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 연비 과장과 관련해 국내 소비자들은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그러나 현대기아차는 해외에서 똑같은 소송에 패소해 보상을 했다. 국내 법 규정이 명확하지 않은 탓이다. 최근 자동차 연비를 과장한 만큼 소비자에게 보상을 하도록 강제하는 법안이 발의돼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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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
이종진 새누리당 의원 등 11명의 국회의원은 최근 자동차 연비 과장표시를 방지하는 자동차관리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고 국토교통부가 25일 밝혔다. 이 법이 통과되면 자동차 제조사가 연비를 부풀린 사실이 드러날 경우 소비자에게 손해액을 보상하는 근거 규정이 생긴다.
기존 법은 자동차회사가 연비를 부풀린 것이 드러나도 소비자에게 보상해야 한다는 명확한 규정이 없었다. 연비 부풀리기는 경미한 결함으로 분류돼 공개는 하지만 시정조치를 할 필요가 없는 사항이었다.
이종진 의원실은 “지금까지 자동차 제조사들이 연비를 부풀리더라도 시정조치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항 때문에 책임에서 자유로웠다"며 "과대 포장된 연비에 대해 소비자가 경제적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모호한 보상규정 덕분에 현대기아자동차는 K5 구매자가 낸 연비 과장 관련 소송에서 승소할 수 있었다. 구매자는 “기아차가 K5 하이브리드의 연비가 리터당 21km라고 홍보했지만 실제 연비가 이보다 낮다”며 “유류비 230만 원을 배상하라”고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실제연비는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광고문구를 근거로 “보통 소비자라면 표시연비와 실제연비가 다를 수 있음을 인식할 수 있다"고 현대기아차의 손을 들어 줬다. 재판부는 "어떤 방법으로 연비를 측정하든 실제연비와 차이가 날 가능성이 있고 다른 회사들도 동일한 기준으로 연비를 표시하기 때문에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을 방해한 것으로도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동안 몇 차례의 연비 과장 관련 소송이 더 있었으나 연달아 소비자들이 패소했다.
그러나 현대기아차는 해외에서 벌어진 연비 과장 집단소송에서 패소했다. 미국환경보호청이 2012년 현대기아차 13개 차종 90만 대의 차량 연비가 부풀려졌다고 발표한 이후 미국 소비자들은 현대기아차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으로 현대기아차는 소비자들에게 3억9500만 달러(약 4천억 원)를 지급해야 했다.
집단소송은 캐나다로 이어졌다. 현대차 캐나다법인은 2011년~2013년에 차량을 구매한 고객들에게 7천만 캐나다달러(680억 원)를 보상했다. 국내 소비자와 해외 소비자가 똑같은 사안으로 소송을 냈지만 외국과 달리 국내 소비자들이 패소했다는 점도 소비자 보호를 위해 국내 법 개정의 필요성을 높이고 있다.
이번 법률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국내 소비자도 미국과 캐나다의 사례처럼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현대차 '산타페'와 쌍용차 '코란도 스포츠'에 대한 과다 연비를 두고 수차례 검증 발표가 미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국내 소비자들의 집단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국토부와 산업부간 연비측정 기준이 달라 발생한 문제를 완성차회사가 책임지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다만 향후 연비측정 기준이 통일될 경우 소비자 보상 등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자동차 연비는 제조사에서 자체 측정해 발표한다. 이후 국토교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연비를 조사해 제조사가 신고한 수치가 맞는지 확인한다. 신고 연비보다 5% 이상 낮게 나오면 연비 부풀리기로 본다.
국토부와 산업부는 지금까지 연비측정 기준이 달랐으나 이를 통일해 오는 6월부터 적용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