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업계에 따르면 김준기 전 회장이 비서 성추행 혐의로 DB그룹 회장에서 물러난 데 이어 또 다시 성폭행 혐의로 경찰 조사대상에 오른 사실이 알려지면서 DB그룹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김 전 회장은 2017년 9월 비서 성추행 혐의를 받자 그룹에 피해를 줄 수 없다며 회장에서 물러났는데 2018년 1월 가사도우미를 성폭행한 혐의로 추가 피소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DB그룹은 2017년 10월 그룹 이름을 ‘동부’에서 ‘DB’로 이름을 바꾸며 구조조정과 관련된 부정적 이미지를 씻어내고 새 출발하려 했지만 비슷한 시기에 불거진 김 전 회장의 비서 성추행 논란으로 곤혹을 치렀다.
DB그룹은 한때 재계순위 10위권을 넘보는 그룹이었지만 2013년부터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그룹규모가 현재 재계순위 30위권 밖으로 밀려났으며 계열사 수도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당시 김 전 회장은 “개인적 문제로 회사에 짐이 돼서는 안 된다”며 회장에서 물러나고 그룹 재건을 산업은행 총재와 금융감독원장 등을 지낸 이근영 회장에게 맡겼지만 새로운 성폭행 의혹이 불거지면서 또 다시 입방아에 오르게 됐다.
DB그룹으로선 재도약을 위해 48년 동안 써왔던 ‘동부’를 버리는 과감한 결단을 했으나 창업주의 잇단 구설수에 2년째 곤혹을 치르고 있는 모양새다.
이근영 회장은 올해 창업 50주년을 맞이해 “1969년 창업된 뒤 후발기업의 한계를 극복하고 기업자 정신과 열정으로 오늘의 DB그룹을 이룩한 도전과 혁신의 DNA를 다시 살려 100년 기업의 새 역사를 써내려가자”고 말했지만 이 말이 무색해졌다.
하지만 당사자인 김 전 회장은 2017년 7월 질병치료를 이유로 미국으로 출국한 뒤 2년째 돌아오지 않고 있다. 경찰의 수사가 시작된 뒤에도 계속 미국에 체류하고 있어 수사를 피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경찰은 두 사건을 기소중지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고 외교부와 공조해 김 전 회장 여권을 회수하고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요청했다.
김 전 회장은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그룹에 끼치는 영향력은 여전히 상당하다.
장남인 김남호 DB손해보험 부사장이 이근영 회장과 함께 경영일선에서 일하고 있으며 김 전 회장과 김 부사장은 나란히 DB그룹 핵심 계열사의 1대, 2대 주주자리에 올라있다.
지분을 살펴보면 김 부사장은 DB손해보험 지분 8.3%, DB lnc 지분 16.83%를 보유해 각 회사의 1대 주주이고 김 전 회장은 DB손해보험 지분 6.65%, DB lnc 지분 11.2%를 소유하고 있다.
DB그룹은 금융계열사와 제조업계열사를 두 축으로 삼고 있는데 DB손해보험과 DB lcn를 정점으로 아래 계열사를 두고 있다.
김 전 회장이 잇단 ‘성추문’에도 수사를 제대로 받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그룹 재도약을 목표로 새로 만든 ‘DB’ 브랜드 이미지를 훼손할 수 있다.
특히 DB그룹은 금융 계열사가 그룹 전체 매출의 90%가량을 차지하며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브랜드 이미지 하락에 따른 타격이 더욱 심각할 수 있다.
금융업은 특성상 브랜드에서 고객이 느끼는 신뢰성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DB그룹 금융 계열사들이 이름을 바꾼 뒤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방송 등을 통해 대규모 브랜드 광고를 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또 최근 한진그룹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오너일가의 ‘그릇된 행태’가 회사 경영권에 끼치는 직·간접적 후폭풍도 상당하다.
개인적 문제로 회사에 짐이 되지 않겠다던 스스로의 다짐을 지키려면 김 전 회장이 귀국해 수사를 성실히 받아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금융권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은 만 24세에 DB그룹의 전신인 미륭건설을 창업한 뒤 10년 만에 30대 그룹으로 키운 입지전적 인물”이라며 “하지만 성추행사건으로 불명예 퇴진한 뒤 수사를 피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최석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