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기업이 국내 반도체 소재와 장비, 부품업체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독자적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 공장단지에 120조 원의 투자계획을 내놓고 협력사를 위한 중장기 지원체계도 마련한 만큼 국내 반도체 관련 기업을 육성하는 데 더욱 속도를 낼 가능성이 높다.
19일 로이터 등 외국언론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최근 국내 반도체 소재 공급업체를 대상으로 물량 확보에 주력하며 출하량을 더욱 늘려달라는 주문을 내놓고 있다.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품목이 다른 반도체 소재까지 확대될 가능성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한국산 소재의 사용 비중을 높이려는 움직임으로 분석된다.
최태원 회장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SK하이닉스 반도체에 사용되는 소재와 장비, 부품 등의 국산화를 앞당기는 데 더욱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18일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겨냥해 대기업이 한국 중소기업의 반도체소재를 사주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 회장은 이 자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불화수소와 같은 소재는 품질과 특성 때문에 아직 한국산 제품을 사용하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최 회장은 반도체 소재와 장비 등을 생산하는 국내 협력사를 위한 중장기 지원계획을 체계적으로 마련하며 반도체 생태계 국산화에 가장 적극적으로 힘을 싣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3월 용인에 조성되는 새 반도체 공장단지에 120조 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내놓으며 50개 이상의 반도체 소재와 장비, 부품업체의 생산거점을 함께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용인에 SK하이닉스의 첫 반도체공장이 들어선 뒤 10년 동안 1조2200억 원을 들여 협력사를 위한 ‘반도체 상생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지원하겠다는 계획도 함께 발표됐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반도체 상생 클러스터를 통해 현재 20%에 불과한 반도체장비 국산화율을 더 끌어올리는 등 국내 반도체 생태계 강화에 기여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가 새 반도체 공장단지에 대규모 투자를 하며 생산능력 확대와 함께 협력사들의 성장과 경쟁력 확보도 중요한 목표로 추진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 셈이다.
반도체 상생 클러스터 투자에는 반도체 장비와 소재, 부품기업에 사업자금을 지원하는 내용이 포함됐고 SK하이닉스와 공동 연구개발은 물론 소재 및 장비를 국산화하는 일에도 예산이 배정됐다.
이처럼 SK하이닉스는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사태가 발생하기 전부터 한국 반도체 생태계를 키워 주요 소재와 부품, 장비 등의 국산화를 추진하기 위한 준비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최 회장은 지난해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를 만나 반도체와 소재사업에 3년 동안 49조 원을 들이겠다는 계획도 내놓으며 반도체 소재 국산화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일본의 규제를 계기로 최 회장이 국내 반도체 협력사에 지원과 투자를 더욱 늘릴 공산도 크다.
최 회장이 이전부터 SK그룹 반도체 등 핵심사업의 생산망을 수직계열화하는 ‘밸류체인 전략’을 적극 앞세워왔던 점도 SK하이닉스의 협력사 육성 노력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공장단지 구축사업은 단일 지역에 사용되는 투자로는 국내 사상 최대규모로 꼽히는 만큼 한국 반도체산업의 생태계 구축에 중대한 계기를 마련할 잠재력이 있다.
반도체 소재와 장비, 부품의 국산화를 위한 노력은 최 회장이 강조하는 SK그룹의 사회적 가치 창출과도 맞물려있다.
최 회장은 지난해 SK하이닉스 청주 M15공장 준공식에서 반도체공장 투자를 국가와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일로 인식하고 있다며 중소기업과 상생을 통한 사회적 가치 창출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소재와 장비 국산화를 추진하며 국내 협력사의 성장을 돕는 것은 최 회장의 사회적 가치 창출방안을 사업 전략에 효과적으로 반영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물론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소재와 장비, 부품에 해외 의존을 낮추는 일은 중장기적으로 생산 차질이나 가격 변동 가능성을 줄여 실적 안정성을 높이는 실질적 효과도 낼 것으로 예상된다.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생태계 국산화 노력이 결국 일본의 수출규제와 같은 위협에서 방패 역할을 할 뿐만 최 회장의 사회적 가치 창출 노력에도 기여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게 되는 셈이다.
한국 정부도 SK그룹의 반도체 국산화 노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와 여야 5당 대표는 18일 청와대 회동 뒤 내놓은 공동 발표문에 한국 반도체 소재와 부품, 장비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력에 협력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