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철 기자 dckim@businesspost.co.kr2022-09-04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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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회에 제출한 2023년도 예산안에서 문재인정부의 주요 사업 관련 예산이 대폭 삭감됐다.
'건전재정'을 들고 나온 추 부총리는 삭감된 항목들에 관해서는 ‘지출구조 합리화’라고 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임 정부 역점 사업들을 축소한 예산안이 순탄하게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4일 정치권에 따르면 윤석열정부의 2023년도 예산안을 두고 야당이 손을 많이 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어 국회 논의 과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민주당 당권을 거머쥔 이재명 대표는 2일 광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부자 감세를 막아야 하고, 서민 지원 예산을 삭감하는 것 역시 막아야 한다"며 "대여 협상을 통해 서민 예산을 최대한 복구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8월31일 최고위 회의에서도 "국민을 위한 예산인지 의문"이라며 부정적 시각을 내비치기도 했다. 심지어 "비정하다"는 표현까지 썼다.
정부가 8월30일 국무회의에서 확정한 2023년도 예산안은 639조 원 규모다. 2022년 본예산(607조7천억 원)보다 31조4천억 원이 늘어났다.
건전재정 기조로 전환하면서 본예산 총지출 증가율은 5.2%로 2017년 3.7%이후 6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보였다. 문재인정부의 총지출 평균 증가율은 8.7%였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의원 시절부터 꾸준히 재정 건전성을 강조해왔다. 야당 의원으로서 문재인 정부의 확장재정 기조를 여러 차례 비판하면서 관료 출신 재정전문가로서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윤석열정부에서 직접 재정을 책임지게 된 만큼 이러한 소신이 짙게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추 부총리는 2023년도 예산안 상세브리핑에서 “2023년도 예산안은 건전재정 기틀을 확고히 확립해 나간다는 기조 하에 편성했다”며 “건전 재정을 위해서는 ‘지출 재구조화’가 수반되는 만큼 사회 구성원의 양보와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추 부총리가 언급한 ‘지출 재구조화’에서 뉴딜사업, 지역화폐, 일자리예산 등 문재인정부가 역점을 뒀던 사업 관련 예산이 줄어든 점이 여야 사이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정부에서 대대적으로 내세웠던 ‘한국판 뉴딜 사업’은 2020년 탄생해 2025년까지 국비 114조 원이 투입될 계획이었으나 이번 예산안으로 크게 퇴조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예산안에서 문재인정부의 뉴딜 사업 가운데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직접 일자리 사업과 디지털 뉴딜 사업이 폐기됐다. 또 청년 추가고용 장려금, 고령자고용 환경개선 지원 등 25개 사업에서 8천억 원의 예산이 감액됐다.
‘국민참여 정책형 뉴딜펀드’에 투입되는 6천억 원 상당의 예산도 삭감됐다. 무공해 수소 승용차 보급, 스마트 공장 구축, 그린스마트 스쿨 사업예산도 각각 2621억, 1057억, 982억 원 감소했다.
지역화폐 예산은 전액 삭감돼 2023년 예산안에 반영되지 않았다. 지역화폐 관련 예산은 2021년 1조522억 원, 2022년 6050억 원이었다.
특히 지역화폐 사업은 이재명 대표가 성공시킨 대표적 정책인 만큼 국회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이 대표는 8월31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소상공인과 골목상권에 큰 도움이 되는 지역화폐 예산을 전액 삭감했더라”고 말하며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2일에도 "지역화폐 예산 삭감은 납득이 안 된다"며 "유통대기업 매출을 늘려주려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예산안 심의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지역화폐 예산을 두고 국회에서 민주당과 추 부총리의 기싸움도 펼쳐졌다.
박영순 민주당 원내부대표는 1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지역화폐 사업에 대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체감도와 만족도가 몹시 높다"며 "어떻게 (지역화폐) 예산을 전액 삭감할 수 있느냐"고 따져물었다.
추 부총리는 "교육청과 지자체에 11조4천억 원의 재원이 내려가기 때문에 지방정부가 선택적으로 운용하면 될 것"이라고 답했다.
박 의원이 "수도권이 아닌 재정자립도가 취약한 지자체에서는 국고지원이 중단되면 지역화폐 사업을 계속할 수 없다"고 지적하자 추 부총리는 "지역화폐 사업에 부담을 느끼는 지자체도 많다"며 맞받았다.
민주당은 2023년도 예산안을 혹평하며 국회 심의과정에서 증액을 벼르고 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정기국회가 열린 1일 정책조정회의에서 “정부는 경제위기로 기댈 곳 없는 어르신과 청년일자리 예산부터 줄이고 전 정부 중점예산이라며 소상공인 지역화폐도 삭감했다”며 “국민 근심은 아랑곳 않고 나라 빚을 줄인다는 ‘재정 우롱’ 기조도 바로잡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성환 정책위의장도 “(2023년도 예산안은) 아전인수를 넘어 자기모순 예산”이라며 “민주당은 감액된 민생 사업을 포함해 필요한 예산을 최대한 확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비판에 반박했다.
양금희 원내대변인은 8월31일 논평을 통해 “문재인정부처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복지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라며 “문재인정부의 흔적에 집착해 비판을 위한 비판을 일삼는다면 협치를 이룰 수 없다”고 말했다.
국회 예산안 심의는 각 상임위원회에서 소관 부처별 예산을 심사한 뒤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회부해 종합심사를 거친다. 현재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50명 가운데 민주당이 29명, 국민의힘이 19명을 차지하고 있다.
추 부총리도 야당이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예산안 심의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의식하고 있다.
추 부총리는 예산안 상세브리핑에서 “국회에서 얼마나 증감이 있을지 말씀드리기 어렵다”며 “정부 원안대로 심의되고 마무리될 수 있도록 이해를 구하는 데 최선을 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