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대우전자 매각
동부대우전자가 2018년 2월 대유위니아에 매각됐다.
김준기가 꿈꿨던 DB그룹 제조업 부활은 실패로 마감했다. 동부대우전자가 헐값에 매각된 데다 DB그룹 계열사들이 투자한 금액도 회수하지 못했다.
김준기는 DB그룹이 2013년 동부대우전자를 인수할 때 300억 원가량의 사재를 출연했다. 2016년 동부대우전자 유상증자에도 사재 60억 원을 들이는 등 힘을 쏟았다.
하지만 동부대우전자가 실적 반등에 어려움을 겪고 순자산가치가 떨어지자 재무적투자자(FI)들이 계약 조건에 따라서 동부대우전자를 대유그룹에 매각한 것이다.
동부대우전자는 김준기가 보유했던 지분 10%를 모두 매각했다고 2018년 2월에 밝혔다. DB와 DB하이텍 등 DB그룹 계열사에서 보유한 지분 31%가량도 모두 매각됐다.
그러나 DB그룹 계열사들과 김준기는 재무적투자자(FI)들이 동부대우전자의 투자금을 우선적으로 회수하기 때문에 실제 동부대우전자의 매각대금을 받지 못했다.
재무적투자자들은 계약조건에 따라 DB그룹 계열사와 김 전 회장 지분을 모두 팔아넘길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한 것이다.
매각대금이 1200억 원가량으로 DB그룹의 인수 당시 금액인 2750억 원에서 반토막났는데 재무적투자자들도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라 DB그룹과 김준기는 인수에 투자했던 1400억 원 가까운 돈을 모두 날렸다.
김준기는 제조업을 향한 열정으로 동부대우전자를 인수하고 투자했으나 결국 큰 돈을 날리고 DB그룹 계열사들에도 금전적 손해를 보도록 한 데 따른 책임에서도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김준기는 마지막까지 동부대우전자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우호적 투자자를 찾는 등 다양한 시도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모든 일이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DB손해보험 중심으로 금융 계열사 개편
2017년 11월16일 DB손해보험은 동부제철에서 매각한 DB금융투자 지분을 상당부분 인수했다. DB금융투자 주식 218만8824주(5.16%)를 84억 원가량에 DB손해보험이 사들였다.
DB손해보험은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DB그룹 금융 계열사의 지주회사로 떠올랐다. DB그룹의 계열사 가운데 DB손해보험 매출이 2017년 기준으로 계열사 전체의 78.8%가량이다. DB손해보험은 동부화재에서 이름이 바뀐 회사다.
DB손해보험이 다른 금융계열사의 지분을 사들이는 것은 결국 금융계열사의 지배력 강화로 볼 수 있다
DB손해보험이 주식을 인수하면서 보유한 DB금융투자 지분율도 19.92%에서 25.08%로 높아졌다. DB금융투자 계열사인 DB저축은행(49.98%)과 DB자산운용(55.33%)에도 더 강한 영향을 미치게 됐다.
DB손해보험은 DB그룹의 금융지주사 역할을 맡고 있다. DB금융투자를 비롯해 보유하고 있는 금융 계열사 지분율을 살펴보면 DB생명 99.83%, DB캐피탈 87.11% 등이다.
△DB그룹의 새 출발
김준기는 동부그룹 회장에서 물러나면서 동부그룹은 회사이름을 DB그룹으로 바꿔 새 출발을 했다. 김준기는 지주회사 격인 DB의 2대주주로 계속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다. 그의 아들인 김남호 DB손해보험 부사장이 최대주주다.
DB는 2017년 11월1일 서울 강남구 DB금융센터에서 이근영 회장과 임직원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회사이름을 '동부'에서 'DB'로 바꾸고 'DB그룹 CI선포식'을 열었다.
DB는 동부를 영어로 쓴 'DongBu'의 앞글자를 따서 만들었다. '큰 꿈과 이상으로 미래를 준비하겠다'는 Dream Big'의 뜻도 담았다.
DB그룹은 2013년 구조조정을 추진하기 전 한 때 재계 10위권까지 올랐지만 급격한 외형 성장으로 유동성 위기론이 나오는 등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구조조정 과정을 거치면서 30위 수준으로 밀려났다.
김준기는 치료를 목적으로 미국에 2018년 10월 현재까지 체류하고 있지만 지주회사격인 DB의 2대주주로써 앞으로 DB그룹이 다시 예전 동부그룹의 위상을 찾는 데 힘을 보탤 것으로 보인다.
△동부그룹(현DB그룹) 구조조정과 성과
동부하이텍 등 제조계열사와 동부화재의 실적 개선을 이루는 등 동부그룹은 구조조정을 해온 효과를 봤다.
동부하이텍은 2016년에 매출 7731억 원, 영업이익 1723억 원을 내며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 2015년과 비교해 매출은 16%, 영업이익은 38% 늘었다.
동부하이텍은 국내에서 유일한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수탁생산) 전문기업이다. 스마트폰과 TV에 들어가는 전력반도체와 센서 등 주요 품목의 수주가 늘어난 덕에 실적이 고공행진을 거듭했다.
2016년 매분기 영업이익률이 20%대를 보일 만큼 수익성에서도 두드러진 성과를 냈다. 동부하이텍은 동부그룹 전 계열사에서 가장 높은 영업이익률을 보였다.
