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선거구제는 정치개혁의 방안으로 오랫동안 거론돼왔지만 정당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실현되지 못했다.
▲ 8일 정치권에서는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두고 여여는 물론 개별 국회의원들의 입장 차로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4일 선거구제 개편 관련 국민의힘 비공개 긴급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의 언급 이후 정치권에서는 중대선거구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여야의 입장 차가 크고 지역구 조정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아 2024년 총선에서 도입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8일 정치권에서는 중대선거구제에 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논의에 불을 지핀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은 2일 조선일보와 신년 인터뷰에서 “중대선거구제를 통해 대표성을 좀 더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뒤 국민의힘은 중대선거구제 도입 논의를 가속화하는 모양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4일 국민의힘 소속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위원들과 선거구제 개편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긴급회의를 열었다.
주 원내대표는 민주당을 향해서도 중대선거구제 도입에 협조할 것을 요구했다.
주 원내대표는 5일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여러 복잡한 문제가 있고 지역구마다 사정이 달라 합의에 이르기 쉽지 않다"며 "민주당이 다음 총선 유불리를 따지지 말고 현재 한국 정치가 가진 문제를 극복할 제도가 무엇인지, 한국 정치가 나아갈 바람직한 방향에 부합하는 제도가 무엇인지만 보고 결정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아직까지 조심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언제든 기조가 바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상민, 이탄희, 전재수, 박주민 의원 등이 이미 중대선거구제 도입 법안을 각각 발의한 상태인데다 내부에서 중대선거구제 도입에 긍정적 견해를 보이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조응천 의원은 4일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서 "다당제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중대선거구제가 반드시 도입돼야 된다"며 "국회에서 논의가 지지부진해질 가능성이 있지만 제도적으로 보완해나가면서 중대선거구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대선거구제는 1개의 선거구 안에서 2명 이상을 선출하는 제도다.
현행 소선거구제는 1개의 선거구에서 가장 많이 득표한 1명을 선출하는 방식으로 다량의 사표가 발생해 대표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또 당선자가 1명으로 군소정당의 정치진입 문턱이 높아져 거대 양당체제를 강화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중대선거구제는 득표 순으로 2명 이상을 선출하기 때문에 사표를 줄인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소선거구제 하에서 2위 안에 들기 어려웠던 제3정당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져 지역주의 완화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중대선거구제를 도입을 두고 거대 양당의 셈법은 복잡하다. 현행 소선거구제에서 영남과 호남의 뿌리 깊은 지역주의 덕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의힘은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했을 때 민주당보다 실익이 적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은 PK(부산·경남)지역에서 2위로 당선자를 많이 배출할 수 있지만 국민의힘은 호남에서 2위 당선자가 나올 확률이 그만큼 적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3~4인 선거구제를 실시할 때 호남에서는 국민의힘이 (당선이) 안 되고 정의당이 당선될 가능성이 크다”며 “(반면) 민주당은 대구·경북과 부산에서 30%~40% 이상 나오기 때문에 (민주당) 당선 가능성이 커진다"고 바라봤다.
여기에 중대선거구제가 실시되기 위해서는 현재 253개로 나뉘어져 있는 지역구를 통합해 선거구 획정을 새로 해야 한다. 253명의 현역 국회의원들 관점에서 자신의 지역구가 사라질 가능성이 있는 중대선거구제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5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선거구를 광역화해서 복수의 국회의원을 뽑겠다면 행정구역 개편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민주당이 윤 대통령의 중대선거구제 발언 목적을 의심하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점도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현재 국민의힘이 열세인 수도권 지역 의석수 확보를 위해 ‘판’을 흔들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인영 민주당 의원은 5일 SNS에 “대통령이 중대선거구제를 꺼냈는데 불순하고 의심스럽다”며 “중대선거구제는 윤석열정권과 보수세력의 총선전략, 더 나아가 장기집권 책략으로 변질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재명 대표도 4일 최고위원회의가 끝난 뒤 질의응답에서 “(대선에서) 제3선택이 가능한 정치시스템이 바람직하다는 말씀드렸지만 그 방식이 중대선거구제여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사실상 부정적 견해를 내비쳤다.
여야 입장차와 의원들의 이해관계 등을 고려할 때 2024년 총선에서 중대선거구제가 도입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대두된다.
국민의힘 정개특위 간사를 맡고 있는 이양수 의원은 4일 기자들과 만나 “내년에 있을 선거에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는 것은 이해관계가 첨예하고 지역별로 유권자들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3일 KBS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중대선거구제 도입에 관해 "당장 내년 총선인데 지금 국회서 실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현역 의원들이 선거구가 줄어드는 것에 결사반대를 하기 때문에 성공하기는 굉장히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회 정개특위는 중대선거구제를 포함한 정치개혁 논의를 진행하기 위해 회의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민주당 정개특위 간사를 맡고 있는 전재수 의원실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1월 둘째 주 정개특위 정치관계법 소위원회를 열어서 중대선거구제를 포함한 선거제도를 논의할 예정"고 말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