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희헌 기자 gypsies87@businesspost.co.kr2018-09-07 13:2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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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계 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현대자동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놓고 펼치는 공세의 노림수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엘리엇매니지먼트가 보유한 현대차그룹 계열사 주식 가운데 현대차 지분의 비중이 가장 높아 이 지분의 가치를 극대화하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보이고 있다.
▲ 폴 싱어 엘리엇매니지먼트 회장.
엘리엇매니지먼트가 8월14일에 현대차그룹에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한 제안들을 담은 서신을 보냈다고 7일 블룸버그가 보도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엘리엇매니지먼트는 현대차그룹에 현대모비스의 AS사업부문을 현대자동차에 팔고 현대모비스의 모듈과 핵심부품사업부문을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라고 요구했다.
현대차그룹이 3월에 내놓았던 지배구조 개편안과 비교해볼 때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합병이 유지된다는 점에서 큰 틀에서는 비슷하다.
다만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게 될 현대모비스 사업부문을 모듈과 AS사업부문(현대차그룹 구상)에서 모듈화 핵심부품사업부문으로 바꾸라고 제안했다.
눈에 띄는 점은 현대모비스에 남게 되는 AS사업부문을 현대차와 합병하라고 요구한 대목이다.
애초 현대차그룹은 현대차를 지배구조 개편에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하지 않았다.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을 진행한 뒤 합병법인이 현대차 지분율을 끌어올리는 정도면 주주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엘리엇매니지먼트는 현대모비스의 AS사업부문을 합병할 회사로 현대차를 지목했다.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현대차의 지분 가치를 높이기 위한 전략을 펴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현대차에 보낸 서신에서 8월13일 기준으로 현대차 지분을 약 3%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6일 현대차 종가(13만4천 원)를 기준으로 지분 가치가 8600억 원에 이른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5월11일에 현대차 지분을 1.5% 이상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약 석 달 만에 보유지분이 3%라고 구체적으로 밝혔다. 언급한 숫자만을 놓고 보면 지분율이 2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앞서 4월에 엘리엇매니지먼트는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3개 회사의 주식을 모두 10억 달러가량(당시 약 1조500억 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현재로서는 엘리엇매니지먼트가 기아차와 현대모비스 지분을 그대로 두고 현대차 지분을 추가로 취득했는지, 또는 기아차와 현대모비스 지분 일부를 매각한 뒤 현대차 지분을 사들였는지 알 수는 없다.
5월부터 8월까지 현대차 지분을 추가로 매입했다고 보면 현재 엘리엇매니지먼트는 3개 회사의 주식을 모두 합해 약 1조4천억 원 어치를 들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엘리엇매니지먼트가 보유한 현대차그룹 계열사 3사 주식 가운데 현대차 비중이 61.4%으로 가장 높다는 계산이 나온다.
기아차와 현대모비스 지분을 팔아 현대차 지분을 사들였다고 보면 현대차 비중은 85%까지 높아진다.
그런 점에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현대차에 제안힌 지배구조 개편안은 그들이 보유한 현대차 지분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제안대로라면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합병법인이 그룹 지배구조의 최상단에 서게 된다.
합병법인은 현대차 지배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현대차 지분을 추가로 매입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 때 주가가 높아지면 엘리엇매니지먼트는 큰 차익을 얻을 수 있다.
현대모비스는 최근 2년 동안 AS사업부문에서 해마다 전체 매출의 20%가량인 6조6천억~6조8천억 원씩을 냈다. 현대차의 별도기준 1년 매출이 41조 원가량이라는 점을 놓고 보면 AS사업부문 인수가 현대차 기업가치 상승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예전에도 현대차그룹이 현대차를 활용한 지배구조 개편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4월23일 ‘현대차 가속화 제안’을 발표하면서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합병 △합병한 회사를 다시 상장 지주사(현대차홀드코)와 사업회사(현대차옵코)로 분할 △현대차홀드코에서 현대차옵코 지분 공개 매수 △기아차와 현대차홀드코 및 현대차옵코의 지분관계 해소 등의 순서로 지배구조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현대차와 현대모비스가 배당률을 40~50%로 높이고 모든 자사주를 소각할 것도 요구했다.
이런 행동들은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현대차 지분 가치의 극대화를 위해 현대차그룹을 압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1.5%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힌 현대모비스의 지분 가치를 끌어올리는 방안도 함께 고려했을 수 있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 비율이 현대모비스에게 불리하다며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을 반대했다.
현대모비스의 핵심사업인 모듈과 핵심부품사업을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면 현대모비스의 합병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