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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중직에 기용
나경원은
윤석열 정부에서 미래 사회변화 대응과 관련된 직책들을 맡았다.
2022년 10월14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됐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패배한 이후 2년여 만에 공직을 다시 맡게 됐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전 인수위 시기부터 나경원은 외교부, 문화체육관광부, 중소벤처기업부, 환경부 등 여러 부처 장관 후보로 거론됐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에는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가 잇따라 낙마하면서 유력한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로 부상하기도 했다. 인사검증 동의요청서에 나경원이 직접 사인한 사실도 알려졌다.
하지만 입각이 이뤄지지 않다가 부총리급 직책으로 기용됐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대통령 소속 자문위원회로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는다.
나경원은 11월23일 취임 후 처음으로 인구미래전략 관계부처 차관회의를 주재하고 인구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그는 "인구미래전략 수립은 대한민국의 존망이 걸린 중요한 국가적 아젠다"라며 "복지 차원에서 추진되어 온 기존 대책과 달리 주택, 일자리 등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종합적 차원에서 제대로 된 저출산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나경원은 2022년 10월20일에는 대외직명대사직인 기후환경대사에 임명됐다. 대외직명대사는 전문성 있는 민간인사에게 1년 동안 대사 이름으로 외교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나경원은 2022년 11월7~8일 이집트에서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7) 정상회의에 대통령특사 자격으로 참석해 수석대표 연설을 하고 존 케리 미국 기후특사 등을 만나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 ▲ 나경원 특사가 2022년 11월8일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에서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7) 정상회의에서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외교부> |
△21대 총선 낙선 이후 입지 위축
나경원은 2020년 21대 총선에서 자신의 지역구에 다시 출마했지만 같은 판사 출신인 이수진 민주당 후보에게 패배하며 낙선했다.
최종 득표율은 45.04%로 20대 총선(43.40%)보다 오히려 높았으나 20대 때 민주당과 국민의당 후보로 표가 분산됐던 것과 달리 21대 총선에선 이수진 후보(52.16%)로 표가 모이면서 고배를 마셔야 했다.
2021년 1월 박원순 전 시장 궐위로 치러지게 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여성가산점 10%가 주어졌음에도 여론조사 100%로 치러진 당내 경선에서
오세훈 후보에게 밀려 탈락했다.
이후
오세훈 후보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선거유세에 나서는 등 지원해 오 후보의 서울시장 당선에 힘을 보탰다.
보궐선거 이후 당대표 출마설이 고개를 들었고, 2021년 5월20일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했다. 20~30대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이준석 후보와 양강구도를 형성하며 29% 득표율로 1차 경선을 통과했다.
본선에서는 1차 경선 때보다 당원투표 비율이 높아졌으나 나경원은 끝내 여론조사 열위를 극복하는 데 실패했다. 최종 득표율은 43.8% 대 37.1%로 6.7%포인트 차이였다.
이후 한동안 미국에 체류하다가 2021년 11월 대선 국면에 귀국했다.
윤석열 후보와 만나 공동선대위원장을 제안받았지만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12월6일
윤석열 후보 선대위 출범식에 참석한 모습이 포착됐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물러난 서울 종로 지역구의 보궐선거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공천되면서 없던 일이 됐다.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시절
나경원은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시절 원내 대여 투쟁을 이끌었다.
2018년 12월12일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서 비박계 복당파로 분류되는 김학용 의원을 68대 35의 큰 표차로 꺾고 원내대표에 선출됐다.
이는
박근혜 게이트로 입지가 좁아진 친박 세력의 부활로 풀이되기도 한다. 다만 나경원은 친박계로 분류되지 않는다.
나경원은 3수 만에 원내대표 도전에 성공했다. 2016년 5월 원내대표 도전 때는
정진석 의원에게 패배했고, 2016년 12월에는 정우택 의원에게 졌다.
나경원은 원내대표 선출 뒤 청와대의 민간사찰 의혹을 두고 강한 정치공세로 임종석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을 국정조사에 출석시켰다.
