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7월4일 국회에서 열린 제398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징계를 받아 사실상 실각하면서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에게 당대표로 가는 길이 열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더불어민주당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역임한 안 의원이 보수정당인 국민의힘 대표에 올라 정치사에 새로운 기록을 남기게 될지 주목된다.
10일 국민의힘 안팎에 따르면
이준석 대표가 당대표직을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을 전제로 차기 지도체제 시나리오가 다양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준석 대표는 당 윤리위원회의 징계 결정에 불복하는 태도를 보이며 가처분 및 재심 등 법적대응을 예고하고 있지만 이 대표를 향한 사퇴 압박이 거세지고 있어 수세에 몰린 상황이다.
김기현 전 원내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당대표로서 개인의 과거 문제로 촉발된 혼란에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지도자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며 "지금은 선당후사의 각오로 국민과 당을 먼저 생각할 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삶을 챙기고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해결하려면 임기응변 차원의 시스템으로는 역부족"이라며 "우리에게는 시행착오를 감수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여기서 '임기응변'은
권성동 원내대표의 '당대표 직무대행' 또는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된다.
권 원내대표가 직무대행을 맡거나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게 되면 연말 정도까지 임시 체제로 당을 운영한 뒤 이 대표의 기존 잔여임기가 6개월 안으로 들어서는 내년 상반기에 정식 전당대회를 치르게 된다.
김 전 원내대표의 발언은 비상시국인 만큼 임시체제 대신 정식으로 전당대회를 치러 당대표를 새로 선출하자는 것이다. 정기국회를 앞두고 8월28일 전당대회를 열어 전열 재정비에 나서는 민주당에 맞서려면 국민의힘도 지도체제를 하루빨리 안정시키고 국정 운영에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는 논리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대표 잔여 임기가 6개월 이상일 때 60일 안에 임시전당대회를 열어 당대표를 선출하도록 돼 있다. 다만 새 대표의 임기는 2023년 6월까지이기 때문에 2024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권을 행사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임기 1년의 당대표 역시 임시적 성격이 짙기 때문에 당헌·당규를 개정해 정식으로 전당대회를 치르고 임기 2년 당대표를 선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짧은 기간에 전당대회를 두 번이나 하게 되면 내분 양상을 보일 수 있는 점도 부담이다.
당내에선 당권 주자들이 물밑에서 경쟁 중이란 얘기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안철수 의원이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안 의원은 최근 '윤핵관'(
윤석열 핵심 관계자) 대표주자 중 한 명인
장제원 의원과 연대를 강화하고 있어 안 의원이 당대표를 맡고 장 의원이 당 사무총장을 맡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안 의원은 12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결정한 110대 국정과제를 공부하기 위한 당·정 연계 토론모임을 발족하는 등 당내 보폭을 넓히고 있다. 장 의원도 최근 코로나19로 멈춰있던 미래혁신포럼을 재개하고 9일에는 3년 만에 외곽조직인 '여원산악회' 모임을 다시 시작하며 세를 과시했다.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8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대선 과정에서 당시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 할 때부터 '정부 구성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당은 안 후보가 책임지게 해준다'는 밀약이 있었다고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며 "그 일환으로 눈엣가시가 됐던 이 대표를 이런 문제 삼아 팽하고 이후 전당대회에서
안철수 의원을 앉히려고 하는 게 아닌가 그렇게 의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 의원으로서는 임기에 상관없이 당대표가 된다면 꽃놀이패를 쥘 것으로 보인다.
임시 전당대회를 통해 당대표가 되더라도 내년 6월까지 전국 당협위원회 조직을 살피며 당내 기반을 다지는 동시에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을 수 있다. 여당 대표로서
윤석열 대통령과 자주 교감할 수 있다는 점도 정치적 메리트로 꼽힌다. 당 혼란을 잘 수습한다면 정식 전당대회에 재도전할 기회가 주어질 가능성도 열려 있다.
2년 임기의 당대표가 된다면 더욱 좋은 상황이 된다. 굴러들어온 돌인 안 의원으로서는 기존의 야당 정치인 이미지를 벗고 보수당 여당대표로서 당내 입지를 확보할 수 있는 데다 다음 총선 공천에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안 의원이 국민의힘 당대표가 된다면 1987년 이후 민주당계열과 보수당 양측에서 당대표를 역임하는 최초의 인물이 된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민주당과 국민의힘에서 당대표급인 비대위원장을 역임했지만 정식 당대표는 아니었다.
안 의원은 2013년 보궐선거에서 서울 노원구병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뒤 새정치연합 창당을 선언했다. 창당작업을 진행하던 중 2014년 3월2일 민주당과 통합 신당 창당을 발표하고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됐다.
다만 이 대표가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아들이고 징계가 끝난 뒤 당대표로 복귀하는 방안을 선택한다면 전당대회는 내년 6월 치러지게 된다. 안 의원의 당대표 도전도 이 대표의 선택에 따라 그만큼 뒤로 미뤄질 수 있다.
안 의원은 이 대표와 갈등이 깊은 만큼 이 대표의 거취에도 정치권의 시선이 모인다.
이 대표는 9일 페이스북에 디즈니 애니메이션 '포카혼타스'의 주제곡인 '바람의 빛깔'(Colors of the Wind) 번안곡 유튜브 링크를 공유했다.
'자기와 다른 모습 가졌다고 무시하려고 하지 말아요', '얼마나 크게 될지 나무를 베면 알 수가 없죠', '아름다운 빛의 세상을 함께 본다면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어요' 등 가사 내용이 현재 이 대표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대표는 2018년 지방선거 때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안철수 의원을 비판할 때도 이 곡을 이용했다. 이 대표는 2018년 바른미래당 서울 노원병 지역위원장이었던 안 후보가 '공천파동'을 일으켰다며 공개 저격했다.
이 대표가 윤리위 징계 전부터 자신에 대한 폭로 배후에 당내 친윤 그룹이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터라 해당 노래를 통해 안 의원과 당내 주류 세력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김남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