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 메모리 반도체 공장을 두고 있고 최대 수출국도 중국인 만큼 이재용 부회장의 머릿속이 복잡할 수 있다.
20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재용 부회장은 이날 오후 5시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을 방문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직접 안내하고 세계 최초로 양산되는 3나노 공정의 차세대 반도체도 선보인다.
삼성전자는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3나노 공정에 사용되는 반도체 웨이퍼에 방명록 사인을 남길 수 있도록 하는 행사도 준비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과거에도 반도체 웨이퍼 위에 방명록을 남기도록 하는 행사를 진행한 적이 있으며 이번에도 그와 같은 식순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방한일정의 첫 행선지로 삼성전자 평택 공장을 선택한 것은 미국의 반도체 패권 유지에 삼성전자와 협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이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21년 글로벌 반도체 시장점유율 12.3%로 12.2%를 기록한 미국 인텔을 0.1%포인트 차이로 제치고 1위에 올랐다.
특히 이번에 바이든 대통령이 방문하는 평택캠퍼스는 축구장 400개를 합친 규모의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기지다. 평택 1라인(P1)과 2라인(P2)은 이미 가동되고 있으며 건설 중인 3라인(P3)은 올해 하반기에 완공된다.
이 부회장에게도 바이든 대통령의 삼성전자 공장 방문은 매우 중요하다.
삼성전자는 현재 미국 텍사스주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 건설에 20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확정하고 미국 정부의 지원법안을 기다리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520억 달러(약 67조 원) 규모의 반도체 지원법안을 추진하고 있는데 아직 미국 의회에 계류돼 있다. 지원법안 가결이 계속해서 미뤄진다면 삼성전자는 예산 책정 등 계획 수립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부회장이 이번에 차세대 3나노 공정을 바이든 대통령에게 소개하는 것도 한미 반도체동맹의 필요성을 부각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애플 등 주요 미국 팹리스(반도체설계) 기업들은 시스템반도체 생산을 대만 TSMC에 의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과 대만 사이에 군사적 긴장이 높아진다면 당장 미국 기업들의 반도체 조달에도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는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안정적인 반도체 공급망을 확보하려는 바이든 정부의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지는 시나리오다.
따라서 미국은 반도체 공급망을 다양하게 확보할 필요성이 큰데 삼성전자가 이번에 최첨단 3나노 공정 기술력을 인정받는다면 미국에서도 TSMC의 대안으로 삼성전자가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바이든 정부는 현재 일본, 대만, 한국 등 동맹국과 손잡고 미국의 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도 중국을 제외하고 동맹국과 함께 글로벌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해석된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크리스티아노 아몬 퀄컴 최고경영자(CEO)도 평택 공장에 방문하는 만큼 이 부회장으로서는 더욱 심혈을 기울여 이번 행사를 준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퀄컴은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의 최대 고객사 가운데 하나이며 삼성전자의 3나노 공정을 가장 먼저 활용할 외부기업으로 꼽힌다. 퀄컴은 2022년 초에 출시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스냅드래곤 8 1세대’의 생산을 삼성전자 4나노 공정에 맡기기도 했다
▲ 삼성전자의 중국 시안 반도체공장.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방문이 이 부회장과 삼성전자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시선도 있다.
미국은 결국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와 반도체 동맹을 강화하려 하고 있지만 삼성전자에게 중국은 가장 큰 시장이기 때문이다.
2021년 중국의 반도체 수입은 4686억 달러로 원유 수입 2550억 달러의 약 1.8배이고 2020년 세계 반도체 수요 중 중국의 비중은 생산국가 소재지 기준 60%에 달할 정도로 크다. 2021년 우리나라의 반도체 수출액 가운데 중국 본토 비중은 39%이고 홍콩을 포함하면 60%까지 늘어난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2014년부터 중국 시안에서 메모리반도체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시안 공장은 삼성전자의 유일한 해외 메모리반도체 생산 거점으로 전 세계 낸드플래시 생산량의 10%를 차지한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 등 한국 반도체기업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본부 전문연구원은 “지금까지는 우리나라를 제외하고 메모리반도체를 대체 생산할 수 있는 국가가 없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을 유지하며 반도체 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이 가능했다"며 "하지만 반도체 공급망이 재편된 뒤에는 모호한 중립 유지는 어려워질 것”이라고 바라봤다.
이에 김 전문연구원은 “미국이 추진하는 반도체 동맹 참여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반면 삼성전자가 전략적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중국의 반도체 기술전문가 푸리앙 연구원은 과거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 인터뷰에서 “삼성전자에게 미국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과 중국시장을 공략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며 “둘 다 포기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고 분석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