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미국 바이든 정부에서 추진하는 52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지원 법안에 미국 의회의 관심이 낮아지면서 법안 통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고 있다.
삼성전자가 미국 정부 지원금을 기대하고 텍사스주 테일러에 대규모 반도체 파운드리공장 건설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계획에 큰 차질을 빚게 될 수도 있다.
10일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은 11월 치뤄지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각각 중요한 정치적 쟁점으로 떠오르는 문제를 앞세워 표심을 공략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여당인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들은 최근 텍사스주 학교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을 계기로 총기 규제 강화와 관련한 법안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추진하고 있다.
공화당 의원들은 바이든 정부에서 내놓은 반도체 지원법안을 지지할 수 없다며 자체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들어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해부터 현지 반도체공장 및 연구개발센터를 건설하는 기업에 520억 달러(약 66조 원) 규모 지원금과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반도체 지원법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왔다.
미국 반도체 공급망을 안정화하고 중국의 반도체산업 발전을 견제하겠다는 목적이다.
그러나 상원의회와 하원의회 사이에서 해당 법안의 구체적 내용과 지원 대상 등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면서 법안이 장기간 계류된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중간선거가 가까워져 해당 법안에 관련한 의회의 관심이 멀어지면서 결국 올 여름 회기 종료와 함께 법안이 자동적으로 폐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바이든 정부는 이미 해당 법안 도입을 예고한 뒤 삼성전자와 인텔, 대만 TSMC의 미국 내 대규모 반도체 생산공장 투자를 유치하는 성과를 냈다.
미국 정부와 의회가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한 데다 해당 법안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점차 작아지고 있어 다시 법안 도입이 추진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해당 법안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로비스트들은 바이든 정부에서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결국 미국 반도체공장 투자를 결정한 삼성전자 등 반도체기업이 바이든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기존의 투자 계획을 계속 추진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에 놓이고 있다.
▲ 삼성전자 텍사스주 오스틴 반도체 파운드리공장 내부. |
니케이아시아 보도에 따르면 류더인 TSMC 회장은 8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미국 반도체공장 투자 비용이 이전에 계획했던 것보다 더 많이 필요할 수도 있다”며 “미국 정부에 더 많은 지원을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미국 반도체 파운드리공장 건설 과정에서 정부 지원을 받기 어려워진 상황을 고려해 내놓은 발언으로 해석된다.
TSMC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120억 달러 규모의 투자 계획을 내놓았고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 반도체공장 건설에 17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오스틴 반도체공장 증설을 염두에 둔 텍사스주 차원의 투자 지원 신청계획도 별도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 등 반도체기업이 미국 투자를 결정하며 기대한 것과 달리 정부 차원의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비용 부담이 커져 투자 계획에 차질이 발생할 수도 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공장 투자 규모를 기존 계획보다 줄이거나 지원 방안이 확정될 때를 기다려 투자 계획을 늦추는 등 전략에 변화를 추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파운드리 경쟁사인 TSMC와 인텔은 각각 일본과 대만, 유럽 등 세계 각지에 잇따라 새 반도체공장 투자 계획을 내놓고 동시에 여러 건의 투자를 벌이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는 한국 이외에 미국에만 새 파운드리공장 투자 계획을 확정한 만큼 미국 정부의 지원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커지면 상대적으로 더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바이든 대통령과 지나 레이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은 최근까지 여러 공식석상을 통해 미국 의회에 조속한 반도체 지원법 통과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은 최근 한국을 방문해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공장을 둘러보며 미국 공장 투자 결정에 감사하는 뜻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러나 해당 법안이 이미 의회의 관심에서 멀어져 ‘찬바람’을 맞고 있는 만큼 미국 정부가 반도체 지원법 도입 논의에 다시 군불을 지피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블룸버그는 “삼성전자와 인텔, TSMC가 미국 정부 반도체 지원법에 최대 수혜기업으로 꼽혔다”며 “이들은 새 반도체공장 투자가 의회의 보조금 승인과 관련되어 있다는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