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정치

[Who Is ?]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

노녕 기자 nyeong0116@businesspost.co.kr 2022-03-23 10:20:00
확대 축소
공유하기
페이스북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네이버 공유하기 카카오톡 공유하기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유튜브 공유하기 url 공유하기 인쇄하기
생애
경영활동의 공과


△정권교체 성공과 대통령직인수위원장 선임
안철수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손잡고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2022년 3월9일 제20대 대선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48.6%를 득표해 47.8%를 득표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윤석열 후보가 근소한 표 차이로 승리했기에 막판 단일화로 윤 후보의 손을 들어준 안철수가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는 의견이 나왔다.

윤석열 당선인은 3월13일 안철수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윤 당선인은 “안철수 대표는 저와 국정운영 가치와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며 “안 대표도 인수위원회를 이끌 의지가 있고 저 역시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안철수는 인수위원회 구성에 깊이 관여했다. 전체 인수위원 가운데 3분의 1가량이 안철수 쪽 인사로 분류된다.

김도식 서울시 정무부시장(사회복지문화분과), 신용현 전 국민의당 의원(대변인),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기획조정분과) 등은 국민의당 출신이다.

신성환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경제1분과), 유웅환 전 SK 혁신그룹장(경제2분과), 고산 에이팀벤처스 대표(경제2분과), 남기태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과학기술교육분과), 백경란 성균관대 의대 교수(사회복지문화분과) 등은 안철수가 추천한 인사다.

안철수는 3월18일 인수위 전체회의에서 "우리에게 남은 53일간 휴일 없이 일해야 한다"며 "함께 일하는 새정부 동료로서 부처 공무원들과 서로 존중하는 마음을 지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Who Is ?]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
▲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2021년 10월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잔디광장 분수대 앞에서 제20대 대통령선거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20대 대통령선거 출마 및 후보 사퇴
안철수는 제20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했으나 완주하지 못했다.

2021년 10월1일 안철수는 대선 출마 선언식에서 “기득권 양당이 간판선수만 교체하는 정권교체는 구 적폐를 몰아낸 자리에 신 적폐가 들어서는 적폐 교대만 반복할 뿐”이라며 “이제는 5년마다 반복되는 악순환에서 탈출하기 위해 판을 갈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세 번째로 대선에 도전하는 것인데다 예전과 달리 지지율이 한 자릿수에 불과한 상황에서 쉬운 도전이 아니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했을 때 대선에 나가지 않겠다고 한 말을 번복했다며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었다. 이와 관련해 안철수는 “서울시장에 당선되면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안철수의 지지율은 초반에는 5% 안팎에 그쳤으나 시간이 지나며 10%를 넘기도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선거 과정에서 실언과 실수를 반복하고 국가 정책에 대한 이해 부족 등 결함을 드러내면서 중도층과 청년층 등 부동층 표심이 안철수 쪽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보수야권 단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단순 지지율만 보면 안철수가 크게 뒤처졌으나 보수야권 후보 단일화를 가정한 경우에는 안철수의 지지율이 윤 후보와 비등하거나 오히려 높았다.

안철수가 세 번째로 대선에 도전하는 데다 안철수와 윤석열 후보 중 어느 한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도 아니었기 때문에 단일화 방식과 조건 등에 관한 합의가 쉽지 않았다. 2022년 2월20일 안철수는 단일화 최종 결렬을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사이 지지율 박빙 판세가 선거 막판까지 이어지자 안철수는 정권교체라는 대의를 앞세워 윤 후보와의 단일화를 선택했다.

안철수와 윤 후보는 투표일을 6일 앞둔 3월3일 마지막 TV토론이 끝난 뒤 만나 새벽까지 회동하고 단일화에 전격 합의했다.

안철수는 대선후보에서 사퇴하고 국민의당은 대선 후 국민의힘과 합당하기로 결정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및 단일후보 선정에서 패배
안철수는 2020년 말 다음 대통령선거 출마 의지를 일단 접고 2021년 4월에 치러지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는 우회로를 선택했다.

