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HDC그룹 회장의 아들들이 개인 투자회사를 세워 자신들의 HDC 보유지분을 옮기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의 광주 붕괴사고로 정 회장을 향한 책임론이 거센 가운데 지분을 유지하면서 오너 일가 이름을 최대주주 명단에서 뺀 셈이다. 장기적으로 경영권 승계를 위한 포석이라는 시선도 나온다.
22일 HDC그룹의 지주회사인 HDC의 주식소유현황을 살펴보면 최근 제이앤씨인베스트먼트와 더블유앤씨인베스트먼트가 새롭게 특별관계자 명단에 등장했다.
제이앤씨인베스트먼트는 정 회장의 큰 아들인 정준선씨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대표로 있는 개인 투자회사다.
더블유앤씨인베스트먼트는 정 회장의 둘째 아들인 정원선씨가 올해 1월28일 설립한 회사다. 역시 정원선씨가 지분 100%를 들고 있다.
첫째 정준선씨는 앞서 1월 보유하고 있던 HDC 보통주 24만 주를 모두 제이앤씨인베스트먼트에 출자하고 HDC 주주명단에서 본인 이름을 내렸다.
둘째 정원선씨도 지난 18일 HDC 지분 전부를 개인 투자회사인 더블유앤씨인베스트에 출자하면서 특별관계자 명단에서 빠졌다.
이에 따라 정준선씨와 정원선씨는 둘 다 HDC의 지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그룹 지주사 최대주주 명단에서 이름이 빠졌다.
셋째 아들인 정운선씨만 아직 HDC 지분 0.18%를 개인 이름으로 보유하고 있다.
정 회장의 세 아들은 2019년 5월 처음으로 HDC 지분을 사면서 경영권 승계의 시동을 걸었다. 그 뒤 보유 예금과 HDC 지분을 담보로 빌린 자금 등을 활용해 꾸준히 HDC 주식을 조금씩 장내에서 매수해왔다.
정준선씨와 정원선씨, 정운선씨는 각각 1992년, 1994년, 1998년생으로 20대 또는 20대를 갓 벗어났다. 이들은 모두 아직 그룹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HDC 지분율도 정준선씨가 0.4%, 정원선씨는 0.28%, 정운선씨는 0.18%로 크지 않다. 앞으로 경영권 승계를 위해서는 그룹 내 지분율을 더욱 높여 지배력을 키워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정 회장이 광주 학동 철거현장 붕괴사고와 화정아이파크 신축현장 붕괴사고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직에서 물러난 시점에 주주명부에서 두 아들의 이름이 그들이 세운 개인회사로 바뀌었다는 점이 주목을 끈다.
HDC현대산업개발 사고를 두고 실질적 경영 지배력을 가진 오너 정 회장의 행보를 주목하는 눈도 많아졌다.
경제시민단체, 해외연기금 등까지 나서 주주제안 등 적극적 행동을 통해 안전을 포함한 회사 관리체계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보는 눈'이 많아진 만큼 정 회장이 조금씩 본격화하던 승계작업도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제이앤씨인베스트먼트와 더블유앤씨인베스트먼트는
정몽규 회장의 개인 회사로 평가되는 그룹 계열사 엠엔큐투자파트너스와 똑같이 닮아있다.
회사의 설립목적부터가 지분투자와 경영지도 등이다.
앞서 정 회장은 2017년 자본금 7억 원으로 엠엔큐투자파트너스를 세웠다. 엠엔큐투자파트너스는 정 회장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정 회장의 아내인 김줄리앤씨가 대표로 있다.
엠엔큐투자파트너스는 HDC그룹 지배구조 변경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을뿐 아니라 정 회장 세 아들의 경영승계 준비에도 중심이 될 회사로 여겨졌다.
정 회장은 그룹이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개인 보유지분을 엠엔큐투자파트너스에 넘겨 회사의 몸집을 키웠다. 그 뒤에도 엠엔큐투자파트너스를 통해 HDC 주식을 사들이면서 그룹 지배력을 높여왔다.
엠엔큐투자파트너스는 정 회장 개인 회사로 볼 수 있는 만큼 결국 엠엔큐투자파트너스가 보유한 지분은 정 회장의 아들들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정 회장의 세 아들은 HDC 지분 외에도 계열사 HDC자산운용 지분을 각각 지분 13.01%씩 보유하고 있는데 HDC자산운용 최대주주도 엠엔큐투자파트너스다.
정 회장의 큰 아들 정준선씨는 1992년생으로 영국 이튼스쿨을 거쳐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했다.
옥스퍼드대학 대학원에서 컴퓨터비전·머신러닝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귀국해 2018년부터 네이버 사내독립기업(CIC) 서치앤클로바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말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공과대학 전기 및 전자공학부 조교수로 임용된 사실이 알려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정원선씨와 정운선씨에 관해서는 제대로 알려진 내용이 없다. [비즈니스포스트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