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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
정몽구 회장이 현대차의 올해 판매목표를 소박하게 잡았다.
현대기아차 800만 대 판매시대를 지난해 연 만큼 이제는 양적성장 대신 질적성장에 주력하겠다는 의지라고 현대차는 설명한다. 800만 대를 넘어 900만 대 판매 대열에 서기 위해서 품질을 다지고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차의 성장정체에 대해 단기적으로 뚜렷한 해법을 찾아내지 못한 정 회장의 고민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내수시장은 점유율이 하락하고 신차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신흥국의 경제위기에 세단 위주의 라인업 한계로 판매량 확대에 한계가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런 현대차의 처지를 800만 대에 도달한 뒤 성장통을 앓는 것이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신차를 내놓고 판매량을 늘리면서 글로벌 생산기지를 확보해야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 친환경차 개발 등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겪는 정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차는 22일 올해 내수시장 69만 대, 해외시장 436 만대 등 총 505만 대를 판매하겠다는 목표를 내놓았다.
이는 지난해 판매량 대비 1.8% 증가한 수준에 그친다. 현대차는 지난해 국내외에서 496만1천 대를 팔아 2013년보다 판매량이 4.8% 증가했다. 이를 놓고 보면 현대차가 내놓은 올해 판매목표는 ‘소심하다’는 느낌조차 준다.
◆ 불안한 국내시장 점유율 회복
현대차는 지난해 내수시장 판매목표로 68만2천 대를 잡았다. 그러나 68만5천 대를 팔아 초과달성했다.
현대차는 올해 내수시장에서 69만 대 판매목표를 세웠다. 지난해 목표량보다 1.2%, 실제 판매량보다 0.7% 증가한 수치다. 현상유지를 목표로 내세운 것과 마찬가지다.
현대기아차의 내수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70%대 아래로 무너졌다.
현대차는 올해 신차 출시로 점유율 회복에 나서려고 한다. 아반떼와 투싼의 완전변경 모델들이 출시를 앞두고 있다. 올해 쏘나타는 하이브리드와 가솔린, 디젤과 플러그인하이브리드 등 총 6개의 모델이 동시에 판매된다.
신차 출시로 올해 내수시장 점유율을 회복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현대기아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과 반감이 커지면서 현대차가 내놓는 신차에 대한 기대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현대차는 아슬란과 LF쏘나타를 야심차게 출시했지만 신차효과를 거의 보지 못했다. 현대차가 수입차의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내놓은 아슬란은 지난해 목표 판매량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가격과 보증기간에 대한 국내고객 역차별, 연비과장과 누수현상, 안전문제 등에 따른 품질논란으로 현대기아차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반감도 더욱 커지고 있다.
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안방이 흔들리는 것을 알고 있고 위기로 인식하고 있지만 던질 만한 마땅한 승부수가 없어 고민”이라고 털어놓았다.
내수시장의 변화에 대한 현대차의 대응력도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RV(레저용차량) 시장이 급성장했지만 현대차는 그 수혜를 고스란히 다른 자동차업체에 빼앗겼다.
현대차가 파는 RV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차에서 세단의 비중은 80%에 이르는 반면 미니밴과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등 RV는 20%에 불과하다.
올해도 RV시장이 성장할 것으로 보이지만 현대차는 신형 투싼을 내놓는 것 외에 마땅한 대응방안이 없다.
현대차가 잘 팔리는 차량의 후속모델을 만드는 가장 쉬운 길만 가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신형 쏘나타, 신형 그랜저, 신형 제네시스 등이 그런 경우다. 새로운 차량을 개발하는 데 수천억 원의 비용이 들고 시간도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현대차가 이런 부담을 안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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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13일 미국 디트로이트 '2015 국제 오토쇼'에서 현대자동차의 '쏘나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를 선보이고 있다.<뉴시스> |
◆ 중국시장은 안녕한가
현대차가 중국시장의 수요증가에도 제때 대응을 하지 못해 성장기회를 놓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국시장은 현대기아차의 가장 큰 고객이다. 지난해 현대기아차는 중국에서 184만 대를 팔았다. 현대기아차가 세계에서 판매한 800만 대의 23%를 차지한다.
미국의 시장조사업체인 IHS오토모티브는 지난 16일 현대기아차의 올해 중국 판매량이 189만 대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보다 증가한 수치지만 올해 중국 자동차시장 성장률이 7%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점을 고려하면 거의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IHS오토모티브는 현대기아차의 중국시장의 공급량이 매우 부족한 점을 원인으로 꼽았다. 중국에서 현대기아차 인기 차종의 물량이 부족해 기다리다 지친 고객들이 계약을 취소하는 일도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기아차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중국 현지에 4, 5공장을 새로 짓고 기존 공장의 생산능력을 확장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4공장을 올 2분기에 착공하지만 두 공장에서 모두 생산을 시작하려면 2017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 세단 위주 라인업의 한계
세계 최대의 자동차시장인 미국에서 현대차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미국시장에서 최대 판매실적을 올렸지만 점유율은 하락했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미국시장에서 2013년보다 4% 증가한 130만5천 대를 판매했다. 판매량으로만 따지면 역대 최대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각각 72만5천 대와 58만 대를 판매했다.
