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공정거래위원회가 두 기업의 기업결합을 조건부로 승인하면서 합병이 순탄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해외 경쟁당국의 심사가 지연되면서 올해 안에 결과를 받아들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19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 승인에 미국 당국의 심사가 큰 변수로 떠올랐다.
미국 법무부는 3월 두 회사의 기업결합 심의 수준을 ‘간편’에서 ‘심화’로 격상하고 심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법무부가 간편심사 대신 심화심사를 선택한 것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이 경쟁제한성 우려가 크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항공 자유화국가로 운수권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항공업계에서는 미국에서는 비교적 무난히 심사를 통과할 것이라고 봤지만 상황은 기대와 다르게 흘러가고 있는 셈이다.
미국 2위 항공사인 유나이티드항공이 미국 법무부에 경쟁제한성 문제를 제기한 점이 심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한항공은 미국 델타항공과 ‘스카이팀’, 아시아나항공은 유나이티드항공과 ‘스타얼라이언스’로 항공동맹을 맺고 있다.
유나이티드항공은 만약 아시아나항공이 기업결합으로 스타얼라이언스에서 빠지게 되면 그동안 아시아나항공이 맡아왔던 북아메리카 노선과 중국·동남아시아 경유 노선에서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유나이티드항공은 아시아 주요 파트너사를 갖고 있어 아시아나항공의 스타얼라이스 이탈에 따른 영향이 미미하다"며 "특히 유나이티드항공은 아시아 내 대형항공사인 싱가포르항공과 전략적 협력을 통해 아시아 내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 회장이 4월 한 행사에 참석해 대한항공이 미국 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강조한 것도 이처럼 미국의 기업결합 심의에서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조 회장은 4월21일 열린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주최로 열린 '국내 기업환경 세미나 2022'에 참석해 "대한항공이 심각한 재무적 어려움에 빠진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함으로써 미국 경제에 대한 기여도를 높일 수 있다"며 "아시아나항공이 운항을 중단할 경우 발생할 손실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달 영국의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즈(FT)와 인터뷰에서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은 경쟁이 치열한 아시아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불가피한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중국과 유럽연합은 당초 예상만큼이나 심사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10월 중국에서 기업결합 신고를 철회했다가 재신고했다. 중국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의 결합심사는 270일 동안 이뤄지는데 최종 결론이 나지 않으면 심사신고를 철회했다가 재신고를 해 절차를 다시 진행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특히 중국은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주요 노선의 독과점 여부를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결합하면 서울~중국 장자제, 서울~시안, 서울~선전, 부산~칭다오, 부산~베이징을 오가는 5개의 노선에서 경쟁제한성이 발생할 수 있다.
중국은 그동안 자국 항공산업 육성·보호를 위해 해외 항공사에 운수권이나 슬롯을 배분하는 데 보수적인 태도를 보여줬던 만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승인을 반대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말까지 나온다.
유럽연합 심사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유럽연합은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당장 독과점 가능성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운수권·슬롯을 배분해야 승인을 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과 관련해 공정위도 1년1개월만에야 조건부 승인으로 결론을 냈는데 해외에서도 기업결합 승인이 지연되면서 조 회장은 올해 안에 그동안 꿈꿔온 '메가 캐리어' 달성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조 회장은 그동안 여러차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조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2022년은 대한항공에 매우 중요한 해가 될 것”이라며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과 함께 대한항공이 글로벌 메가 캐리어로 나아가는 원년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해외 경쟁당국의 심사가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대한항공은 표정관리를 하고 있다.
우기홍 대한항공 사장은 이달 3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기업결합 심사가) 쉽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어려운 일이지만 계획대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해외결합심사를 위해 전사적 역량을 결집하여 각 심사 단계별로 자료 제출과 요청사항에 대해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1월 9개 필수신고국가 경쟁당국에 기업결합을 신고했다. 대한항공은 필수신고국가 가운데 현재 유럽연합, 미국, 중국, 일본 등 4곳의 승인을 남겨두고 있다.
앞서 터키, 대만, 베트남 경쟁당국으로부터는 기업결합 승인을 받았고 태국에서는 사전심사 대상이 아니라는 통보를 받았다.
임의신고국가 5곳에서는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에서 승인을 받았고 영국과 호주의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김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