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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 싱어 엘리엇매니지먼트 회장. |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기를 들고 나섰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검찰의 조사를 받게 된다.
주식 대량 보유 공시 의무인 ‘5% 룰’을 위반한 혐의다. 5% 룰은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주주는 5일 이내 지분 보유 현황을 공시해야 한다’는 공시 의무규정이다.
23일 금융당국과 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24일 열리는 정례회의에서 엘리엇매니지먼트에 대한 제재안을 의결하기로 했다.
금융당국이 5% 룰 위반 혐의로 제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결과에 관심이 모아진다.
이에 앞서 증선위 자문기구인 자본시장조사심의위원회는 엘리엇매니지먼트를 검찰에 통보하기로 한 원안을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켰다. 증선위도 같은 결론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이날 증선위의 결정이 나는 대로 검찰에 엘리엇매니지먼트의 혐의 내용을 통보하고 조사 자료 일체를 넘기기로 했다.
이번에 조사를 맡은 금융감독원 특별조사팀은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지난해 삼성물산 지분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파생금융상품인 총수익스와프(TRS•Total Return Swap)를 악용해 몰래 지분을 늘린 것이 불법 파킹 거래라고 결론내렸다.
TRS는 은행이나 헤지펀드가 위험을 회피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파생상품의 일종이다. 해외 헤지펀드나 외국계 투자은행(IB)에겐 널리 알려진 파생상품인데 우리나라 IB업계에서는 대형 증권사를 제외하고는 자주 활용되지 않았다.
이 상품은 투자자가 증권사 등 계약자에게 주식과 같은 기초자산을 대신 사달라고 주문하면서 일정 수수료를 지급하는 대신 매매에 따른 손익은 투자자가 지는 구조로 돼 있다. 단 해당 주식의 의결권과 소유보고 의무는 투자자가 아닌 계약자에게 있다.
예를 들어 김씨가 친구 박씨에게 대신 A주식을 사달라고 부탁한다. 이때 박씨는 자신의 돈으로 김씨 대신 주식을 사주고 대신 연 5%의 수수료를 받는다. A주식을 산 돈은 박씨가 냈지만 이에 따른 손익귀속은 김씨에게 있고 이 주식의 의결권과 소유보고 의무는 박씨에게 있다.
박씨 입장에서는 주가 손실에 따른 부담없이 연 5%의 수익을 챙길 수 있어 좋고 김씨는 주식을 직접 보유하지 않으면서도 주가 상승시 차익을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소유보고 의무가 박씨에게 있기 때문에 대량 보고 의무를 피할 수도 있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지난해 6월4일 삼성물산 지분 7.12%(1112만5927주)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하면서 시장에 전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공시에 따르면 엘리엇매니지먼트는 6월2일까지 4.95%(773만2779주)를 보유하고 있다가 3일 하루에만 보유지분을 2.17%(339만3148주) 추가 확보했다고 밝혔다.
당시 시장에서는 하루에 매수하기에는 큰 물량인 지분 2.17%를 어떻게 엘리엇매니지먼트가 보유했는지 의혹이 일었다.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사전에 기관투자가들에게 삼성물산 주식을 매집해 보유하도록 한 뒤 당일 통정매매를 통해 명의를 바꾸는 ‘파킹 거래’를 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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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웅섭 금융감독원장. |
금감원 조사결과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실제 메릴린치, 씨티 등 외국계 증권사 여러 곳과 삼성물산 주식을 대상으로 TRS 계약을 맺은 것으로 확인됐다.
외국계 증권사들은 가격 등락에 따른 위험 없이 파생상품 판매 수수료를 받고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요청에 따라 삼성물산 주식을 사 보유했다.
금융당국은 엘리엇매니지먼트가 TRS계약을 통해 실질적으로 지배한 지분까지 더하면 6월4일이 아닌 5월 말께 이미 대량 보유 공시를 했어야 한다고 결론내렸다.
금융당국은 엘리엇매니지먼트가 TRS 자체에서 이익을 낼 목적이 아니라 삼성물산 지분을 몰래 늘려나가기 위해 이를 악용했다고 보고 있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 147조에 따르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주주는 5일 이내에 보유현황을 시장에 공시해야 한다. 이 제도는 1991년 시장 투명성 제고 및 적대적 기업 인수합병(M&A) 방어를 위해 도입됐다.
금융위 관계자는 “재무적 투자 차원에서 TRS를 활용하는 것은 투자자의 재량이지만 적대적 M&A나 공격적 경영참여를 염두에 두고 TRS계약을 통해 실질적 지분을 늘리는 것은 공시 제도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검찰은 사건을 넘겨 받은 뒤 추가 법리 검토 작업을 벌이고 엘리엇매니지먼트에 대한 본격적 수사 착수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엘리엇매니지먼트 측은 “엘리엇매니지먼트는 한국 금융당국이 위법이라고 판단한 부분에 대해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금융당국의 최종 판단이 나오고 나서 구체적인 대응 방향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재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