동부하이텍은 2016년 말에 고객기업들의 주문이 증가하면서 생산라인을 기존 월 9만7천 장에서 12만 장으로 20% 넘게 늘렸다.
동부그룹에서 금융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동부화재도 손해보험업계 선두권에 자리잡았다.
동부화재는 2016년 순이익 4702억 원을 냈다. 2015년보다 13.9% 늘어난 성적이다. 매출(원수보험료)과 영업이익은 각각 12조924억 원, 6753억 원을 냈다.
김준기는 2016년 말에 동부증권 본사를 방문해 임직원들과 2017년도 경영계획을 논의하고 임직원들을 격려했다.
동부그룹은 2016년 4월에 동부팜한농(현 팜한농)을 LG화학에 매각하며 그룹 재편작업을 마쳤는데 금융부문의 역할이 확대된 것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행보로 풀이됐다.
△2013년부터 구조조정 고난
동부그룹은 2013년 하반기부터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2년 동안 계열사의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동부그룹의 모태인 동부건설을 비롯한 그룹의 핵심 계열사들이 모두 떨어져나갔다.
김준기는 2013년 말에 3조 원대의 그룹 회생 자구방안을 내놓으며 혹독한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동부그룹 계열사들을 최대한 지키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산업은행이 주도한 패키지딜이 실패하면서 혹독한 위기로 내몰렸다.
2014년 동부익스프레스와 동부발전당진, 동부팜가야, 동부택배 등을 팔았고 2015년에도 동부특수강과 동부로봇, 동부전자재료, 동부LED 등을 매각했다.
동부그룹은 2013년 초만 하더라도 61개 계열회사를 거느렸지만 2016년 말 기준으로 24개까지 줄어 외형이 급격하게 쪼그라들었다.
김준기는 2015년 1월 신년사를 통해 “지난 반세기 동안 땀흘려 일군 소중한 성과들이 구조조정 쓰나미에 휩쓸려 초토화되고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김준기는 구조조정을 주도하며 동부화재를 중심으로 하는 금융 계열사와 지주사인 동부를 중심으로 하는 IT·전자부문으로 동부그룹의 사업구조를 재편했다.
2015년 3월에 비금융 계열사들의 지주회사 역할을 해온 동부CNI의 회사이름을 동부로 변경했다. 동부그룹의 지배구조를 김남호 당시 상무→동부CNI→동부그룹 비금융 계열사로 수직계열화해 경영 승계구도를 강화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됐다.
동부그룹의 재계 순위는 2013년 17위였으나 2015년 20위로 낮아졌다. 이 기간 자산총액은 17조1110억 원에서 14조6270억까지 줄었다.
△동부하이텍의 선전
김준기는 1997년 동부하이텍의 전신인 동부전자를 세우고 2002년 아남반도체를 인수하는 등 2조 원이 넘는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하지만 2001~2013년에 낸 누적 영업손실만 3조 원에 이를 정도로 골칫덩이 신세를 면치 못했다.
김준기는 동부그룹의 반도체사업 진출에 의지가 굳었고 회사를 계속 키웠다. 마침내 2014년부터 시작된 반도체산업의 호황으로 빛을 보기 시작했다.
동부하이텍의 고객기업은 200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60여 개에 불과했으나 2018년 6월기준으로 글로벌 고객사는 100여곳으로 증가했다.
△동부그룹 창업과 성장
김준기는 군 복무를 마친 뒤 고려대 경제학과 재학 중이던 1969년 1월 자본금 2500만 원으로 직원 3명과 함께 미륭건설(현 동부건설)을 설립했다. 1971년 여객 운송업체인 동부고속운수를 설립하고 1972년에 동부관광과 동부상호신용금고를 각각 설립했다.
김준기는 동부건설을 통해 1970년대 해외에 진출했다. 1975년 4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베일 해군기지 건설공사를 4500만 달러에 수주하는 등 1970년대 ‘중동붐’을 타고 건설업에서 급성장해 도급순위 10위 안에 진입했다. 1980년 중동에서 철수할 때까지 5년 동안 총 20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오일 달러’를 종자돈으로 사업부문을 확대했다. 1976년 삼척산업을 인수하고 1979년 대영실업과 부산운수, 1979년 한미면업을 각각 동부고속과 합병했다. 1980년 한국자동차보험을 인수하면서 재계 전면에 부상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1982년 국민투자금융 설립하고 1988년 동부투자금융으로 이름을 변경했다가 1991년 7월 동부증권으로 업종을 변경했다.
1982년 '장영자 사기사건'에 연루돼 자금난에 시달리던 일신제강을 1984년 인수해 동부제철로 키웠다.
1986년 울산석유화학을 인수해 동부석유화학으로 상호를 변경했으며 1989년 동부애트나 생명보험(1995년 동부생명보험으로 변경), 동부창업투자, 동부엔지니어링을 각각 설립했다.
1990년대 들어 창업 20여 년 만에 20대 기업에 진입했다. 1997년 설립한 동부전자(현 동부하이텍)를 발판으로 2000년대 들어서 반도체사업에 뛰어들면서 금융, 반도체, 바이오산업 등으로 외연을 넓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