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좌이동제가 시행된 지 보름 남짓 만에 김이 빠지고 있다.
시중은행들이 내놓은 상품들이 천편일률적이라 큰 유인으로 작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 찻잔 속 태풍에 그친 계좌이동제
16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계좌이동제 신청 사이트인 ‘자동이체 통합관리시스템(페이인포)’에서 자동이체 계좌 변경을 신청한 건수는 하루 약 5천 건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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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거래계좌를 편리하게 바꿀 수 있는 '계좌이동제'가 10월30일부터 시행됐다. <뉴시스> |
계좌이동제는 자동이체 통장을 한번에 바꿀 수 있는 서비스다. 고객이 주거래계좌를 선택하면 다른 통장과 연결됐던 자동이체 납부계좌를 한꺼번에 새로운 주거래통장으로 옮길 수 있다.
계좌이동제 시행 첫날이었던 10월30일 페이인포에서 계좌변경 신청건수와 해지건수가 각각 2만3047건, 5만6701건, 시행 둘째 날인 2일 각각 1만1470건, 1만3609건에 이르렀던 것과 비교하면 계좌이동에 대한 수요가 급감한 셈이다.
계좌이동제 시행 전까지만 해도 800조 원대의 자금 이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으나 찻잔 속 태풍에 그치고 있다.
업계에선 계좌이동제 시행으로 주거래 고객 이동보다 중복거래를 하는 고객들이 계좌를 통합하고 정리하는 수요가 많았다고 본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초기에 자동이체 고객이 다소 줄기는 했지만 지금 주거래 고객은 조금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며 “계좌이동제 시행으로 고객이동이 크게 일어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금융결제원 관계자는 “원래 서비스 시행 첫날에 관심이 높은 법”이라며 “지금의 계좌이동 수요는 예상에 부합하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 계좌이동제 김빠진 이유
계좌이동이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주거래계좌 이동의 유인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계좌변경 서비스는 통신·보험·카드 3개 업종(전체 자동이체 건수의 67%)의 자동납부만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주거관리비와 전기세, 학원비 등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건별로 따로 변경해야 한다.
지금 주거래 은행을 이동할 경우 이중으로 계좌를 관리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내년 6월 말까지 모든 요금청구 기관으로 서비스를 확대하기로 했다.
은행들이 내놓은 계좌이동제를 겨냥한 상품들의 차별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은행마다 주거래 고객 이탈을 막기 위해 혜택을 추가한 우대통장과 각종 인센티브를 제시했지만 차별점이 거의 없어 고객들이 주거래계좌를 옮길 동기부여가 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에겐 주거래계좌가 주로 급여입금 계좌이기 때문에 계좌이동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일반적으로 회사들은 회사의 주거래은행으로 급여계좌를 신청해줄 것을 요구한다. 회사 입장에선 급여이체 수수료를 절감하고 신용도도 올라가 자금조달도 수월해 지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급여입금 계좌를 바꾸려면 직접 회사에 계좌변경을 요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계좌이동 신청을 온라인상에서만 할 수 있다는 점도 걸림돌이 된 것으로 보인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계좌이동제를 온라인에서만 신청할 수 있기 때문에 온라인 거래를 이용하지 않는 고객에게 제약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금융결제원 관계자는 “내년 2월 전국의 은행지점에서 계좌이동 서비스가 전면 시행되면 계좌이동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백설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