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희 기자 JaeheeShin@businesspost.co.kr2022-09-23 15:3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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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지난해 7월 공식적으로 '오너 2세 경영시대'를 연 농심그룹에 변화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신동원 농심 회장,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 신동익 메가마트 부회장 등 농심그룹의 2세들이 계열분리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 신동익 메가마트 부회장이 이달 들어 농심 지분 일부를 매각하면서 농심그룹의 계열분리설이 다시 피어오르고 있다. 농심그룹은 올해 4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돼 높은 내부거래 비중을 줄여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23일 재계에서는 농심그룹 창업자인 고 신춘호 농심그룹 명예회장의 셋째 아들인 신동익 메가마트 부회장이 최근 잇따라 농심 지분을 매각하는 것을 두고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과 함께 계열분리에 속도가 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신동익 부회장은 올해 9월에만 3차례에 걸쳐 농심 지분을 처분하고 있다. 신 부회장은 현재 농심 주식 13만5800주(지분율 2.23%)를 보유하고 있는데 올해 2분기 말 기준 15만 주(지분율 2.47%)에서 약 10%가 줄었다.
신춘호 명예회장의 장남인 신동원 농심그룹 회장은 지주사 농심홀딩스 지분 42.92%를 통해 농심그룹의 주요계열사들을 지배하고 있다. 농심홀딩스는 농심 32.72%, 율촌화학 31.94%, 태경농산 100%, 농심엔지니어링 100% 지분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둘째 아들인 신동윤 부회장은 율촌화학 19.36%, 농심홀딩스 13.18% 등의 지분을 가지고 있어 향후 율촌화학을 중심으로 계열분리할 가능성이 높다. 신동윤 부회장은 2017년 자신이 보유한 농심홀딩스의 지분을 신동원 회장에게 매각하고 농심홀딩스가 보유한 율촌화학의 주식을 따로 인수하는 형태의 지분 교환을 통해 율촌화학의 지배력을 강화했다.
셋째 아들인 신동익 부회장은 메가마트 지분 56.14%와 농심미분 지분 60% 등을 보유하고 있다. 메가마트는 엔디에스(지분 53.97%)와 농심캐피탈(지분 30%)을 종속회사로 두고 있다.
일찍부터 후계구도를 구축한 농심그룹의 계열분리는 농심그룹 2세들의 독립경영이라는 측면에서는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보인다.
다만 계열분리 이면에는 공정거래위원회의의 내부거래 규제를 피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농심그룹은 자산총액이 5조 원(2021년 말 기준)을 초과하면서 올해 4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지정됐다.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사익편취행위를 막기 위해 공정거래법을 비롯해 20개의 법률 규제를 받게 된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오너일가의 보유 지분이 일정 비율 이상일 때 내부거래 금액이 200억 원을 넘거나 혹은 내부거래 금액이 매출의 12% 이상을 차지하면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된다.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된 농심그룹으로서는 율촌화학, 농심미분, 태경농산 등 계열사와의 높은 내부거래 비중을 줄여나갈 필요가 생긴 것이다. 지난해 이들 계열사의 내부거래 비중은 율촌화학 39.3%, 농심미분 27.5%, 태경농산 52.5%으로 집계됐다.
농심그룹에서 이뤄지는 내부거래의 규모와 수준을 감안할 때 단기간에 내부거래를 줄이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농심그룹이 계열분리에 나설 수 있다고 바라보는 까닭이다.
계열분리를 통해 각각 독립 경영체제를 구축하면 자산총액 기준에 따라 대기업집단에서 제외돼 규제대상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농심은 지난해 4월 우일수산을 계열분리시키면서 공시대상대기업집단 지정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던 경험이 있다.
만약 농심그룹으로부터 율촌화학, 농심미분 등이 분리하더라도 율촌화학(포장재)과 농심미분(제분업체)은 농심그룹의 수직계열화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 거래는 계속해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재계에서는 농심그룹이 이미 계열분리를 위한 포석을 깔고 있다고 본다.
올해 7월 신동익 부회장은 23년만에 메가마트의 대표이사로 복귀하는 등 홀로서기 행보를 보이고 있다. 메가마트는 이날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 인근 프리몬트 지역에 미국 내 3호점을 열며 현지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또한 신동익 부회장은 지난해 의약품 유통 계열사인 뉴테라넥스의 서울 동대문구 토지를 41억 원에 처분해 유동성을 확보하고 메가마트 동래점에 풀필먼트센터를 구축하는 등 신춘호 명예회장 작고 이후 메가마트 사업을 꾸준히 재정비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메가마트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계열분리와 관련해서 논의된 것은 없다”며 “신 부회장의 대표이사 복귀도 책임경영 강화 차원이다”고 말했다.
메가마트의 계열분리는 계열사 엔디에스의 지분 변동을 통해 가늠할 수 있다.
엔디에스의 지분 가운데 신동원 회장 지분 15%, 신동윤 부회장 지분 11%각 각각 정리돼야 메가마트의 계열분리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율촌화학의 계열분리는 신동윤 부회장과 농심홀딩스의 지분 교환이 선행돼야 한다. 2022년 9월1일 기준 농심홀딩스는 율촌화학의 지분 31.94%를 보유하고 있고 신동윤 부회장은 농심홀딩스의 지분 13.18%를 들고 있다.
농심그룹은 다른 방식도 활용해 내부거래를 줄이고 있다.
올해 5월 메가마트의 완전자회사 호텔농심을 청산하고 농심이 직접 호텔사업을 운영하기로 했다. 호텔농심은 2021년 계열사 내부거래 비중이 약 45%에 이르렀는데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실적부진이라는 적절한 명분을 찾은 것으로 판단된다.
메가마트 역시 농심과 내부거래를 점차 줄이고 있다. 농심과 메가마트는 올해 2분기(5월 및 6월) 약 23억 원 규모의 상품용역거래를 한 것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당초 예상거래 금액 50억 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신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