안철수는 2020년 12월20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은 대선을 고민할 때가 아니라 서울시장 선거 패배로 정권교체가 불가능해지는 상황만은 몸을 던져서라도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정권의 폭주를 멈추는 견인차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5년 동안 주택 74만6천 호를 공급한다는 내용의 부동산 공약도 내놓았다.

안철수는 2021년 1월1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부에서 소외됐던 3040세대, 5060세대를 위해 주택을 공급하고 민간이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5년 동안 주택 74만6천 호를 공급하겠다”고 공약했다.

부동산 관련 규제완화 정책도 함께 내놓았다. 부동산 세금을 낮추고 고가주택 기준을 상향조정하는 등 세금부담 경감을 약속하면서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금융규제도 완화하겠다고 했다.

안철수는 민주당을 탈당한 금태섭 전 의원과 제3지대 후보 단일화를 먼저 이룬 뒤 보수야권 후보 단일화에 나섰다.

안철수는 국민의힘 후보로 확정된 오세훈 전 시장을 만나 단일화에는 뜻을 같이했으나 그 방식을 놓고 신경전을 펼치다가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기로 합의했다.

여론조사 결과 안철수는 보수야권 후보 단일화에서 오세훈 후보에게 패배했다.

안철수는 2021년 3월23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결과에 승복하며 야권 승리를 위해 힘을 보태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2021년 4월7일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보수야권 단일 후보인 오세훈 후보가 57.50%를 득표해 당선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안철수와 서울시 공동경영 약속에 따라 안철수의 비서실장을 지낸 김도식을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 발탁했다.

그러나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의 합당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안철수는 2021년 8월16일 기자회견을 열고 합당 결렬을 선언했다.

△보수 야권과 접촉면 넓혀
안철수는 21대 국회가 열린 뒤 점차 보수 야권과 접촉면을 넓혔다.

부동산정책이나 공수처 구성과 운영 등 주요 정치 쟁점에서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며 국민의힘과 공조체제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권 인사들을 향해 공격 수위를 높이는 한편 안보정책에서도 국민의힘과 비슷한 기조를 이어갔다.

국민의당과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 교류도 많아졌다.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와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국회 현안을 공유하고 당 차원의 연대 방안을 논의하는가 하면 두 당이 공동 연구모임인 ‘국민미래포럼’을 결성해 정책 토론을 진행하기도 했다.

안철수는 국민의힘을 향해 계속해서 ‘야권이 혁신경쟁을 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안철수는 2020년 9월23일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대한민국 미래혁신포럼’에서 ‘야권의 혁신 과제’를 주제로 강연을 하며 “지금은 선거 준비라든지 통합, 연대를 고민할 수준은 안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야권에 귀를 닫은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혁신 경쟁을 벌일 때”라고 덧붙였다.

안철수는 2020년 11월6일 국민미래포럼 초청강연에서 “야권재편으로 새로운 혁신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며 헤처모여식 야권 재편을 주장하기도 했다. 단순한 연대에서부터 신당 창당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정계개편을 제안한 것이다.

안철수가 보수야권과 접촉면을 넓히며 보수야권에 안착하기를 시도한 것은 총선에서 의석 3석을 확보하는 데 그치며 정치적 영향력이 크게 줄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더 이상 중도실용 노선을 고수하며 홀로서기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

△제21대 총선에서 국민의당 3석 확보
안철수는 실용중도 노선을 앞세우며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10~15석을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3석을 얻는 데 그쳤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020년 4월16일 확정한 선거 결과를 보면 국민의힘은 비례대표 정당투표에서 6.79%의 득표로 의석 3개를 확보했다.

안철수는 선거기간에 기득권 양당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겠다며 민심을 설득하는 데 주력했다.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언행일치’를 보여주겠다며 총선에 앞서 2020년 4월1일 여수 이순신광장에서 출발해 선거기간 중 국토대장정 마라톤 430km를 완주했다.

