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한다. 하지만 돈과 권력 앞에서 혈연도 다 소용없는 경우가 많다.
롯데그룹 ‘형제의 난’을 계기로 재벌그룹의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다시 국민적 관심사로 부상했다.
국내기업사가 짧게 50년, 길게 100여 년 역사를 이어오면서 형제간 경영권 다툼이 적지 않았다. 재벌가의 현실은 때로 재벌드라마보다 더 극적이었다.
재벌닷컴이 지난해 7월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국내 재벌 2곳 가운데 1곳이 혈족 간 상속재산이나 경영권을 놓고 다툼을 벌인 것으로 나타났다.
|
|
|
▲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왼쪽)과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 |
재벌그룹 형제간 경영권 다툼은 선대에서 후계구도에 대한 교통정리가 이뤄지지 않았던 경우 주로 발생했다.
롯데그룹의 경우도 신격호 총괄회장이 두 아들로 하여금 너무 오랫동안 후계경쟁을 벌이도록 했던 것이 형제간 비극을 낳은 원인으로 지적된다.
롯데그룹과 유사한 과거 사례로 현대그룹에서 벌어진 이른바 ‘현대가 왕자의 난’이 꼽힌다.
2000년 당시 창업주 정주영 회장은 86세의 고령으로 건강이 악화했다. 당시 2남인 정몽구 회장과 5남 정몽헌 회장은 현대그룹 경영자협의회 공동의장을 맡고 있었다.
갈등은 정몽구 회장이 당시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을 경질하면서 비롯됐다. 이익치 회장은 정몽헌 회장의 사람으로 불렸다. 정몽헌 회장은 정주영 회장을 만나 이 회장 경질을 취소하려 하자 정몽구 회장이 반격에 나섰다.
형제간 다툼은 정몽헌 회장을 후계자로 낙점한 정주영 회장의 육성이 공개되기까지 치열하게 이어졌다. 정몽구 회장은 이에 승복했으나 자동차 계열사를 이끌고 나왔고 그 뒤 현대그룹은 6개의 소그룹으로 계열분리됐다.
정몽헌 회장은 승계의 정당성을 확보하면서 정주영 명예회장의 유지에 따라 대북사업을 의욕적으로 펼쳤으나 그뒤 '대북송금' 사건에 휘말려 검찰조사를 받던 중 2003년 8월 계동 현대그룹 사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삼성그룹은 현대그룹에 비해 무난하게 승계가 이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장남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아버지 이병철 창업주의 신임을 얻지 못하면서 후계자 자리가 3남인 이건희 회장에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이병철 창업주는 3남 승계 뜻을 굳힌 뒤 장남인 이맹희 전 회장을 해외로 내보내는 등 일체 경영에 나서지 못하도록 강력한 방호벽을 쳐줬다.
이병철 창업주가 일찌감치 후계정리를 끝낸 덕분에 삼성그룹 승계는 큰 잡음을 내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
|
|
▲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왼쪽)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
그러나 2012년 이맹희 전 회장이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유산상속과 관련한 소송을 제기하면서 뒤늦게 구설수에 올랐다.
삼성가 형제간 반목은 이맹희 전 회장의 아들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두산그룹에서도 형제간 다툼이 벌어졌다.
두산그룹은 박두병 창업주가 형제경영의 전통을 세웠다. 박용곤 명예회장이 그룹 총수를 지낸 뒤 차남인 박용오 전 성지건설 회장이 회장직을 맡게 됐다.
그러나 2005년 동생인 박용성 전 두산중공업 회장이 그룹 총수로 추대되자 박용오 회장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박용오 회장이 그룹 비자금을 횡령했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하자 형제들이 박 회장을 가문에서 제명했다. 박용오 회장은 2009년 자살로 생을 마감해 재벌가의 비극적 장면으로 남았다.
한화그룹도 김승연 회장과 동생인 김호연 전 빙그레 회장이 상속재산을 두고 오랫동안 다툼을 벌이다 김호연 회장이 빙그레로 독립해 나갔다.
금호그룹에서도 3남인 박삼구 회장과 4남인 박찬구 회장의 형제간 갈등이 아직까지 진행되고 있다. 두 사람은 그룹 경영권을 놓고 다툰 경우는 아니다.
박삼구 회장이 공격적 인수합병에 나서면서 경영 전반에 위기를 맞자 동생인 박찬구 회장이 이에 반기를 들면서 갈등이 표출됐다. 결국 두 사람은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금호석유화학으로 쪼개졌고 아직까지도 크고 작은 법적 다툼을 격렬하게 벌이고 있다.
효성그룹도 조석래 회장의 아들 3형제가 갈등을 빚고 있다. 2남인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은 형인 조현준 사장을 업무상 배임과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 등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
조 전 부사장도 금호그룹의 경우처럼 경영방식을 둘러싼 이견이 화근이 됐다. 조 전 부사장은 보유지분을 모두 팔고 효성가와 아예 연을 끊어버렸다.
효성그룹은 조현준 사장과 3남인 조현상 부사장이 경영일선에 나서고 있는데 형제의 지분이 엇비슷하다.
한국타이어그룹도 조양래 회장의 장남 조현식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사장과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이 형제경영으로 갈지 혹은 그룹을 분할해 승계할지 주목된다. 두 사람은 지주회사인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의 지분을 19.3%로 똑같이 보유하고 있다.[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