의 수석디자이너로 활동하다 2001년 버버리 크리에티브 디자이너로 발탁됐다.
버버리는 전통적인 ‘영국스러움’으로 영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명품 패션브랜드로 명성을 이어왔지만 1990년대 들어 위기를 맞았다. 버버리가 보수적 중장년층이나 입는 ‘늙은 옷’으로 인식되면서 브랜드 노화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더욱이 버버리는 무분별한 라이센싱과 기하급수적인 매장확대로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베일리는 침체에 빠진 버버리의 구원투수로 등장해 기존 버버리 이미지를 혁신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통적인 트렌치코트에 여성의 실루엣을 가미하는 등 버버리에 현대성을 입히면서 버버리의 폭발적 성장을 이끌어낸 것이다.
이런 성과 덕에 베일리는 전임 아렌츠 CEO가 애플로 이직하자 입사 12년 만인 지난해 10월 버버리 CEO 자리를 꿰차게 됐다.
그런데 그에게 회사가 제안한 연봉조건이 문제로 불거졌다. 베일리가 버버리로부터 받은 급여는 주식으로만 2천만 파운드(한화 약 346억 원)에 이른다. 그는 2010년 주식 35만주를 받았고 지난해 7월 100만주를 더 받아 모두 135만주를 받았다.
베일리는 이밖에 CEO로서 성과를 낼 경우 추가로 1천만 파운드를 더 받을 수 있도록 연봉계약을 했다. 또 연봉의 30%에 이르는 돈을 연금으로 받고 현금 성과급 44만 파운드(약 7억6200만 원)도 받도록 돼 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버버리 투자자들이 단단히 화가 났다. 취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베일리가 지나치게 고액의 연봉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50%가 넘는 주주들이 베일리에 대한 연봉지급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버버리가 최고경영진에게 고액연봉을 지급한 것은 베일리만이 아니다. 전임 아렌츠 CEO도 2012년 1690만 파운드(약 290억2500만 원)을 받아 영국증시 FTSE100 상장 350대 기업 경영진 가운데 연봉 1위를 차지했다.
기업들은 '스타 CEO'에게 천문학적 액수의 연봉을 지급하는 데 대해 문제될 게 없다고 주장한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에게 투자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최근 소득불평등이 심화되면서 계층 간 위화감이 더욱 커지고 있는 만큼 사회적 시선은 결코 고울 리 없다.
◆ 급여 상한선 법 제정 촉구하는 영국 시민단체
영국의 시민사회단체들도 버버리의 급여 지급방식을 문제삼으며 고위 경영진 급여에 상한선을 두는 법 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영국의 경영진 연봉 추적단체인 하이페이센터(High Pay Centre)는 “회사 근로자 최저임금에 연동해 고위 경영진 급여에 상한성을 두는 방안을 법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13일 보도했다.
이 단체는 자체 설문조사 결과 영국국민들 가운데 78%가 최저임금과 연동해 고위 경영진 임금을 제한하는 데 찬성했다고 밝혔다. 또 1990년대 말 20여년 동안 기업 고위경영자들의 임금이 180배 가량 증가했으며 이는 평균 근로자 임금상승률 60배에 비해 3배가 높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데보라 하그리브스 하이페이센터 이사는 “고위 임원들의 임금인상에 제동을 거는 것은 영국정부가 이제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할 이슈”라며 “정부가 어설프게 땜빵식 처방만 하다보면 영국 급여문화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고 강조했다.
영국보험인협회(ABI)와 ‘Pirc'라는 기업지배구조 개선 감시단체도 버버리의 급여 지급방식에 대해 투자자들이 분노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개선을 촉구했다.
영국에서 고위 경영진들이 고액연봉을 받는 데 대해 주주들이 반대한 것은 버버리가 처음은 아니다. 바클레이즈, 아스트라제네카, 피어슨, 레킷 벤키저, WPP 등 영국의 주요기업들에서도 주주들이 고위 경영진에 대한 많은 연봉지급을 저지한 적이 있다.
빈스 케이블 영국정부의 산업부장관은 2012년부터 상장기업들에게 3년마다 이사진 급여계획을 주주들에게 보고해 의결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경영진들이 지나치게 많은 급여를 받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를 만든 셈이다.
◆ 국내에서도 끊이지 않는 논란
국내에서도 지난 3월 주요 대기업들의 등기임원 연봉이 처음 공개됐다. 지난해 자본시장법이 개정된 데 따라 상장법인 등 기업들은 연간 5억원 이상 보수를 받는 등기임원의 보수내역을 금융감독원 사업보고서에 밝혀야 한다.
재벌 대기업의 연봉이 지난 4월 공개되면서 적정보수 수준을 두고 논쟁이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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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대기업 등기임원 공개연봉액 1위에 오른 최태원 SK그룹 회장 |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해 4개 그룹 계열사로부터 받은 급여 총액은 301억 원이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140억 원을 받았다.
그룹 총수들의 급여는 대기업 일반직원 평균 연봉의 300배에서 500배에 이른다. 전문경영인도 마찬가지여서 삼성전자 권오현 부회장의 연봉은 일반 직원보다 66배 가량 많았다.
대기업 임원 연봉이 공개되자 지나치게 높은 고액연봉에 대한 눈총이 따가웠다. 네티즌들 사이에서 “내 천년치 연봉을 받고 있는 걸 보고 박탈감을 느꼈다”거나 “로또를 맞아도 만져볼 수 없는 돈”이라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연봉 자체를 공개하는 데서 나아가 그만한 연봉을 받을 만한 실적을 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고 임원연봉 수준을 제한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야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야권은 당시 대기업 등기임원이 고액연봉을 받은 데 대해 비난하고 연봉 공개범위를 확대하기 위한 법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배임혐의로 구속된 임원이 하루 평균 1억 원을 받고, 수백억 원의 적자가 있는 데도 연봉 수십억 원을 챙기는 등 대기업 임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해 국민들은 허탈감과 상실감이 매우 크다”고 밝혔다.
그러나 신제윤 금융감독위원장은 지난 4월 국회 답변을 통해 대기업 임원연봉 공개범위를 현행 등기임원에서 비등기임원으로 확대하라는 요구와 관련해 "시기상조"라며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재계도 연봉공개 범위 확대에 대해 영업기밀과 사생활 노출을 이유로 강하게 반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