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미국 AI 기업과 손잡고 국내 최대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짓기로 했다. <신세계>
[비즈니스포스트] 신세계그룹이 한국에 국내 최대 규모의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짓기로 했다.
최소 투자금액만 10조 원 이상이 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올 정도의 큰 투자계획이라는 점에서 정 회장이 '승부수'를 던졌다는 반응이 우세하다.
정 회장의 구상대로라면 신세계그룹은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기반으로 AI 인프라 사업을 키워 이른바 '한국의 아마존'으로 성장해 그룹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은 신세계그룹의 핵심 사업인 유통과의 시너지도 기대하고 있다.
신세계는 16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 AI 스타트업 리플렉션AI와 '한국 소버린 AI 팩토리'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MOU)를 체결했다.
이번 협약으로 신세계는 국내에 전력 용량 250MW(메가와트)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게 된다. 현재 국내에서 추진 중인 데이터센터 가운데 최대 규모다.
SK텔레콤이 아마존웹서비스(AWS)와 협력해 울산에 100MW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준비하고 있고 삼성SDS 역시 구미에 60MW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준비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투자 규모가 최소 두 배 이상 크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이번 데이터센터 구축은 그룹의 미래 성장뿐 아니라 한국의 소버린(주권) AI 비전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세계는 기존 유통 사업에 AI를 접목해 시너지를 내고 나아가 AI 인프라 사업자로 도약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방향은 최근 글로벌 유통업계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유통 기업들이 단순 판매를 넘어 AI와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IT 인프라 사업까지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의 선택을 놓고 신세계그룹이 사실상 미국 '아마존'을 염두에 둔 것이나 다름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마존은 온라인 서점으로 출발했지만 현재는 클라우드 사업부인 아마존웹서비스(AWS)가 핵심 수익원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AWS 매출은 전체 매출의 약 18%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마존의 전체 매출은 7169억 달러(약 1069조 원)이지만 AWS를 제외한 유통 매출만 보면 5880억 달러(약 877조 원) 수준으로 줄어든다. 이는 미국 유통기업 매출 2위 기업인 월마트보다 낮은 수준이다.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도 AI와 클라우드 사업이 성장을 이끌고 있다. 알리바바는 2025년 회계연도 기준 매출 9963억 위안(215조 원), 순이익 1295억 위안(29조 원)을 기록했다. 2024년 회계연도와 비교해 매출은 6%, 순이익은 62% 증가했다.
▲ 신세계가 16일(현지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리플렉션AI'와 한국에 국내 최대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짓는다는 내용의 MOU를 체결했다. 이날 자리에는 정용진 신세계 회장(오른쪽 두번째)과 미샤 라스킨 리플렉션AI CEO(왼쪽 두번째),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가운데)이 참석했다.
정 회장이 AI 인프라에 대규모로 투자하겠다는 것은 이러한 글로벌 흐름에 발맞춰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미래 전략의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선언으로 여겨진다.
신세계그룹은 본업과 AI의 시너지도 적극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그룹은 SSG닷컴과 이마트, 이마트24, 스타벅스 등 다양한 유통채널을 보유한 한국 대표 유통기업으로 폭넓은 고객 접점을 확보하고 있다. 여기에 AI를 결합해 'AI 커머스' 기반의 이마트2.0을 본격화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기로 했다.
대표적으로 AI 에이전트가 거론된다. 고객이 직접 검색하지 않아도 AI가 구매 이력을 분석해 상품을 추천하고, 결제와 배송까지 이어주는 방식이다. 전국 이마트 물류망을 결합하면 재고 예측과 배송 경로 최적화도 가능해진다.
이미 국내 유통업계에서도 이런 흐름은 나타나고 있다. 네이버는 쇼핑앱 '네이버플러스 스토어'에서 이용자의 검색·구매 데이터를 기반으로 상품을 추천한다. 향후 결제까지 이어지는 '에이전트N'으로 서비스를 고도화하고 있다.
신세계도 2024년을 기점으로 일부 영역에서 SSG닷컴의 AI 이미지 검색 '쓱렌즈', 스타벅스 매장 CCTV를 활용한 AI 운영 시스템 등을 본격적으로 적용해왔다.
정 회장은 여기에 더해 데이터센터를 기반으로 외부 클라우드 사업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아마존이 AWS로 별도의 수익원을 만든 것처럼 신세계도 AI 인프라를 정부와 기업에 제공해 유통 이외의 수익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신세계 관계자는 "이번 사업은 단순히 유통 기업의 AI 역량을 강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클라우드 사업으로 확장하는 것이 목표"라며 "정부와 기업에 맞춤형 AI 모델을 제공하는 방향까지 계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정 회장의 청사진이 현실화되려면 넘어야 할 과제들이 적지 않아 보인다.
우선 미국 의존도가 높은 사업 구조가 변수로 꼽힌다. 이번 사업은 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AI 수출 프로그램'의 1호 사업이다. 미국의 AI 기술 생태계를 동맹국에 이식하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인 만큼 미국 정부의 정책 기조가 바뀌면 사업 추진 동력도 흔들릴 수 있다.
AI 데이터센터의 핵심 설비인 GPU 확보 문제도 있다. 신세계에 따르면 주요 투자자로 엔비디아를 두고 있는 파트너사 리플렉션AI를 통해 안정적 공급이 가능할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 방향에 따라 리스크가 발생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 회장이 추진하고 있는 대형 사업이 많다는 점도 변수로 꼽힌다. 대표적으로 경기 화성에 '스타베이 시티'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데 AI 데이터센터와 스마트시티라는 2개의 초대형 프로젝트를 동시에 끌고 가기 위한 재원 마련은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 관계자는 "이번 사업은 내부적으로도 장시간 고민해온 사안으로 지난해 12월 플로리다에서 리플렉션AI CEO와의 회동 이후 본격화됐다"며 "구체적 투자 계획은 연내 합작법인 설립 이후 확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