하지만 현대기아차의 미국시장 점유율은 2013년보다 0.2%포인트 하락한 7.9%를 기록해 4년 만에 7%대로 내려앉았다. 전체 차량판매 순위에서도 닛산에 6위 자리를 내줬다. 현대기아차 시장점유율은 2011년 9%에 육박했지만 2013년부터 계속 내려가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시장점유율 하략 원인은 대형차량 수요 증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데 있다.
국제유가 하락으로 연비부담이 줄어들자 미국에서 픽업트럭과 SUV 등 대형차량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다. 하지만 현대기아차는 픽업트럭을 생산하고 있지 않다.
미국 판매량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완성차업체 가운데 픽업트럭이 없는 곳은 현대기아차가 유일하다. 현대기아차는 최근 뒤늦게 모터쇼에서 픽업트럭 콘셉트카를 선보였다. 하지만 생산에 나설 지 불투명하다.
픽업트럭을 출시해도 문제다. 미국의 픽업트럭 시장은 전통적으로 미국의 빅3업체가 전체 시장의 70% 가량을 장악하고 있다. 또 픽업트럭 수요층도 보수적 성향이 강해 외국업체가 진입하기가 쉽지 않다.
현대차가 픽업트럭을 양산할 경우 1977년 포니 픽업트럭 이후 38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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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난해 12월19일 광주직할시 북구 광주과학기술원(GIST)에 건립되고 있는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를 둘러보고 있다. |
◆ 현대차, 제값받기는 성공하고 있나
정몽구 회장은 2010년부터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과도한 가격할인을 하지 않겠다”며 미국 등에서 제값받기를 강조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저가차량이라는 이미지를 벗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자동차시장은 공장출고가격에 각 지역의 딜러마다 별도의 인센티브를 지급해 차값을 낮춰 판매한다. 인센티브는 현대차 본사와 딜러가 지급하는 것을 더한 값으로 책정된다.
현대차는 4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판매량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과도한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난해 4분기 원달러 환율이 양호했던 점 등을 고려하면 영업이익률 감소폭이 너무 크다고 입을 모은다.
현대차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500억 원 가량 줄어 7.6% 하락했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12월 미국에서 대대적인 할인판매를 진행했다. 미국 자동차 구매사이트에 따르면 ‘LF쏘나타 2.4’의 고급사양인 리미티드 모델은 12월 초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에서 4783달러를 할인해 판매했다. 전체 차값의 17% 가량을 할인한 것이다. 이밖에 엑센트를 2500달러 할인해 판매했고 제네시스는 4200달러 할인했다.
현대차는 미국에서 지난해 12월 모두 6만4천 대의 차량을 판매했다. 2013년 12월보다 판매량이 2% 늘며 12월 기준으로 역대 최대 판매량을 기록했다.
현대차는 22일 실적을 발표하면서 “미국시장에서 대표 모델인 엘란트라(한국명 아반떼) 등 주요 차종의 모델이 노후화하면서 대당 인센티브가 평균 1728달러로 그 이전보다 약 25% 상승했다”고 말해 헐값 판매를 인정했다.
◆ 엔저 업은 일본차 공세에 대책있나
현대차가 유럽과 미국에서 부진한 가장 큰 원인으로 엔저가 꼽힌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일본 자동차업체의 가격경쟁력이 현대기아차보다 앞서게 됐다는 것이다.
올해도 엔화 약세는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일본 빅3인 도요타와 닛산, 혼다가 엔저를 무기로 마케팅에 대거 투자하면 현대기아차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미국시장에서 쏘나타보다 일본 토요타의 캠리 가격이 더 싸지는 가격역전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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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
현대차는 일본차의 공세에 마땅한 대응책을 내놓고 못하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최근 엔저현상이 지속됨에 따라 합리적인 선에서 가격조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정몽구 회장이 강조하고 있는 제값받기 정책과 어긋난다.
엔저효과가 지나치게 과장됐다는 지적도 일부에서 나온다.
삼성증권 김용구 연구원은 지난해 11월 ‘엔저 트랩에 빠진 현대차를 위한 고언’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엔저쇼크'가 지나치게 과장됐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엔화 약세에 따른 기업실적 영향력은 전반적으로 불분명하다”며 “현대차는 일본 경쟁업체와 유사한 수준까지 글로벌 생산 비중을 끌어올린 상황에서 단순히 환율 변수만을 탓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합당치 않다”고 말했다.
과거와 달리 미국 이외의 자동차시장이 커진 데다 현대기아차의 해외생산 비중도 높아졌다. 중국, 인도, 브라질 같은 신흥국은 엔저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원화강세에 따른 피해 역시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자동차에만 적용된다. 현대기아차의 해외생산 비중은 50%가 넘는다.
이 때문에 이제 현대차의 본질적 경쟁력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대기아차가 글로벌 완성차 톱5로 성장했지만 기술과 브랜드 측면에서 상당한 의문이 따라다닌다는 것이다.
삼성증권 김용구 연구원은 “제네시스 등 현대차의 럭셔리 세단은 해외에서 브랜드 인지도가 낮고 가격경쟁력을 배제할 경우 이렇다 할 매력이 없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