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원내대표로 선출되며 세 번째로 원내대표 맡아
주호영은 2022년 9월19일 국민의힘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주호영은 원내대표 경선에서 투표 참여 의원 106명 가운데 61명의 지지를 얻어 이용호 의원(42명 지지)을 꺾었다. 주호영의 원내대표 임기는 2023년 4월까지다. 전임
권성동 원내대표의 잔여 임기 동안만 원내대표직을 수행하기로 했다.
주호영은 원내대표로 선출된 뒤 “제가 당을 앞장서 이끈다는 생각은 안 한다”며 “여러 사람이 논의하다 보면 가장 좋은 방법이 나오기 때문에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내대표 경선 결과를 두고 주호영이 예상보다 고전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원내대표 경선이 치러지기 전 주호영 원내대표 합의 추대론이 적지 않게 거론됐지만 이를 무색하게 할 만큼 이용호 의원의 득표 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주호영은 2017년 바른정당 원내대표, 2020년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에 이어 보수계열 정당에서 세 번째 원내대표를 맡게 됐다.
| ▲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022년 9월19일 원내대표로 당선된 뒤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직무정지
주호영은 국민의힘 지도부 공백을 메울 비대위원장으로 선임됐으나 얼마 못 가 물러났다.
국민의힘은 2022년 8월9일 전국위원회를 열고 대통령 지지율 하락 등을 위기상황으로 규정하고 당의 지도체제를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로 전환했다.
같은 날 오후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주호영을 비대위원장으로 추천했으며 국민의힘은 전국위원회 의결을 거쳐 그를 비대위원장에 공식 선임했다.
주호영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택된 데는 중진 의원으로서 당내 통합에 기여할 역량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대통령실과도 소통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평가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주호영은 2021년
윤석열 대선캠프에 선대위원장으로 합류한 것을 계기로 범친윤계로 분류돼왔다.
주호영은 8월16일 6명의 비대위원을 임명해 비대위 구성을 마쳤다. 하지만 8월26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법원에 신청한 국민의힘 비대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져 비대위원장으로서 주호영의 직무가 정지됐다. 법원은 국민의힘이 비대위를 설치할 정도로 비상상황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주호영은 법원 판결로 직무가 정지되자 “매우 당혹스럽다”며 “당의 비상상황 판단은 당이 자체적으로 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법원 판결에 대응해 당헌을 개정하고 새로운 비대위를 구성한 뒤 주호영을 다시 비대위원장으로 추대하려 했다.
그러나 주호영은 2022년 9월6일 기자회견을 열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게 좋다”며 비대위원장을 맡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결국 정진석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의 새 비대위원장에 선임됐다.
| ▲ 2021년 10월17일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오른쪽)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캠프에 선대위원장으로 영입된 뒤 윤 후보와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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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출범과 미래한국당과 합당에 기여
주호영은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시절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당의 제도체제로 정착시키고 미래한국당과의 합당을 매듭지으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2020년 5월 주호영이 원내 사령탑에 올랐을 때 미래통합당은 지도부 공백 상태였다. 황교안 대표가 총선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뒤 심재철 전 원내대표가 당대표 권한대행을 맡았지만 심 전 원내대표 역시 총선에서 낙선한 처지여서 정치력을 발휘하기 힘들었다.
주호영은 원내대표 당선인 신분일 때부터 지도부 공백 상태인 미래통합당에서 일찌감치 주도권을 쥐었다.
주호영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가 다음 지도체제로 적합하다고 판단했고 이에 관해 21대 국회의원 당선인들과 당원들을 설득하는 데 주력했다.
당시
김종인 비대위를 놓고 당내 ‘자강론자’들은 조기 전당대회를 여는 등 정상적 절차를 밟아 당대표를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종인도 충분한 임기와 권한이 주어지지 않으면 비대위원장직을 맡지 않겠다고 했다.
주호영은 2021년 4월 재보궐선거 때까지 비대위를 유지하는 안으로
김종인 비대위원장 내정자와 당내 의원들을 설득해 비대위를 출범시켜 당내에서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김종인 비대위 출범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미래한국당과의 통합도 이뤄졌다.
애초 미래한국당에서 단독으로 교섭단체를 구성하겠다거나 통합 시점을 미룰 수 있다는 말이 나왔지만 주호영은 신속히 당 지도체제를 정비한 뒤 일사천리로 통합을 진행했다.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시절
주호영은 21대 국회에서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로 활동했다.