하지만 총선 결과 거대 양당 쏠림 현상은 심화했고 특히 더불어민주당은 180석에 가까운 의석을 얻어 거대 여당으로서 막강한 권한을 쥐게 됐다.

제20대 국회(2016~20년)에서 안철수는 38석의 옛 국민의당을 이끌었지만 21대 총선을 앞두고 새로 창당한 국민의당은 3석으로 쪼그라들었다.

안철수는 총선이 끝난 이틀 뒤인 2020년 4월17일 서울 마포구 국민의당 서울시장 사무실에서 열린 선대위 해단식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정치가 어떤 것인지, 약속을 지키는 정치가 어떤 것인지 국민의당이 꼭 보여드릴 것”이라며 “거대 정당들은 선거가 끝나면 끝났다고 생각하겠지만 선거가 끝난 지금이 시작”이라고 말했다.

그는 “투표하신 분의 6.8%, 거의 200만 명에 이르는 분들이 저희를 지지해주셨다”며 “마음속으로 지지하면서도 양극단의 진영 대결 때문에 할 수 없이 거대정당 중 하나를 찍을 수 없었던 그 마음도 저는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Who Is ?]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
▲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2020년 3월1일 오후 대구시 중구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코로나19 확진자 진료를 마친 뒤 비상대책본부 건물로 돌아가고 있다. <연합뉴스>
△대구에서 코로나19 의료봉사 활동
대구를 중심으로 코로나19가 급속도로 번져 큰 문제가 되자 안철수는 부인 김미경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와 함께 대구로 내려가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국민의당 공보실은 “안 대표가 대구 봉사활동의 시한을 정하지 않고 있다”며 “안 대표는 자원봉사 시민 대열 속에서 봉사활동에 참여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대구 의료봉사를 시작한 뒤 국민의당은 한동안 최고위원회의 등 당 일정을 잡지 않았다.

안철수는 성명을 내고 “코로나19에 속수무책인 정부를 지켜보면서 지금 국가가 제 역할과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국가는 보이지 않고 정부는 무능하지만 우리는 빠른 시간 안에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과 확신을 품는다”고 말했다.

안철수의 의료봉사를 두고 긍정적 평가가 많이 나왔다. 일부에서는 안철수가 의사로 일한 지 오래돼 그의 의사면허가 유효한지를 놓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안철수 측은 의사면허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해명했다.

박지원 민생당 의원은 KBS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이번에 안철수 대표 부부가 대구에서 의사로서 봉사한 것은 너무 잘한 일”이라며 “보수 대통령후보의 길을 뚜벅뚜벅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안철수가 의료봉사를 시작한 뒤 안철수의 대선주자 지지도와 국민의당 정당 지지도가 오르는 효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안철수는 과거에 대선주자 가운데 비호감도가 가장 높은 인물로 꼽히기도 했는데 의료봉사 이후로 호감도가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정계복귀 후 국민의당 창당
안철수는 2020년 1월 외국에서 돌아와 정치권에 복귀했다. 원래 소속인 바른미래당에서 정치를 재개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지만 곧 탈당한 뒤 신당 창당 작업에 들어갔다.

안철수는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3위로 낙선한 뒤 독일과 미국 등에서 유학하며 '정치적 휴식'을 취했는데 2019년 말부터 정치에 복귀할 조짐을 보였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안철수의 정치적 역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안철수는 2020년 1월2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정계복귀를 공식적으로 선언한 뒤 같은 해 1월19일 귀국했다. 귀국 당시 인천공항에서 만난 기자들에게 총선에 출마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귀국 다음 날인 2020년 1월20일 현충원 참배를 시작으로 정치 행보에 나섰다. 애초 바른미래당에 남아 정치활동을 이어나갈 의사도 있었지만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뜻을 모으지 못했다.

안철수는 손 대표에게 당대표에서 물러나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구성할 것을 요구했는데 손 대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안철수는 바른미래당을 탈당한 뒤 독자 정당을 만들어 정치활동을 이어가기로 했다.

