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현모 KT 대표이사 사장이 비교적 무난하게 연임에 성공할 것이란 애초 전망도 불투명해지고 있다. 구 사장의 연임이 성사하더라도 경영 불확실성은 가시지 않을 공산이 크다.
▲ KT 구현모 체제를 향한 정치권의 외풍이 거세게 불고 있어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사진은 구현모 KT 대표이사 사장.
3일 정치권에 따르면 KT를 비롯해 과거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기업과 금융지주회사 등의 지배구조 문제를 도마에 올리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소유분산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를 거론한 뒤 국민의힘에서 이 사안을 공론화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2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회의에서 “KT, 포스코, 거대 금융회사 등 소유 분산 기업의 대표이사들이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하며 토착화해 호족기업으로 변질시켜선 안 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소유 분산 기업 문제를 꺼내든 지 사흘 만에 여당이 호응한 셈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청와대에서 진행된 금융위원회의 업무보고에서 “정부 투자 기업 내지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되면서 소유가 분산된 기업들은 소위 ‘스튜어드십’이라는 게 작동돼야 한다”고 말했다. 보다 적극적으로 국민연금 등이 경영감시에 나서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KT 대표이사 연임에 도전하는 구현모 사장으로서는 정치권의 거듭된 압력에 부담이 커졌다. 구 사장의 연임 여부는 3월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결정된다.
구 사장을 겨냥한 외압은 지난해부터 계속됐다.
KT는 지난해 말 회사 내부의 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구 사장을 차기 대표이사로 단독 추천하려 했지만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지분율 9.95%)이 선발 방식의 공정성을 문제 삼으며 복수후보 경선을 다시 치러야 했다.
구 사장은 애초 대표이사 단독 후보로 추천됐을 당시 논란을 무마하기 위해 자진해서 복수 후보 심사를 진행할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KT 지배구조위원회는 14명의 사외 인사와 13명의 사내 후보자의 대표이사 적격 여부를 검토해 심사 대상자를 선정했고 7차례의 심사 과정을 거쳐 구 사장을 차기 대표이사 최종 후보자로 선정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이 결과에도 반대의 뜻을 밝혔다.
서원주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은 “KT 이사회의 대표이사 최종후보 결정은 최고경영자 후보 결정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경선의 기본원칙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연금은 3월 주총에서도 구 사장 연임에 반대 표를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
준정부기관인 국민연금공단뿐 아니라 대통령실, 여당에서 잇따라 구 사장 연임에 부정적 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더구나 정부·여당이 이 문제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만큼 KT를 향한 정치적 외풍은 지나가는 바람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구 사장이 KT의 경영을 맡은 뒤 줄곧 좋은 성적을 거뒀다는 점에서 애초 구 사장의 재신임은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KT는 지난해 연결기준으로 영업이익 1조7274억 원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구 사장이 임기를 맡기 전인 2019년 말과 비교하면 49.0% 늘어난 것이다.
구 사장 재임 기간에 KT 주가도 80% 가까이 상승하는 등 좋은 흐름을 보였다.
구 사장의 디지코(디지털플랫폼 회사) 비전도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구 사장은 2020년 취임 뒤 인공지능, 클라우드/데이터센터, 디지털전환(DX) 솔루션 등 B2B(기업 사이 거래) 사업을 앞세워 디지코 전환 전략을 추진하며 KT의 성장성을 높이는 일에 주력해 왔다.
통신사업 외로도 사업을 확장해 신성장동력을 확보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만큼 KT 주주들도 구 사장의 비전에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콘텐츠·미디어 사업 성과도 두드러진다. KT의 미디어자회사 KT스튜디오지니는 올해 ENA채널을 통해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방송해 최종화 기준으로 시청률 17.5%로 유료방송채널 가운데 올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정치권의 구현모체제 흔들기가 계속되면서 연임을 장담할 수만은 없게 됐다는 시각도 나온다.
주주총회에서 구 사장 연임에 힘을 실어 줄 우호 지분으로는 현대차그룹(현대차 4.7%, 현대모비스 3.1%), 신한은행(5.58%) 등이 꼽힌다. KT와 지분 맞교환을 한 곳들이다.
이들의 지분율을 합산하면 국민연금을 뛰어 넘는 만큼 구 사장이 표 싸움에서 불리하다고 볼 이유는 없다.
다만 윤 대통령과 여당이 KT의 지배구조에 문제를 제기하는 상황에서 두 기업도 정치권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국민연금은 신한금융지주와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의 지분도 다량 확보하고 있다.
정부·정치권의 여론전이 지속된다면 구 사장의 법적 리스크가 부각되며 소액주주 의사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구 사장은 황창규 전 KT 대표이사 회장 시절인 2014년부터 2017년까지 19·20대 국회의원 정치후원회 계좌에 회사 돈 수억 원을 불법 후원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21년 국회의원들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혐의로 약식기소돼 법원으로부터 벌금 1500만 원을 선고 받았고 현재는 1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구 사장이 연임에 성공하더라도 경영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을 수 있다. 과점 구조인 통신사업 특성상 정부의 규제 입김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데 정부·정치권 눈 밖에 난 구현모체제에서 KT가 불이익을 받을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구 사장의 연임 가능성이 불투명해지며 KT 기업가치가 흔들리는 것을 놓고 구현모체제 흔들기가 지나치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실제 서원주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이 구 사장 연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지난해 12월28일 KT 주가는 하루에 2450원(6.7%) 떨어지며 폭락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KT 주가는 3만원 대 초반에서 지지부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국민의 노후를 준비하는 국민연금이 구현모체제를 흔드는 일은 'KT 수익률을 낮춰 제 발등을 찍는다’고 볼 여지가 충분한 셈이다.
증권업계에서도 구 사장의 연임과 경영 불확실성을 KT 주가의 할인 요인으로 반영하고 있다.
김홍식 하나증권 연구원은 “구 사장 연임이 확정되도 경영 불안 양상이 지속될 수 있다. 이젠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소유 분산 기업의 지배구조 투명화를 강조하고 있다”며 규제 산업이란 특성을 감안하면 현재 경영진들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바라봤다.
이런 점을 고려해 김 연구원은 KT 목표주가 5만 원과 ‘강력 매수’ 의견을 철회하고 목표주가 4만5천 원과 투자의견 ‘매수’로 정정했다.
앞서 김 연구원은 구 사장 연임 가능성을 높게 보며 KT에 관한 긍정적 시각을 제시한 바 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