2020년 당내 최다선(5선) 의원이 된 주호영은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했다. 러닝메이트인 정책위원회 의장 후보로는 3선의 이종배 의원을 선택했다.
주호영은 경쟁자로 나선 4선의 권영세 후보와 대결을 펼쳤는데 투표 결과 당선인 84명 가운데 59명의 지지를 얻어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주호영은 2020년 5월8일 원내대표 결선투표에서 당선이 확정된 뒤 “기쁨보다 책임감이 어깨를 누른다”며 “1~2년 안에 제대로 하지 못하면 우리는 역사에서 사라지는 정당이 될 것이라는 절박감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 '거대여당'인 민주당의 상임위원회(상임위) 독식,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립 법안 밀어붙이기 등 실력행사에 맞서다가 원내 사령탑에 오른 지 약 40일 만에 자진 사퇴했다가 복귀하는 등 시련을 겪었다.
보수정당 원내대표로서 국민통합 측면에서 의미 있는 행보도 보였다. 미래통합당 일각에서 나온 5·18 모욕 발언에 대해 사과한 일이 대표적이다.
주호영은 2020년 5월16일 입장문을 통해 "당 일각에서 정제되지 않은 발언으로 아물어가던 상처를 덧나게 했다"며 "5·18 희생자와 유가족, 국민께 매우 죄송하다"고 말했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해 보수정당의 변화를 강조하기도 했다.
주호영은 2020년 5월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진영논리에서 벗어난 리더십이 이 시대에도 필요한 것 같다”며 이라크 파병이나 한미FTA 체결 등에 관한 노 전 대통령의 결단을 치켜세웠다.
주호영은 세월호 유가족을 면담하기도 했다. 주호영은 2020년 7월23일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활동기간 연장, 대통령 기록물 열람 등의 문제에 관해 논의하면서 "도울 수 있는 부분을 검토해 돕겠다"며 "자주 소통하자"고 말했다.
주호영은 2014년 정책위의장 시절 '세월호 3법'으로 통칭된 '세월호 특별법’, ‘정부조직법’, ‘유병언법’ 등 3가지 법안의 국회 통과를 위한 3대3 여야 회동에 참여해 합의를 이끈 적이 있다.
주호영은 원내대표로서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안의 여야 합의 처리를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2021년 1월5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상 처벌 수위를 사망사고 발생 때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형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형으로 합의하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 뒤 1월8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안을 상정해 통과시켰다.
△자유한국당 복당 후 지역구 옮겨 당선
주호영은 2017년 11월 바른정당에서 탈당해 친정인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간 뒤 대구 수성구을 당협위원장을 다시 맡았다.
당시 주호영은 4선 의원이었는데 당내 4선 이상 중진들과 함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에게 중진회의 개최를 요청했지만 홍 대표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홍 대표는 중진의원들 면면이 당의 이미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라며 거절했다.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참패함에 따라 홍준표 대표가 자리에서 물러났다. 주호영은 중진인 까닭에 홍준표 대표 이후 당을 이끌 인물로 꼽혔다. 하지만 결국 한국당 지도체제는 김병준 비상대책위원회로 결정됐다.
주호영은 2020년 4월15일 치러진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구 수성구갑 선거구에 출마해 5선 고지에 올랐다. 원래 지역구는 수성구을이었는데 당 공천관리위원회의 요구에 따라 수성구갑으로 옮겨가 출마한 것이다.
주호영은 수성갑에서 민주당의 잠재적 대선주자로 꼽히는 김부겸 후보와 맞붙었다. 주호영은 총선 1호 공약으로 수성구 투기과열지구 지정 해제를 내놨다. 김부겸 후보가 뒤늦게 '한시적 투기과열지구 해제'를 제시하며 대응에 나섰으나 여론 주도권은 주호영에게 있었다.
개표 결과 주호영은 9만2018표(59.81%)를 얻어 6만462표(39.29%)에 그친 김부겸 후보를 크게 따돌리고 당선됐다.
주호영은 당선 확정 후 "수성갑에서 수성을로 옮겨 선거를 준비한 기간이 채 2달이 되지 않는데 압도적 지지를 해준 유권자에게 감사한다"며 "최다선 의원인 만큼 당이 전열을 가다듬어 국민 사랑을 받고 이를 토대로 2022년 대선에서 정권을 되찾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 탈당과 복당
주호영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을 세우는 데 참여했지만 결국 새누리당의 후신인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수면 위로 떠오른 2016년 말 무렵 주호영은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유승민 전 원내대표 등 비박근혜계 의원들과 함께 새누리당을 나와 가칭 ‘개혁보수신당’ 창당에 나섰다.
