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월20일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공장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윤석열 정부가 반도체산업 육성정책을 본격화하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 가능성이 더욱 커진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정부가 최근 한국의 ‘칩(Chip)4 동맹’ 참여를 권유하는 등 외교 문제에 있어서도 반도체가 주요 화두로 떠오른 만큼 이 부회장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20일 정재계에 따르면 정부가 8·15 광복절 특별 사면을 대규모로 추진하는 가운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이 사면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는 시선이 나온다.
특히
윤석열 정부가 ‘민간주도 성장론’과 ‘반도체산업 육성’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는 만큼 이 부회장을 사면해 국가 경제에 기여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다만 윤 대통령은 20일 출근길에
이재용 부회장의 8·15 사면 가능성과 관련한 질문을 받자 “사면은 일절 언급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며 말을 아꼈다.
정부는 최근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19일에는 교육부가 국무회의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마련한 ‘반도체 관련 인재 양성방안’을 윤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반도체 인재를 5년 동안 15만 명 양성하겠다는 계획으로 이를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삼성전자 등 기업과 협력해야 할 부분이 많다.
게다가 최근에는 반도체가 미국과 한국의 동맹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삼성전자에는 심각한 위기 요인이 되고 있다.
한국이 일본, 대만과 함께 미국이 주도하는 ‘칩(Chip)4 동맹’에 참여한다면 삼성전자의 매출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중국 반도체 수출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탈중국을 심각하게 고민해야하는 상황이 닥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윤석열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던
이재용 부회장이 '민간 외교관'으로서 역할을 확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부회장은 중국에 다양한 인맥을 보유하고 있는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도 여러 번 만나 투자를 논의해왔으며 지금까지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시 주석이 2025년 저장성 당서기 시절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을 방문했을 때 직접 안내하며 처음 인연을 맺었다.
삼성전자는 현재 중국 시안에 낸드플래시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중국은 반도체 최대 소비국이기도 한 만큼 이 부회장 입장에서도 미국 주도의 칩4동맹 가입에 따른 한국과 중국의 관계 악화를 반드시 막아야 할 필요성이 크다.
만약 한국이 칩4 동맹에 참여하지 않고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면 이 부회장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삼성전자는 현재 미국에서 파운드리 공장 증설을 준비하고 있고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보조금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가 의결은 앞둔 반도체법에는 미국에서 지원을 받은 기업들이 10년 동안 중국에 투자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전자가 최근 미국에 대관담당 임원을 연이어 영입한 것은 이와 같은 정치권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국내 반도체산업 투자 촉진을 위해서도 이 부회장의 사면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5월24일 삼성전자 뉴스룸을 통해 ‘역동적 혁신성장을 위한 삼성의 미래준비’라는 제목으로 450조 원 규모의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450조 원의 재원 가운데 80%가량은 연구개발 및 시설투자 중심으로 국내에 투자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투자계획이 제때에 실행되기 위해서는 이 부회장으로서는 운신의 폭이 더 넓어져야 할 필요성이 크다.
이 부회장은 사면이 아닌 가석방으로 풀려난 만큼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한 사내이사 취임 등 공식적 재취업이 5년 동안 불가능하고 거주지 이전 때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여러 제약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 출장도 2주 이상은 신고가 아닌 허가 대상이어서 해외에서 다양한 현안을 매듭짓는데 제약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가 2017년 이 부회장 주도로 하만을 인수한 뒤로는 대형 인수합병 거래를 성사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 부회장의 부재 때문이었다는 시선이 많다.
과거 국내 대기업 총수들은 특별사면을 받은 뒤 대규모 투자를 발표하거나 민간외교관으로서 활동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와 국가에 기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은 2009년 12월 대통령 특별 단독사면을 받은 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활약하며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일조했다. 2008년 8·15 특사로 풀려난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은 국내 협력업체와 공정거래협약을 맺으며 중소기업과 상생을 위한 행보를 보였다.
2015년 8월14일 광복 70주년 특별사면을 받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015년 경기도 이천에 15조 원을 투자해 반도체 공장 M14를 짓고 2018년 20조 원을 투입해 용인공장 M15를 건설하는 통 큰 투자를 단행했다. 이와 같은 투자는 국내 반도체 산업이 ‘규모의 경제’를 통해 글로벌에서 나갈 수 있는 발판이 된 것으로 평가된다.
여론도 이 부회장의 사면론에 긍정적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찬희 삼성 2기 준법감시위원장은 6월3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삼성 최고경영진·준법위 간담회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사면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는
최태원 회장은 “지금 경제가 어렵다 보니 좀 더 풀어줘서 활동 범위를 더 넓게, 자유롭게 해달라는 것”이라며 기업인 사면은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힘을 보탰다.
올해 6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만 18세 이상 성인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응답자 50.2%가 기업인 사면에 찬성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