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XP 공장 위치. 파란색은 웨이퍼 가공 및 회로 구현(전공정)담당, 주황색은 패키지 및 테스트 담당이다. 대만 TSMC와 합작투자한 싱가포르공장을 제외한 반도체 생산공장은 모두 미국과 유럽에 있다. < NXP > |
삼성전자가 긴 침묵을 끝내고 올해는 대형 인수합병에 나설까?
네덜란드 반도체기업 NXP가 삼성전자의 품에 안길 수 있다는 전망이 시장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삼성전자가 NXP를 인수하면 미국과 유럽 등 세계 여러 곳에 반도체 생산거점을 확보할 수 있다. 삼성전자가 아직 약한 분야인 자동차반도체에서 시장지배력을 높이는 효과도 기대된다.
26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NXP는 현재 반도체 생산공장 5곳을 운영하고 있다. 위치별로 보면 NXP 본사가 있는 네덜란드 네이메헌 1곳, 미국 애리조나 챈들러 1곳, 텍사스 오스틴 2곳, 싱가포르 1곳 등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싱가포르에 있는 공장은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기업 TSMC와 합작법인으로 설립됐다. 온전히 NXP만의 것이라고 볼 수 있는 반도체공장은 유럽과 미국에 있는 4곳이다.
삼성전자는 NXP를 인수하면 이 공장들을 활용해 비교적 취약한 서방권 반도체 생산기반을 넓힐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삼성전자는 한국과 중국에 집중적으로 반도체공장을 조성해 왔다. 미국에서 파운드리사업을 하고 있지만 전체 반도체사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 수준으로 규모가 크지 않다. 유럽에는 아예 생산시설을 두지 않고 있다.
하지만 반도체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앞으로 미국과 유럽 등 해외에서 반도체 생산을 확대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코로나19와 미국·중국 갈등 등의 요인으로 나라마다 ‘반도체 자국주의’가 심해지고 있어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2일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긴급대책회의에 참석해 웨이퍼를 들고 인프라라고 지칭하며 “어제의 인프라를 수리할 게 아니라 오늘의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 의존하지 않는 반도체 생산기반을 다지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유럽연합도 2030년까지 세계 반도체 생산량의 20%를 생산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와 TSMC 등 반도체 선도기업의 유치를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반도체기업이 공장을 새로 건립하기 위해서는 수조 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해야 한다. 이에 비해 이미 안정화한 생산라인을 인수하는 것은 시간과 비용을 모두 절감할 수 있는 방안으로 여겨진다.
물론 NXP 인수 자체도 큰 비용이 들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NXP 기업가치는 550억 달러(약 61조2천억 원)로 추산된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NXP를 인수함으로써 반도체 생산시설을 확보할 뿐 아니라 자동차반도체 분야의 역량을 흡수할 수도 있다. 시장 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NXP는 2020년 기준 자동차반도체 점유율 10.2%를 차지해 세계 1위에 올랐다.
최근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시장이 성장하며 자동차반도체도 미래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문제는 진입장벽이다. 자동차반도체는 제품 신뢰도가 차량 탑승자의 안전과 직결되는 만큼 새로운 고객사 확보가 쉽지 않다. 수익성을 내기 어렵다는 뜻이다.
실제로 세계 1위 메모리반도체기업 삼성전자조차도 자동차반도체 분야에서는 아직 큰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NXP 인수 여부가 자동차반도체사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삼성전자는 인수합병을 위한 실탄 자체는 충분히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해 말 기준 삼성전자가 보유한 현금, 단기금융상품 등 현금자산 규모는 120조 원을 넘어선다.
인수합병에 현금만을 투입하지 않고 주식교환 등으로 재무부담을 줄이는 방법도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최근 AMD가 미국 반도체기업 자일링스를 주식교환 방식으로 인수했다.
다만 삼성전자의 NXP 인수가 실제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미국 투자전문매체 배런스를 비롯해 여러 외신들은 20일 투자은행 JP모건 연구원을 인용해 삼성전자가 NXP 인수에 관심이 많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NXP 인수설은 2019년에도 시장에 퍼진 적이 있다. 당시 삼성전자는 NXP 인수를 검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더구나 삼성전자가 인수를 추진한다고 해도 해외 규제당국이 어깃장을 놓을 가능성이 있다. 앞서 퀄컴이 NXP를 인수하려고 했으나 2018년 시장독점을 우려한 중국 규제당국에 막혀 실패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수감된 상황이 인수합병 같은 중요정책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삼성전자는 NXP가 아니더라도 여러 기업을 대상으로 인수합병을 고심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삼성전자는 2016년 전장기업 하만 인수를 결정한 뒤로는 대규모 인수합병을 추진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올해는 다를 수 있다. 최윤호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 사장은 1월 실적발표에서 “보유하고 있는 재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전략적 시설투자 확대와 인수합병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