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낸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사진)이 인생 2막에서 사회공헌을 향한 진심을 펼치고 있다. |
[비즈니스포스트] “이제부터는 그늘에 있는 사람들 더 돌보고 사회에 좋은 일 하며 살아가기로 했다.”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이 지난해 11월 두산그룹을 떠나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말이다.
박 전 회장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믿는다는 건 가르침대로 산다는 것. 그가 SNS에 남긴 고별사에 ‘이제부터는’이라고 말한 것은 믿음대로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담은 말이 아닐까.
2천 년 전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가르침을 남겼다.
박 전 회장은 서울 동대문 쪽방촌 사람을 ‘작은 자’로 섬기고 있다.
그는 9년간 일했던 대한상의 회장을 그만둔 뒤부터 매주 서울 동대문구 쪽방촌에 나간다. 직접 반찬을 만들어 어르신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한다.
박 전 회장의 쪽방촌 도시락 나눔은 6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2만 식이 넘는 도시락을 나눴다. 2015년부터는 가톨릭 단중독사목위원회가 하는 알코올 중독자들을 위한 도시락 봉사도 시작했다.
박 전 회장이 봉사를 시작한 것은 꽤 오래됐다. 2004년 친구를 따라 보육원에 갔다가 자신에게 달려와 안기던 아이들을 만난 충격이 그늘에 있는 이들을 섬기는 길로 이끌었다고 한다.
이와 함께 박 전 회장은 재단법인 ‘같이 걷는 길’을 통해 지역사회를 향한 봉사, 소외계층 구호사업 등 사회에 관한 기여에 힘쓰고 있다.
같이 걷는 길(옛 동대문미래재단)은 동대문 소상공인 지원을 통한 지역 상권 활성화와 지역 소상공인 상생을 실현하기 위해 2015년 10월 설립됐다.
특히 박 전 회장은 같이 걷는 길을 통해 동대문의 특성을 살려 소상공인과 함께 패션·문화 중심지로 만드는 데 힘을 싣고 있다. 이를 위해 민·관·학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공청회를 개최하고 꾸준히 지역민을 대상으로 한 컨설팅을 진행해오고 있다.
또 신생 디자이너들을 발굴·육성하기 위한 동대문 상가 공실의 작업실 지원, 언론·구매자 대상 패션쇼 지원, 두산타워와 연계한 팝업스토어 오픈 지원 등을 실시하고 있다.
이 밖에도 동대문 월간 정보지 ‘동대문 스토리’를 매월 제작해 배포하며 상권 활성화를 위한 홍보에도 여념이 없다.
박 전 회장은 예수님이 강조한 평화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 박용만 전 대한상의 회장이 2021년 10월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하고 있는 모습. <박용만 페이스북 갈무리> |
예수님은 “너희에게 평화를 두고 가며 내 평화를 주노라”고 했다. 이를 본받아 가톨릭 신자들은 미사에서 서로에게 “평화를 빕니다”고 축원한다.
박 전 회장은 그 가르침에 따라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겠다는 마음을 행동으로 옮겼다. 지난해 진행했던 평화의 십자가 전시회다.
박 전 회장은 갈등의 화합과 평화를 이끌어 내고자 휴전선 철조망을 이용해 십자가를 만들었다. 남과 북이 분단된 채 살아온 각각 68년의 세월을 상징하는 136개의 십자가는 로마 산티냐시오 성당에 전시됐다.
재벌가의 아들로 태어나 재계를 대표하는 대한상의 회장을 지냈지만 박 전 회장의 눈은 사회적 약자를 떠나지 않았던 듯하다.
이 시대의 ‘약자’인 청년들에 대한 관심도 그렇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청년 창업자 지원과 그들을 위한 규제개혁에 앞장섰던 이유도 그럴 것이다.
박 전 회장은 두산그룹에서도 임직원들을 두루 살피는 경영자였다고 평가받는다.
화제가 됐던 두산그룹의 ‘사람이 미래다’ 캠페인과 ‘젊은 청년에게 두산이 하고 싶은 이야기’ 광고는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과 함께 박 전 회장이 실제 언급했던 말을 기반으로 제작됐다.
박 전 회장은 ‘따뜻한 성과주의’를 핵심 전략으로 꼽고 사람을 중시하는 기업문화를 만드는데 노력했다. 두산그룹 안팎에 따르면 박 전 회장 시절 임직원 복지가 좋아졌다는 말도 있다.
박 전 회장은 지난해 초 인생의 소회를 담은 산문집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에서도 사회를 향한 자신의 철학을 내비쳤다.
“이 사회 구석구석을 다니고 보면 자신의 작은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그늘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그렇다고 나 같은 사람이 그분들의 목소리를 대신 앞장설 수는 없다. 그럴 자격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단지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정도는 게으름 부리지 않고 하는 것이 옳다는 정도의 생각이다” 장상유 기자
▲ 박용만 전 대한상의 회장이 한 양로원에 방문한 모습. <박용만 페이스북 갈무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