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해운을 중심으로 기업 구조조정이 최대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기업 위기상황에서 오너의 사재출연을 둘러싼 논란도 뜨겁다.
오너의 사재출연은 현재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하지만 책임경영과 고통분담의 차원에서 오너의 사재출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과거 기업의 위기상황에서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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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한진해운 자율협약과 관련해 채권단으로부터 사재출연을 포함한 자구안 마련에 대한 압력을 받고 있다.
물론 조 회장의 직접 사재출연을 놓고 채권단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이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과거에도 사재출연 문제를 놓고 채권단과 오너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펼쳐진 경우가 많았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지난해 말 금호산업 경영권을 6년 만에 되찾아 그룹 재건의 기반을 닦았다.
금호산업은 금호아시아나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회사다. 박 회장이 금호산업 채권단으로부터 지분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우선매수청구권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박 회장은 2010년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에 들어가자 2012년 2200억 원의 사재를 출연해 금호산업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이를 두고 지분을 확보하려는 의도에 불과한 것이라는 등 논란도 많았지만 당시 채권단은 박 회장의 책임경영 의지를 높이 평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 회장이 채권단으로부터 금호산업 지분을 되살 수 있는 우선매수청구권을 확보할 수 있었던 데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많다.
최근까지 채권단의 유무형 압박에 박 회장뿐 아니라 사재출연을 한 사례가 적지 않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일가는 2013년 지주사인 웅진홀딩스 회생을 위해 사재 400억 원을 내놨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도 동부하이텍과 동부메탈 회생을 위해 각각 3500억 원과 200억 원을 출연했다.
가장 가까운 예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현대상선의 유동성 위기가 고조되자 올해 초 사재 300억 원가량을 내놓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지난해 말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삼성엔지니어링을 살리기 위해 유상증자 참여방식으로 3천억 원의 사재를 내놓았다.
최근 개정 시행된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기업개선계획에 해당기업의 부실에 상당한 책임 있는 자 간의 공평한 손실분담 방안이 포함돼야 한다'고 명시됐다.
구조조정 대상에 오른 기업의 경우 주채권은행이 대주주와 회사 지분을 보유한 대주주의 친족, 경영진, 근로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적 근거다.
그러나 손실부담 방안에 오너의 사재출연을 포함해야 하느냐에 대해서 의견이 엇갈린다. 부실에 대한 상당한 책임을 요구할 수 있다고만 돼 있을 뿐 그 구체적 내용이 명시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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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 |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26일 “경영부실에 대한 책임이 있는 대주주는 사재출연이나 경영권 포기 각서 제출 등의 방법을 통해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면서도 “단 경영 부실에 대한 책임을 묻는 문제는 온전히 해당기업 주주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민간기업의 문제에 직접적으로 사재출연을 요구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오너의 사재출연이 기업구조조정에서 정서적 측면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법적 강제력은 없지만 채권단과 협상에서 추가지원이나 유리한 조건을 얻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2013년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의 경우 채권단의 사재출연 요구를 거부해 회생의 기회를 살리지 못한 사례로 꼽힌다.
당시 산업은행을 포함한 채권단은 STX그룹 계열사가 신청한 자율협약을 수용하는 대신 강덕수 전 회장에게 사재출연 등을 요구하며 압박했다.
그러나 자수성가형 기업인이었던 강 전 회장은 돈을 버는 대로 계열사 지분을 사들여 약간의 부동산 외에 개인재산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 전 회장이 결국 경영권을 내려놓아야 했던 배경에 사재출연을 하지 못했던 점도 작용했던 것으로 풀이됐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