개혁보수신당은 이후 당 이름을 바른정당으로 확정한 뒤 의석수 33석의 국회 교섭단체로 세를 불렸다.
당시 주호영은 창당준비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바른정당 창당 과정에서 중책을 맡았고, 바른정당의 초대 원내대표로 추대됐다. 원내대표에 오른 뒤에는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과의 합당 논의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후 바른정당 대표였던 정병국 의원이 중도에 물러나자 주호영은 원내대표로서 당대표 권한대행까지 맡게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이 헌법재판소에서 최종 결정된 뒤 열린 2017년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바른정당은 유승민 의원을 대통령후보로 선출했다. 이때 주호영은
김무성 의원과 함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유승민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뒤 바른정당은 이혜훈 의원을 당대표로 선출했지만 이혜훈 대표가 금품수수 혐의를 받아 사퇴하자 주호영이 다시 당대표 권한대행을 맡게 됐다.
이후 주호영은 보수통합을 명분으로 바른정당을 탈당해 자유한국당에 복당했다.
19대 대선 이전에 바른정당에서 소속 의원 13명이 집단 탈당한 바 있는데 주호영은 2017년 11월6일 두 번째 집단탈당 때 동료 의원 8명과 함께 바른정당을 나왔고, 그로부터 3일 뒤인 11월9일 자유한국당에 복당했다.
△당대표에 출마했지만 선출되지 못해
주호영은 당대표 선거에 두 번 도전했지만 떨어졌다.
주호영은 20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고 새누리당에 돌아간 뒤 2016년 7월 당대표 선거에 출마했다. 당시 새누리당 대표 경선은 친박계(친박근혜)와 비박계의 대결 구도로 펼쳐졌다.
주호영은 당대표 경선 과정에서 정병국 의원과 단일화를 하며 비박계 단일 후보가 됐다.
주호영은 이정현, 이주영, 한선교 등 친박계 후보 3명과 경쟁했다. 하지만 2016년 8월9일 전당대회에서 3만1946표를 얻는 데 그침으로써 4만4421표를 얻은 친박계 이정현 후보에게 밀려 2위를 했다.
주호영은 2021년 5월10일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며 다시 한 번 당권에 도전했다.
하지만 당시 원내대표로 김기현 의원이 선출되면서 당 안에서 비TK(대구·경북) 출신 당대표가 선출돼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다. 또
이준석을 중심으로 세대교체론 바람도 거세게 불었다.
2021년 6월11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이준석 후보가 43.8%의 지지를 얻어 당대표로 선출됐다. 주호영은 14.02% 득표율로 3위를 기록하며 낙선했다.
△정계입문 뒤 친이명박계 활동
주호영은 판사로 일하다 2003년에 변호사를 개업했는데 이듬해인 2004년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돼 정치생활을 시작했다.
초선 의원일 때 대통령 후보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이 됐다. 이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 주호영을 직접 영입해 비서실장으로 삼았다.
이후 대선 때 이 전 대통령의 비서실 부실장으로 일했다. 이 전 대통령이 당선된 뒤에는 당선인 대변인을 맡았다.
주호영은 이명박 정부에서 승승장구했다. 2008년 재선 고지에 오른 뒤 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와 국회 운영위원회 간사 등을 지냈고, 2009년 신설된 특임장관에 오르기도 했다.
장관에서 물러난 뒤 한나라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소장을 맡았다.
주호영은 2012년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3선에 성공해 중진 의원 반열에 올랐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2013년 이후에도 주호영은 당 정책위원회 의장, 국회 정보위원장 등 굵직한 직책들을 맡았다.
2015년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서실 정무특별보좌관에 발탁됐다. 친이계였지만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일하며 친이계와 친박계의 다리 역할을 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친박계가 장악한 새누리당에서 주호영의 입지는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2016년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친박계가 친이계 등을 공천에서 배제하는 이른바 ‘공천학살’에 나섰는데 이때 주호영도 그 대상이 됐다.
주호영은 지역구인 대구 수성을에서 새누리당 공천을 받지 못하자 당에서 나와 무소속으로 출마해 친박계인 이인선 새누리당 후보를 꺾고 당선돼 4선 고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