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 기자 hyunjung@businesspost.co.kr2018-07-18 17:5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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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생명이 금융감독원 압박에 ‘즉시연금’ 미지급금을 일괄 지급하는 것을 놓고 고심이 깊다.
금감원이 지난해 초 불거졌던 '자살보험금 사태' 때를 연상하게 하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만큼 현장검사가 진행되거나 징계가 나오기 전에 삼성생명이 미리 미지급금을 일괄 지급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 현성철 삼성생명 대표이사 사장.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삼성생명이 26일 열릴 이사회에서 즉시연금 미지급금과 관련해 일괄 지급을 실시하는 결론을 낼지 고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생명을 비롯해 국내 20개 생명보험사들은 8천억 원에 이르는 ‘즉시연금’을 미지급해 금감원의 압박을 받고 있다.
이 가운데 삼성생명의 미지급금 규모가 4300억 원으로 가장 크다. 삼성생명이 지급을 결정하면 다른 생명보험사들도 미지급금을 내주지 않고 버티기 어려워질 것으로 보이는 만큼 삼성생명의 결정이 중요하게 떠오르고 있다.
즉시연금은 매달 보험료를 내는 방식이 아니라 가입자가 보험을 가입할 때 한꺼번에 목돈의 보험료를 내는 상품이다. 보험사가 이를 운용하면서 매달 이익금을 생활연금으로 주고 가입자가 사망하거나 보험상품의 만기가 돌아왔을 때 보험료 원금을 돌려준다.
보험사들은 하나의 보험상품을 팔면 사업비와 위험보험료 등으로 비용이 발생하지만 만기에는 보험료 원금 전액을 돌려줘야 하기 때문에 매월 일정한 비용을 차감해 연금을 지급해왔다.
문제는 즉시연금의 약관이다.
대부분 생명보험사는 즉시연금 약관에 ‘연금을 지급할 때 만기보험금을 지급할 재원을 공제한다’는 내용을 빠뜨렸고 일부 가입자들이 이를 문제 삼아 민원을 제기했다.
최근 금감원은 민원을 제기한 일부 가입자 뿐 아니라 이 상품을 가입한 고객들에게 공제한 연금액을 일괄 지급하라고 생명보험사에게 권고했다.
특히 윤석헌 금감원장이 하반기부터 시행되는 '일괄구제제도'의 첫 사례로 ‘즉시연금 미지급금’을 선택한 만큼 삼성생명의 부담은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일괄구제제도는 금감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 결정을 받은 신청자와 같은 유형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도 동일한 보상을 한꺼번에 요청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윤 원장은 9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즉시연금 미지급금의 일괄구제에 나설 것”이라며 “분쟁조정위 결정 취지에 위배되는 부당한 보험금 미지급 사례 등에 엄정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원장의 발언은 지난해 초에 있었던 '자살보험금 사태' 때 금감원의 강경한 태도를 떠올리게 한다.
2016년 7월 금감원은 생명보험사들이 약관대로 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며 대책 마련을 하지 않으면 중징계를 내릴 것이라 예고했다. 이를 놓고 생보사들이 지급에 나서지 않고 계속 뒤로 미루자 금감원은 2017년 2월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등에 대표이사 문책경고 등의 중징계를 내렸다.
중징계 결정이 나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 생보사들은 바로 백기투항해 자살보험금 전액을 지급하기로 했고 금감원이 징계 수위를 이전보다 낮추며 사태가 마무리됐다.
이번 즉시연금 문제도 자살보험금 사태 때와 비슷한 상황으로 보이고 금감원이 강도 높게 압박하고 있어 삼성생명을 비롯한 생보사들이 알아서 먼저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금감원이 즉시연금 미지급 문제를 소비자 보호를 저해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생보사들이 나서지 않는다면 현장검사 등 특별검사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또 삼성생명이 금감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의 결정을 수용했기 때문에 일괄 지급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말도 나온다.
분쟁조정위는 2017년 11월 삼성생명에 민원을 제기한 보험가입자에게 즉시연금 미지급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결정했고 삼성생명은 이 조정안을 수락했다.
삼성생명이 즉시연금 가입자에게 추가 지급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기 때문에 민원을 제기한 고객에게만 지급하고 나머지 고객은 안주고 버티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생명을 비롯한 생명보험사들은 ‘배임’ 문제를 들어 즉시연금 미지급액을 지급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이전에 자살보험금 사태 때도 생명보험사들이 우려했던 배임 고발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던 점을 미뤄보면 설득력이 높지 않다.
자살보험금 사태 때 생명보험사들은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면 주주들이 배임 혐의로 책임자를 고발할 것이라며 자살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사태가 마무리된 뒤 생명보험사들은 주주들을 잘 설득해서 배임 고발을 막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대심제로 제재대상 회사들이 목소리를 낼 기회가 있고 즉시연금 미지급금은 자살보험금 때보다 규모가 큰 만큼 삼성생명이 버틸 가능성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금융당국이 압박 수위를 높인다면 불복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