안철수는 신당을 만드는 과정에서 ‘안철수신당’, ‘국민당’ 등의 이름을 내걸려고 했지만 모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정당 명칭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유권해석을 받았다. 결국 과거 창당에 참여한 적이 있었던 ‘국민의당’ 이름으로 신당을 창당했다.

보수진영은 안철수를 향해 끝없이 구애의 손을 내밀었다. 미래통합당이 구성되기 전부터 과거 안철수와 바른미래당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유승민계의 새로운보수당 쪽에서 안철수에게 합류를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과 그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도 안철수에게 힘을 합치자는 뜻을 보냈지만 안철수는 그때마다 ‘실용적 중도정치의 길을 갈 것’이라며 통합을 거부했다.

안철수는 “외롭고 힘들지라도 국민께 약속한 실용적 중도정치의 길을 가겠다”고 말하며 미래통합당 등과의 선거연대에 선을 그었다. 결국 안철수계 의원들 상당수는 지역구 출마를 위해 안철수의 국민의당에 함께하지 않고 미래통합당으로 넘어갔다. 권은희, 이태규 두 의원만 국민의당에 합류했다.

안철수는 2020년 4월 총선에서 국민의당에서 비례대표만 공천하고 지역구 후보는 따로 내지 않기로 했다.
[Who Is ?]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
▲ 안철수 국민의당 창당준비위원장이 2020년 2월20일 서울 마포구 케이터틀에서 열린 ‘자영업 침체 원인과 대안을 말하다’ 토론회에서 “4차 산업혁명 때문에 소상공인들이 처한 상황이 더 열악해질 가능성이 높아 국가 차원의 대비가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데 정부가 경제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은 안 위원장이 토론회에서 박수를 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독일과 미국 유학
안철수는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낙선한 뒤 같은 해 9월1일 독일로 떠났다. 독일 뮌헨에 있는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초청을 받아 방문연구원 신분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독일에 유학 간 뒤에는 국내 정치권과 특별한 교류가 없었다. 안철수의 측근들은 그의 복귀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했지만 안철수는 2019년 10월 독일에서 미국으로 거처를 옮겨 정계 복귀 시점이 더 불확실해졌다.

안철수는 2019년 10월6일 트위터에 "미국 유학 계획을 오래 전부터 세웠다“며 ”독일을 떠나 10월1일부터 미국 스탠퍼드 법대의 법·과학과 기술 프로그램에서 방문학자로 연구를 이어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안철수는 해외에서 유학하는 동안 저서 ‘안철수, 내가 달리기를 하며 배운 것들 – 인내하며 한 발 한 발 내딛는 삶에 대하여’를 출간했다.

안철수는 이듬해인 2020년 1월 한국으로 돌아와 정계에 복귀했다. 유학생활은 1년4개월 정도였다.

△서울시장에 출마해 3위로 낙선
안철수는 2018년 6·13 지방선거 때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지만 3위로 낙선했다.

그는 서울시장 출마를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자리에서 '서울의 혁신신화, 성공신화를 쓰겠다'고 강조했다. ‘바꾸자, 서울! 혁신경영 안철수’를 슬로건으로 내놓았다.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기술을 적용해 서울에서 사고와 재해, 범죄 예방 확률을 높이며 코딩 교육과 토론 교육을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에 도입하는 방안 등을 서울시장 공약으로 내놨다.

'일자리 넘치는 창업도시, 서울'을 목표로 창업을 막는 제도와 규제, 금융장벽을 낮추고 '디지털 행정혁신, 서울'을 위해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행정서비스를 마련한다는 방안도 제시했다.

'따뜻한 공동체 도시, 서울'을 만들기 위해 각종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만들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지하철 역사에 미세먼지 저감 시설을 설치하고 마을버스 노선을 늘리겠다고도 했다. 기존 서울시 행정의 약점으로 강남 집값과 미세먼지 문제를 거론했다.

하지만 2018년 6월13일 지방선거에서 안철수는 19.55%의 득표율에 그쳐 3위에 머물렀다. 1위인 박원순 서울시장(52.79%)는 물론 김문수 자유한국당 후보(23.34%)에도 밀리며 정치적 위상에 타격을 입었다.

