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왼쪽)가 2018년 5월4일 필리핀 마닐라 샹그릴라호텔에서 열린 '한중일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의 시작에 앞서 구로다 하루히코(오른쪽) 일본은행 총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한국과 일본 모두 글로벌 환율전쟁에 휘말렸지만 두 나라 중앙은행 총재에게 주어진 환율정책 관련 운신의 폭에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상대적으로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보다 나은 상황에 놓인 것으로 파악된다.
7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긴급 거시경제금융회의’에 참석해 “금융, 외화시장의 안정이 중요하다”며 “필요하면 통화정책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6일 열린 ‘금융, 외환시장상황 점검회의’를 마친 뒤에는 “시중의 유동성을 여유롭게 관리하면서 정부와 긴밀히 협력해 대응할 것”이라며 “유동성 관리를 위해 필요하면 환매조건부채권(RP)를 사들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5일 이후 매일 각종 점검회의에 참석하며 관련 대책을 언급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구로다 총재가 취할 수 있는 환율 관련 대응방안은 많지 않아 보인다.
환율정책이 한국과 일본의 경제정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만큼 구로다 총재의 정책적 부담은 매우 크다.
한국도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나라인 만큼 환율관리가 중요하다. 하지만 일본에서 엔화의 가치를 낮게 유지하는 엔저정책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의 근간이다.
아베노믹스는 저성장, 저물가 상태에 빠진 일본경제에 대응하기 위해 ‘무제한 양적완화’와 ‘공격적 재정 지출’을 내세운 경제정책이다. 일본경제에서 ‘잃어버린 20년’의 주요 원인인 엔화가치 상승을 막대한 유동성 공급으로 틀어막으며 정부재정 투자로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것이다.
‘아베노믹스의 상징’으로까지 불리는 구로다 총재는 2013년 3월부터 일본은행 총재를 맡으며 아베노믹스를 앞장서 추진해 왔다.
오랜 기간 구로다 총재가 유동성 공급에 온 힘을 기울였다는 것은 그만큼 최근 환율전쟁에 따른 엔고현상에 대응하기 위한 유동성 확대의 여력이 없다는 의미도 된다.
한국과 일본의 양적완화 여력을 보여주는 지표 가운데 하나가 기준금리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는 연 1.50%다. 역대 최저 수준인 연 1.25%에 근접했지만 금융시장에서는 이 총재가 두 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해 연 1.00%까지는 내릴 여력이 있다고 본다.
반면 일본은행 기준금리는 2016년부터 –0.1%를 유지해 오고 있다. 이미 마이너스 금리이므로 추가적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유동성 확대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5일 이후 증권시장 및 환율시장의 움직임도 일본은행에 불리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한국 코스피 지수와 일본의 니케이225 지수 모두 6일과 7일 연이어 하락했다.
일반적으로 증시 하락은 중앙은행에 직접적 손해를 입히지 않지만 일본은행은 다르다. 일본은행은 세계 중앙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주식 매수를 통해 증시부양을 하고 있다.
일본은행은 일본 주요기업 34곳의 지분을 10% 이상 보유하고 있어 ‘일본은행의 대주주화’가 일본 증시의 문제점으로 지적될 정도다. 일본 증시의 하락은 일본은행의 손해로 직결될 수 있다는 얘기다.
세계적으로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엔고 압력이 높아지는 점도 구로다 총재에 부담이다. 엔화는 안전자산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금융불안 상황에서 수요가 늘어난다.
박춘영 대신증권 연구원은 7일 “금융시장의 안전선호, 위험회피 현상은 금과 채권 강세, 주식과 원자재 약세로 극명하게 표출됐다”며 “일본 엔화 등 일부 선진통화는 달러대비 강세를 보였지만 한국의 원화를 비롯한 신흥 통화는 약세가 심화되는 양상”이라고 파악했다.
우치다 미노루 미쓰비시UFJ은행 글로벌마켓리서치 수석연구원은 7일 “이번 주중에 엔/달러 환율이 105엔을 밑도는 엔고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며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려는 이유 가운데 하나인 ‘전망의 불확실성’이 최악의 시나리오로 향하고 있다”고 바라봤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