다만 국정조사에서 자유한국당이 결정적 질문으로 의혹을 파헤치기보다 청와대에 해명 기회만 줬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이 외에 김태우 전 특별감찰반원,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의 폭로와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투기 의혹 등을 집중적으로 다뤘지만 실질적 성과가 없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반대하며 관련 법안 제출을 제지하다가 곽상도, 장제원, 이은재 의원 등과 함께 검찰에 고발당하기도 했다. 이러한 강경 대응이 여당인 민주당에게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4+1 협의체를 구성해 법안을 처리하게끔 하는 빌미가 됐다는 시각도 나왔다.
반면 반대쪽에선 계파 갈등을 다소 누그러뜨리고 자유한국당 지지율을 방어하고 있다는 평가도 들었다.
나경원은 2019년 12월 원내대표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재신임 여부를 묻고자 했으나 황교안 대표 등 당지도부가 재신임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그대로 임기를 마쳤다.
| ▲ 2018년 5월31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6.13 지방선거에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출마한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 지원유세를 하고 있다. <나경원 페이스북> |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나경원은 2015년 2월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에 선출됐다. 외교통일분야 상임위원장에 여성 의원이 선출된 것은 나경원이 헌정 사상 최초였다.
나경원은 외교통일위원장에 선출된 뒤 남북관계를 풀어나가는 한편 북한인권법을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나경원은 남북 비공개 회담과 5.24 조치 완화를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의 핵 도발 등 군사도발이 연달아 일어나고 개성공단이 폐쇄되는 등 남북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으며 나경원의 남북관계 개선 노력은 퇴색됐다.
나경원은 경색된 한일관계를 풀어가려는 노력도 지속했다. 한일관계를 두고는 역사와 경제 문제를 분리해 대응해야 한다는 원칙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조선인 강제징용시설 유네스코 세계유산 추진을 두고 규탄 결의안 의결에 동참하는 한편 등재를 저지하기 위한 국내외 조처를 하는 데 힘을 보탰다.
한국과 중국의 자유무역협정(FTA)에 관해 여당과 야당의 합의를 이끌며 비준동의안을 처리한 것은 외교통일위원장으로서 거둔 중요한 업적으로 꼽힌다.
당시 여당과 야당의 협정 세부사항에 관한 의견 차이로 여당인 새누리당은 비준안을 단독으로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2015년 11월30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합의를 하며 비준안은 극적으로 통과됐다.
나경원은 외교통일위원장으로 있을 때 유난히 외교적 사건과 사고가 많았다.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테러를 당했고, 북한의 도발이 이어졌다.
여러 현안 가운데 한일 위안부 협정, 사드배치 논란 등은 그 뒤로 오랫동안 난제로 남았다.
△서울시장 도전
나경원은 2010년 서울시장에 출마하기 위해 한나라당 경선에 도전했으나
오세훈 후보에 패배했다. 나경원은
오세훈 캠프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오세훈의 승리에 기여했다.
나경원은 2011년
오세훈의 사퇴로 공석이 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다.
오세훈은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무산된 데 책임을 지고 서울시장에서 사퇴했다.
하지만 나경원은 박원순 후보에게 패배해 낙선했다. 46.7%의 득표율로 박원순 후보에게 7%포인트 뒤졌다.
선거 과정에서 피부시술 의혹 등이 제기되면서 정치적으로 타격을 받아 2012년 열린 총선에 불출마했다. 2014년 7월 재보궐 선거에서 동작을에 출마해 노회찬 정의당 후보를 꺾고 19대 국회에 입성하면서 정계에 복귀했다.
△판사 활동과 정계 입문
나경원은 판사 출신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판사 출신 대선배인 이회창의 권유로 2002년에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 특별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나경원은 이회창이 대선에서 패배한 뒤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지만 곧 정치권에 복귀했다.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에 위촉된 뒤 비례대표 11번을 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07년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대변인으로 활동하며 얼굴을 알렸다. 이명박 후보의 BBK 의혹 등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이명박 후보가 “BBK를 설립했다”고 말하는 동영상이 공개되자 “주어는 없다”고 한 발언이 화제가 되며 인지도가 크게 높아졌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서울 중구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다. 2010년 한나라당 최고위원으로 지도부에 입성하면서 보수진영의 간판 여성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