안철수는 2018년 7월12일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성찰과 채움의 시간을 지니고자 한다”고 말했다.
[Who Is ?]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
▲ 2020년 1월27일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오른쪽)와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국회에서 만나 언론공개 행사를 마친 뒤 비공개 회동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바른미래당 창당하고 인재영입위원장 맡아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2018년 1월2일 비공개 회의에서 신설 합당 방식으로 합당하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다음 날 통합추진 협의체를 만들었다.

안철수는 유승민 전 바른정당 대표와 함께 통합추진위원장으로서 신당 창당에 힘썼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2018년 2월13일 원내 30석 규모의 제3당 ‘바른미래당’으로 출범했다.

안철수는 합당과 동시에 대표를 내려놓고 2선으로 물러났다가 한 달 만인 3월16일 인재영입위원장으로 복귀했다.

안철수는 인재영입위원장으로서 여러 인재들을 영입했다.

인천 송도국제도시 개발 특혜 의혹을 제기한 정대유 전 인천시 시정연구단장, 자유한국당에서 탈당한 전현직 지방의회 의원, 서진웅 전 삼양홀딩스 임원, 정수경 변호사, 조용술 꿈꾸는골목 대표, 용성욱 한국IT융합기술협회 부회장 등을 영입했다.

장성민 전 의원도 영입했다. 장 전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야당 총재 시절 비서를 지냈고 종합편성채널 TV조선에서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한 경험이 있다.

△국민의당 당대표로 복귀
안철수는 2017년 8월27일 국민의당에 새 대표로 복귀했다.

안철수는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민의당 전당대회에서 2만9095표(51.09%)를 얻어 대표에 선출됐다. 과반 득표율로 결선투표 없이 당선을 확정했다. 임기는 2019년 1월까지로 2018년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 등을 이끌게 됐다.

안 대표는 당대표 선출로 대선 패배 3개월여 만에 다시 정치 전면에 나서게 됐다. 당대표 선거 출마에 대한 당내 반발이 거셌지만 당원들의 재신임을 얻는 데 성공했다.

이번 당선으로 안철수는 국민의당의 창업주이자 간판임이 다시 확인됐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과 안 대표의 대선후보 시절 공약이 비슷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적폐청산과 개혁입법을 추진하는 데 초당적 협력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용기 자유한국당 원내수석대변인은 “문재인 정부가 인사청문 정국 등에서 오만한 인사를 할 수 있었던 건 국민의당이 보여준 자세, 처신 등과 무관치 않다”며 “문재인 정부의 독선, 독주를 견제하는 야권 공조를 굳건히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19대 대선에서 '뼈아픈' 참패
안철수는 2017년 5월9일 19대 대선에서 득표율 21.4%로 3위에 그쳤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41.1%,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24%를 얻었다.

안철수는 문재인 후보를 정면 공격하면서 자신과의 양자대결로 유도하는 전략을 구사했으나 결과적으로 이 전략은 실패로 돌아갔다.

텃밭으로 여겼던 호남에서조차 문 후보에게 큰 표 차이로 뒤져 참패해 지역적 지지기반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안철수는 대선 과정에서 국민의당 중심의 집권 전략인 ‘자강론’을 내세웠다.

안철수는 2016년부터 자강론을 주장했는데 2017년 3월 지지율이 오르면서 자강론이 먹히는 듯했다. 2017년 3월30일 발표된 리얼미터의 지지도 조사에서 안철수는 17.4%의 지지율로 안희정 충남지사를 끌어내리며 10개월 만에 2위에 올랐다.

안철수의 지지율이 오르면서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와 김무성 바른정당 고문 사이 물밑 라인을 통해 세를 모으던 중도·보수 통합론이 잦아들었다. 안철수는 2017년 4월2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서울·인천지역 순회경선에서 “정치인에 의한 공학적 연대론은 모두 불살랐다. 국민에 의한 연대, 그 길만이 진정한 승리의 길”이라며 인위적 연대론과 사실상 결별함을 선언했다.

