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 대선 경선일정을 놓고 대선 승리를 위해 경선을 두 달 뒤로 미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민주당은 당헌에 따라 ‘대선 180일 전’까지 대선주자를 선출해야 한다. 늦어도 9월 초까지는 대선주자가 결정되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보다 2개월 늦은 ‘대선 120일 전’까지 대선주자를 선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두 당이 이렇게 예정대로 대선후보를 결정하면 민주당 후보는 두 달 정도 먼저 대선 레이스를 혼자 뛰어야 한다.
이런 상황을 놓고 민주당 일각에서는 야당의 대선주자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 이른 시기에 민주당 대선주자가 결정되면 집중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며 국민의힘과 비슷한 시기에 대선주자를 내놔야 한다는 목소리가 확산하고 있다.
전재수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대선후보 경선 연기 검토를 제안했다.
전 의원은 “선거는 상대가 있는 경쟁으로 상대의 상황을 살피고 고려해야 한다"며 "(경선을 연기하지 않으면) 대선 180일 전에 이미 대선주자를 만들어놓고 국민의힘이 진행하는 역동적 경선 과정을 멀뚱멀뚱 쳐다만 봐야하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고 적었다.
특히 이번 4·7재보궐선거의 패배 경험도 이런 ‘경선 연기론’에 힘을 싣고 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과 달리 ‘정치 이벤트 뒤 지지율이 급격히 상승’하는 컨벤션 효과를 얻지 못했다.
당시 야권에서는 안철수-금태섭, 오세훈-안철수 단일화 등 컨벤션 효과를 통해 유권자들의 이목을 끌었지만 민주당에서는 일찌감치 3월1일 박영선 후보가 확정되면서 한 달 동안 혼자 뛰어야 했다.
반면 4·7재보궐선거의 패배요인을 달리 분석하며 ‘경선 연기론’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당헌을 고치면서까지 서울과 부산시장에 후보를 내는 등 원칙을 지키지 못해 유권자들이 등을 돌렸다며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경선일정 변경에 반드시 당헌 개정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민주당 당헌 88조에 ‘상당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당무위원회의 의결로 달리 정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어 당헌을 바꾸지 않아도 경선 연기는 가능하다. 다만 개별 사정에 따라 당헌이 쉽게 흔들리는 모습은 부담스럽다.
김용민 최고위원은 지난 3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대선 경선 연기론을 두고 “기본적으로 원칙을 지켜야 한다”며 “원칙을 훼손시키는 방향으로 가다 보면 그게 특정인에게 유리하냐, 불리하냐고 해서 오히려 당이 분열될 수 있기 때문에 원칙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논란이 확산하면서 송영길 대표는 경선 흥행 가능성과 원칙 고수 사이에서 결단을 내려야 할 처지가 됐다.
송 대표는 2일 당대표에 선출된 직후 언론 인터뷰를 통해 ‘모든 대선후보들의 동의가 전제돼야 경선일정 조정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였다. 공정성을 바탕으로 경선일정 연기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다.
그는 당시 경선 연기론을 두고 “특정 후보를 배제하거나 불리하게 바꿀 수는 없기 때문에 모든 기준을 3월 대선 승리에 도움이 되느냐, 안되느냐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늦어도 5월 말까지 경선일정을 포함한 '대선 경선룰'을 결정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대선주자들이 일정에 맞춰 출마선언 등 본격 활동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낙연 전 대표, 정세균 전 총리 측은 경선일정의 불확실성으로 6월 이후 대선 출마를 선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정 전 총리는 애초 이달 중순 출마를 선언하려 했으나 최근 이를 늦추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경선 연기론이 자칫 당내 갈등을 키울 수 있다는 점도 송 대표에게는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송 대표는 당대표 선거운동 때부터 공정한 경선관리를 공약해 왔는데 이 문제를 잘못 다루면 어느 한 쪽의 편을 든다는 공격을 받을 수 있다.
실제 경선의 시점은 예비 대선주자들의 이해관계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대선후보들이 벌써부터 이를 두고 대립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측은 ‘친문 성향’의 의원을 중심으로 경선 연기론이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이재명 견제 카드’로 해석하고 있다.
이 지사는 4월28일 MBC뉴스 인터뷰에서 대선 경선 연기론을 놓고 "상식과 원칙에 따라서 하겠죠. 당이 정하면 우리야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 지사 캠프 안에서는 "경선 연기는 명분도 없고 특별히 정권 재창출에 유리하지도 않다"며 강하게 반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이낙연 전 대표와 정세균 전 총리는 ‘선수가 룰을 이야기하는 자체가 옳지 못하다‘는 원론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측근 인사들은 "경선 연기로 변수가 다양해지면 국민의 관심을 더 끌 수 있다"면서 경선일정 재검토를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경선일정이 9월에서 11월로 연기되면 정 전 총리와 이 전 대표는 코로나19 집단면역 성과를 통해 지지율 상승도 노릴 수 있다. 전재수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서 “11월 집단면역이 가시권에 들어왔을 때 많은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 속에서 대선후보 경선을 해도 늦지 않다”고 적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 내부에서 경선 연기론을 놓고 의견이 팽팽하다”며 “굳이 먼저 대선주자를 내세워서 매를 먼저 맞을 필요가 있냐는 입장과 먼저 우위를 선점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나뉘고 있어 송 대표의 고민이 깊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성보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