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표가 정치 공세의 방아쇠를 당겼으나 이를 여권이 비판하는 과정에서 친일사관 논란까지 번지며 파장이 커지는 분위기다. 여야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이 대표의 발언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된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1일 국회에서 열린 긴급안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 대표는 11일 국회에서 긴급 안보대책회의를 열고 최근 한미일 3국의 동해 합동훈련과 관련해 “대한민국이 일본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인정한다는 신호를 줄 수가 있다”며 “안보 위기를 핑계로 일본을 한반도에 끌어들이는 자충수를 중단해야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대표는 “이러한 문제들을 지적하면 여권은 수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김없이 시대착오적 종북몰이, 색깔론 공세를 펼친다”며 “해방 이후 친일파들이 했던 행태와 다를 바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최근 한미일 훈련을 '친일'로 규정하고 연일 수위 높은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지난 7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미일 동해 합동 훈련을 두고 “그야말로 극단적 친일 행위다”고 비난했다. 10일에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이재명TV’ 라이브 방송에 출연해 “욱일기가 다시 한반도에 걸리는 일이 실제로 생길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국민의힘 측도 ‘반미’, ‘친북’ 등 용어를 동원하며 이 대표를 맹비난하고 나섰다. 국민의힘이 과거 여러 차례 친일 논란에 얽혀 곤욕을 치른 적이 있는 만큼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모양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11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이 대표의 일본군 한국 주둔설은 문재인의 ‘김정은 비핵화 약속론’에 이어 대한민국 안보를 망치는 양대 망언이자 거짓말”이라고 받아쳤다.
정 위원장은 “‘친일 국방’은 죽창가의 변주곡이자 반미투쟁으로 가는 전주곡”이라며 “한미일 안보협력의 약한 고리인 일본을 먼저 치고 다음으로 한미동맹을 파탄 내겠다는 속내”라고 비난했다.
국민의힘 당권 주자들도 가세했다.
나경원 전 의원은 11일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초등학생도 알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이야기한다. 한마디로 선동질”이라며 “안보를 친일에 팔아먹었다니 하는 생각만 든다”고 질타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9일 페이스북에 “이 대표는 국민 생명을 지키는 데는 조금도 관심이 없고 북한 눈치나 보면서 친일 색깔론으로 정쟁을 부추기고 있다”며 “병역미필의 초선의원이 첫 상임위를 국방위로 택했으면 제발 국가안보에 대해 공부 좀 하기 바란다”고 적었다.
이 대표의 친일 발언은 새로운 논란도 야기했다. 정 위원장이 이 대표를 비판하면서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며 "조선은 일본군의 침략이 아니라 무능하고 무지해 백성의 고혈을 마지막 한방울까지 짜내다가 망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긴급안보회의에서 정 위원장 발언을 두고 "일제가 조선 침략의 명분으로 삼은 전형적 식민사관이라며 "귀를 의심케 하는 천박한 친일 역사 인식"이라고 비난했다.
국민의힘 소속 유 전 의원은 “이게 우리 당 비대위원장의 말이 맞냐"며 "이재명의 덫에 놀아나는 천박한 발언”이라고 바라봤다.
유 전 의원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은 왜 일어났고 이순신, 안중근, 윤동주는 무엇을 위해 목숨을 바쳤냐”며 “당장 망언을 국민에게 사과하고 비대위원장직에서 사퇴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도 SNS에 "전형적인 가해자 논리"라며 "고구려도 내분이 있었는데, 그럼 당나라의 침략으로 망한 것이 아닌가요?"라고 적었다.
이 대표의 '친일' 발언과 관련해 최근 여야 대치 정국과 자신을 향한 수사 지지층을 결집하고 대여 투쟁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에서 효과를 봤던 ‘반일 프레임’을 다시 꺼내들었다는 시선이 나온다.
양금희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9일 논평에서 이번 논란과 관련해 지난 정권에서 떠오른 ‘죽창가’를 소환하기도 했다. 죽창가는 문재인 정부 시절 일본의 수출 규제와 관련해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소셜미디어에 공유한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한 노래다.
다만 이 대표 발언이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아직 미지수다.
현재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도발에 이어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는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국제 정세가 과거와 달라진 상황에서 반일 프레임이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시선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도 11일 출근길 문답에서 북한의 핵위협을 거론하면서 "현명한 국민이 잘 판단할 것"이라고 '친일 국방' 비판을 일축했다.
이 대표가 정부여당에 효과적으로 맞서기 위해선 이념적 대립구도를 양산하는 것보다는 중도층을 잡기 위한 실질적 대안을 제시해야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친일 국방 논란 역시 지금과 같은 프레임 대결보다 북한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도록 남북 외교와 평화 정착에 관한 뚜렷한 철학과 준비된 정책 제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9월28일 대표 취임 후 첫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상대의 실패에 의존하는 대신 제1야당으로서 뚜렷한 경쟁력을 보여 대안정당이 되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그는 “저와 민주당부터 ‘반사이익 정치’가 아닌 ‘잘하기 경쟁’으로 희망을 만드는 정치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임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