2016년 20대 총선 때 민주당의 야권통합 요구에 맞서 “기득권 양당체제를 깨뜨리겠다. 광야에서 혼자 죽어도 좋다”고 외쳤던 것과 흡사한 태도였다.

△2016년 4·13 총선에서 국민의당 약진
안철수는 2016년 4·13 총선에서 ‘국민의당 돌풍’을 일으키며 최상의 결과를 얻었다.

국민의당은 선거 전 여론조사와 달리 정당명부 투표에서 새누리당에 다음가는 지지율을 얻어 전국정당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여세를 몰아 선거에서 38석이라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안철수 본인도 서울 노원구병 지역구에서 52.33%의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4·13 총선은 16년 만에 양당체제가 허물어지고 다당체제의 출발점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해 어느 당도 국민의당의 협조 없이는 법안 처리를 못하게 됐다. 국민의당이 '캐스팅보터'의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당은 호남에서 큰 성과를 거둔 것과 달리 그밖의 지역에서는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선거에서 획득한 국회 의석 38석 가운데 지역구 25석은 수도권 2석, 호남 23석이었다. 나머지 13석은 비례대표 의석이었다.
[Who Is ?]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
▲ 2016년 5월2일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당 최고위원회의에 국민대표 자격으로 참석한 고 신해철의 아내 윤원희의 '신해철법' 통과 촉구 발언을 듣고 있다. 왼쪽부터 천정배 국민의당 공동대표, 윤원희, 안철수 공동대표. <연합뉴스>
△새정치민주연합 탈당
안철수는 2015년 12월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탈당했다.

문재인 대표가 조선대 강연을 통해 문재인, 안철수, 박원순 3인체제로 지도부를 구성하자고 했으나 안철수는 이를 거부했다. 안철수는 혁신 전당대회를 역제안했으나 이번에는 문재인 대표가 이를 거부했다.

안철수는 당이 심각한 위기상황이라고 봤고 그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혁신 전당대회라는 타개책을 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안철수는 2015년 12월13일 국회 정론관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을 떠나 정권교체를 할 수 있는 정치세력을 만들겠다”며 탈당을 선언했다.

안철수는 “지금 야당은 국민께 어떤 답도 드리지 못한다. 세상을 바꿀 수도, 정권교체의 희망을 만들지도 못한다. 더 큰 혁신은 배척당하고 얼마 되지 않는 기득권 지키기에 빠져 있다”면서 문재인 대표를 비판했다.

△제19대 국회 의정활동
안철수가 제19대 국회(2012~16년)에서 발의한 18건의 법안 가운데 6건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당은 이를 두고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후보보다 의정활동을 훨씬 더 성실하게 한 증거라고 했다.

김유정 안철수 대통령후보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문 후보는 법안 4건을 발의하는 데 그쳤는데 그마저도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은 1건도 없다”며 “문 후보의 국회 상임위원회 출석률은 62%에 불과한데 안 후보는 출석률 85%를 넘는 성실함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안철수는 2013년 4월24일 서울노원병 지역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60.5%의 득표율로 당선되어 국회에 입성했다. 해당 지역구에서는 노회찬 전 진보정의당 의원이 삼성X파일 폭로 사건으로 의원직을 상실해 보궐선거가 진행됐다.

△제18대 대선에서 문재인에게 양보
안철수는 2012년 9월19일 제18대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안철수는 유력한 대선주자였다. 대선 전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근소한 차이로 1위를 달렸고 그 뒤를 무소속인 안철수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쫓고 있었다.

그러나 대선을 약 한 달 앞두고 문재인 후보가 안철수를 역전해 지지율에서 조금씩 앞서나갔다. 안철수는 2012년 11월23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후보 사퇴를 선언했다.

안철수는 정권교체를 위해 문재인 후보에게 양보한다고 밝혔는데 단일화 과정에서 문 후보 측과 여러 차례 마찰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에게 양보
안철수는 2011년 9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나오면서 화제에 올랐다.

