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근 대우조선해양 대표이사 사장이 대우조선해양 노동조합의 구조조정 우려를 덜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발주처가 변경돼 입찰이 지연됐던 영국 해양유전 개발사업이 입찰 재개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장은 대우조선해양의 해양부문이 일감을 확보하는 것으로 구조조정 우려를 다소나마 덜 수 있어 수주에 총력전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10일 조선해운 관련 외신들의 보도를 종합하면 영국 로즈뱅크 해역의 해양유전 개발사업을 위한 FPSO(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설비) 1척 발주건의 입찰이 곧 재개된다.
로즈뱅크 프로젝트는 원래 미국 정유회사 셰브론이 추진하던 것으로 지난해 FPSO의 입찰이 시작됐으나 엑손모빌이 프로젝트 지분을 노르웨이 에퀴노르(Equinor)에 모두 넘기며 입찰이 한 차례 지연됐다.
업스트림은 소식통을 인용해 “프로젝트의 새 발주처 에퀴노르는 해양플랜트를 발주할 준비가 됐다”며 “영국 정부가 프로젝트 면허를 갱신하면 곧바로 입찰이 시작될 것이며 시기는 멀지 않았다”고 전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오래 전부터 이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공을 들여 발주처의 변경에도 발빠르게 대응해 온 만큼 수주에 기대를 걸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발주처가 셰브론에서 에퀴노르로 바뀐 직후부터 에퀴노르와 접촉을 시작했다”며 “에퀴노르가 원하는 설비사양이 셰브론과 다르기 때문에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이 수주를 따낸다면 단순히 수주목표 달성을 위한 일감 확보의 의미를 넘어 내부 조직 안정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사장은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앞둔 상황에서 노조의 불만을 해소하고 경영을 정상화해야 하는 과제를 짊어지고 있다. 그러나 대우조선해양이 피인수자의 처지라 운신의 폭이 그다지 넓지는 않다.
현재 대우조선해양 노동조합은 중복사업부문과 유휴인력의 구조조정 가능성을 들어 현대중공업과의 기업결합 자체를 반대하고 있는데 이 일감은 노조의 구조조정 우려를 덜어줄 카드가 될 수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해양부문은 중복사업부문과 유휴인력이라는 두 조건에 모두 해당된다.
현재 상태로라면 대우조선해양은 2020년 7월이면 해양부문의 일감이 사라진다. 해양부문에서 일하는 2천여 명의 직원이 1년 뒤에 모두 유휴인력이 되는 셈이다.
현대중공업도 올해 말이면 해양부문의 일감이 떨어진다. 이미 해양부문 인력의 일부를 전환배치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이날까지 인력 전환신청을 받았다.
이를 지켜보는 대우조선해양 해양부문의 노동자는 구조조정의 칼끝이 향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지우기 쉽지 않다. 대우조선해양 노조가 현대중공업 노조보다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라는 말도 나온다.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지역사회와 손을 잡고 ‘대우조선해양 동종사 매각 반대 지역경제 살리기 거제범시민대책위원회(대책위)’를 발족했다.
▲ '대우조선해양 동종사 매각 반대 지역경제 살리기 거제범시민대책위원회’가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정문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
대책위는 앞서 8일부터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실사를 막기 위해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이미 4월26일 특수선사업을 둘러보러 온 현대중공업 관계자들을 한 차례 물리적으로 저지하기도 했다.
더 큰 충돌도 우려되는 상황이니만큼 이 사장은 1건의 수주로 3~4년치 일감을 확보하는 해양플랜트의 수주가 간절할 수밖에 없다.
로즈뱅크 프로젝트는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이 수주를 눈앞에 뒀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발주처 변경으로 수주가 무산된 만큼 입찰 준비가 충분히 돼 있다.
로즈뱅크를 제외하면 올해 입찰결과가 나올 것으로 전망되는 해양플랜트는 모두 5건이다.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등 한국의 조선3사는 5건의 수주전에 모두 발을 담그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아람코가 진행하는 사우디아라비아 마르잔 프로젝트에서 현대오일뱅크를 통한 아람코와의 관계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삼성중공업은 현지 합작조선소를 보유하고 있어 나이지리아 봉가 프로젝트의 수주 가능성을 높게 보며 호주 바로사 프로젝트도 기초설계부터 참여했기 때문에 수주를 자신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과 달리 대우조선해양은 5건의 해양플랜트 수주전에서 내세울 만한 강점이 없다.
이 사장이 로즈뱅크 프로젝트의 해양플랜트 수주에 더욱 공을 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