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동의의결제도 재정비에 나섰다.
동의의결제도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법적 소송과 달리 조속한 소비자 피해구제와 빠른 시장질서 회복이 가능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동의의결제도 운영 및 절차 등에 관한 규칙(동의의결 규칙)' 개정안을 마련해 26일까지 행정예고했다고 6일 밝혔다.
동의의결제는 사업자(기업)가 소비자 피해를 놓고 재발방지대책과 피해보상을 제안하면 공정위가 이해관계자 등의 의견수렴을 거쳐 법적 제제없이 사건을 종결하는 제도다.
이번에 예고한 개정안은 동의의결 이행관리 업무를 한국공정거래조정원과 한국소비자원에 위탁하고 수탁기관이 분기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이행관리 현황을 서면으로 보고한다는 것을 뼈대로 한다.
동의의결 이행 과정을 집중관리하고 면밀한 사후감독을 통해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조처이다.
동의의결제도는 2011년 처음 도입된 뒤 기업에 ‘면죄부’를 준다는 우려가 일각에서는 꾸준히 제기됐다. 이에 공정위는 매우 엄격한 요건과 절차 아래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도 2월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애플코리아 광고비 책임전가와 관련한 공정위 의결결과를 발표하면서 “동의의결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기업 봐주기’가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애플코리아사건은 공정위가 최근 동의의결제도를 활용해 사건을 종결한 대표적인 사례다.
공정위는 애플이 통신3사를 상대로 광고비와 수리비용 일부를 떠넘겼다는 혐의를 두고 2016년부터 조사를 시작했다. 이를 두고 애플코리아는 2019년 6월 동의의결을 신청했다.
조 위원장은 당시 “동의의결제도는 이해관계인에게 의견 제출 기회를 부여하고 관계기관으로부터 의견을 수렴하며 검찰총장과 협의를 거치도록 하는 등 매우 엄격한 요건과 절차 아래 운영되고 있다”며 “피심인(기업)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할 수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이 제도가 소비자 피해를 빠르게 구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해당기업이 동의의결을 수용하면 과징금 수준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지원안을 끌어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애플코리아는 공정위에 1천억 원 규모의 상생기금이 담긴 동의의결안을 제시했고 공정위가 2월4일 수용했다.
이 상생기금은 △유상수리 비용 할인 250억 원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제조업 연구개발 지원센터 설립 400억 원 △공교육분야 디지털 교육지원 100억 원 △개발자 아카데미를 통한 미래 인재 양성 지원 250억 원 등에 투입된다.
애플코리아가 처음 제시한 상생기금은 500억 원이었으나 공정위와 협의 과정에서 1천억 원으로 높아졌다.
동의의결제도가 더욱 조속한 소비자 피해구조와 시장질서 회복을 위해서는 추가로 개선할 대목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위는 애플코리아의 이동통신사 대상 위법 혐의를 처리하는 데 604일을 썼다. 2011년 동의의결제도를 도입한 뒤 이 제도로 처리된 사건 가운데 가장 긴 시간이 걸렸다.
다른 사건들도 동의의결 처리과정에서 평균 10개월이 소요된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제도 도입 이후 모두 12건의 동의의결 신청이 있었다. 공정위는 이 가운데 6건을 기각하고 나머지 6건만 절차를 밟았다.
처리기간을 살펴보면 △마이크로소프트(MS)의 노키아 휴대폰사업 인수 357일 △에스에이피(SAP)의 거래상 지위 남용 혐의 325일 △이동통신 3사의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SK텔레콤 321일, KT 312일, LG유플러스 314일) △다음(현 카카오)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혐의사건 97일 등이다.
공정거래법 규정을 보면 동의의결 소요기간은 각 절차에서 연장이 없다고 가정할 때 88~118일이 걸린다. 규정이 이런데도 실제 동의의결제도 시행은 평균 3배 안팎의 시간이 걸렸던 셈이다.
조 위원장은 한 언론매체와 인터뷰를 통해 “동의의결제도는 자진 시정안과 관련한 협의기간을 정하고 있지 않아 이 부분에서 길어지는 측면이 있다”며 “효과적 시정방안을 만들 수 있도록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행정예고기간에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뒤 전원회의 의결을 거쳐 개정안을 확정·시행한다. [비즈니스포스트 류수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