안철수는 정치입문 가능성을 단호하게 부정하다가 점차 태도를 조금씩 바꿔 관심을 끌었다.

안철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현 집권세력이 역사를 거스르고 있는데 내가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결정을 내리진 않을 것”이라며 “야권 단일화에 참여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원순 변호사에게 양보해야 하는지,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서울대 융합대학원 원장직을 그만두게 되면 신의를 저버리는 것이 아닌지, 정치를 한다면 10년 정도는 꾸준히 해야 할 텐데 그럴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여지도 남겼다.

안철수는 결국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발표함으로써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인 박원순 변호사에게 사실상 양보했다. 박원순 후보는 정몽준 후보를 꺾고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무릎팍 도사’ 출연
안철수가 대중적 관심을 받은 것은 2009년 6월 MBC 예능프로그램 ‘무릎팍 도사’에 출연하면서부터다.

무릎팍 도사 안철수 편은 16.6%의 높은 전국 시청률을 보였고, 이를 계기로 안철수의 대중적 인지도가 하루 아침에 급등했다. 안철수는 당시 정치에 입문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안철수는 2010~11년 ‘시골의사’ 박경철 안동신세계 연합클리닉 원장과 함께 대학을 돌며 ‘지방대학 기 살리기’ 강연에 나섰다. 이를 본 법륜 스님이 청춘콘서트를 열자고 제안했고, 안철수는 이를 받아들여 대중과 소통을 늘리며 젊은이의 멘토 이미지를 확실하게 굳혔다.

청춘콘서트 열풍으로 인지도가 높아지고 젊은층에서 전폭적 지지를 받게 되자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할 뜻을 내보였다. 그러나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양보했다.

△안철수연구소 설립
1995년 3월15일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했다.

안철수는 사업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안철수연구소를 시작했기 때문에 처음 4년 동안에는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안철수연구소의 월급날은 매월 25일이었는데 월초부터 직원들의 월급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이었고, 안철수는 월급을 받지 않으면서 직원들에게는 월급을 줄 때도 있었다고 한다.

2년 뒤인 1997년 세계적 보안솔루션 업체인 미국의 맥아피(Mcafee)로부터 ‘1천만 달러’에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제의가 왔지만 거절했다.

안철수는 “회사를 매각한다면 그 후 직원들이 해고되어 실업자가 된다는 사실을 직시했고, 또한 한국의 백신이 맥아피 같은 해외 업체에 의해 장악당하는 그런 결과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절했다”고 밝혔다.

1999년 흔히 체르노빌 바이러스로 불리는 CIH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컴퓨터 백신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안철수연구소는 흑자전환했다. CIH 바이러스로 인해 국내에서 30만 대가량의 컴퓨터가 먹통이 되면서 기업과 공공기관 등에서 수천억 원의 피해가 발생하자 백신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이후 안철수연구소는 매출이 계속 늘어나 1999년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한글과컴퓨터에 이어 두 번째로 연매출 100억 원을 넘겼고, 나중에 세후순익 100억 원은 안철수연구소가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최초로 달성했다.

비전과 과제
평가/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어록

인기기사

글로벌 챗GPT 열풍, KT SK텔레콤 개발 한국형 챗봇 어디까지 왔나 나병현 기자
[채널Who] 포스코케미칼 롯데케미칼, 전고체 배터리 음극재 개발 '착착' 류근영 기자
[백브리핑] '국민차' 자리잡은 37세 그랜저, 해외에서는 왜 인기가 없을까 허원석 기자
하이투자 “챗GPT로 인공지능 대중화 성큼, 플리토 위세아이텍 주목” 조장우 기자
주류업계도 '헬시플레저' 열풍, 하이트진로 롯데칠성음료 '다운' 대결 신재희 기자

댓글 (0)

  •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 저작권 등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댓글은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등 비하하는 단어가 내용에 포함되거나 인신공격성 글은 관리자의 판단에 의해 삭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