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이 사퇴 전인 16일 서울 마포구 저축은행중앙회에서 열린 자산 규모 상위 10개 저축은행 CEO들과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이 물러났지만 저축은행의 고금리 가계대출을 억제하는 금감원의 정책방향은 이어지고 있다.
저축은행들은 규제 강화에 대응 전략을 마련하느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금감원이 업계의 사정을 감안해야 한다는 볼멘소리도 한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김 전 원장의 사퇴 이후에도 그가 제시했던 대출금리 인하와 기업대출 확대 등 저축은행 관련 정책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김 전 원장은 16일 저축은행 CEO들과 만난 자리에서 고금리 대출을 지나치게 많이 취급하거나 금리 산정체계를 제대로 구축하지 않은 저축은행을 언론에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예대율(대출잔액을 예금잔액으로 나눈 비율) 규제를 도입해 고금리로 돈을 과도하게 빌려줬거나 기업대출을 너무 적게 내준 은행의 대출영업을 제한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저축은행이 일정 수준의 예대율을 넘어서면 시정계획서를 내고 대출을 추가로 늘리는 데에도 제한을 받는 방식이다. 은행은 100%, 상호금융기관은 80~100%를 기준으로 적용받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감원장이 공석이더라도 정책 추진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저축은행에서 대부회사보다 훨씬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는 데도 대출자 상당수에게 대부회사 수준의 높은 금리를 매긴다고 보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2월 기준으로 저축은행에서 돈을 빌린 가계대출자 115만 명 가운데 81.1%(93만5천 명)가 연 20% 이상의 대출금리를 적용받고 있다. 저축은행에서 빌려준 가계신용대출 잔액의 평균금리는 22.3%로 집계돼 법정최고금리 24%에 근접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저축은행이 돈을 빌려줄 때 개인의 신용상태를 면밀하게 살펴 적정한 금리를 매겨야 하는데 무조건 연 20% 이상을 적용한 사례 등이 있다”며 “이런 일을 당한 사람이 돈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제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도 최근 내놓은 ‘가계부채 관리방안’에 2020년부터 저축은행에 예대율 규제를 적용하는 잠정안을 넣는 등 금감원의 정책방향에 발을 맞추고 있다.
저축은행들은 정책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금융 관련 조직을 정비하고 전문인력 확충 등을 통해 기업대출을 늘리려고 애쓰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저축은행 79곳은 2017년 기준으로 기업에 29조643억 원을 빌려준 것으로 집계됐다. 기업대출액이 2016년보다 20% 이상 늘어났다.
특히 대형 저축은행 대다수가 2016년보다 기업대출 비중이 높아졌다. 회사별로 보면 SBI저축은행 55.81%, OK저축은행 36.05%, 한국투자저축은행 60.77%, 웰컴저축은행 31.51% 등이다.
그러나 대형 저축은행들도 그동안 고금리 가계대출에 많이 의존했기 때문에 금감원에서 대출금리 인하를 갑자기 압박하면 수익에 타격을 피하기 힘들다.
자산 기준 1~7위인 저축은행들이 연 20% 이상의 금리를 매긴 가계대출액을 합치면 5조4천억 원에 이른다. 이 금액은 저축은행 전체의 고금리 가계대출액 가운데 75.7%를 차지한다.
저축은행이 가계대출에 높은 금리를 매겨야 하는 사정을 금감원에서 감안하지 않고 있다는 불만도 업계 곳곳에서 감지된다.
저축은행의 한 관계자는 “저축은행 고객 상당수가 신용등급 4~7등급으로 원금을 제때 갚지 못할 확률이 높은 점을 금감원에서 생각해 줬으면 한다”며 “대출금리를 무조건 낮춰야 한다면 신용등급 6~7등급인 사람들에게 돈을 사실상 빌려주기 힘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저축은행들은 2017년 기준으로 평균 고정이하여신비율 5.37%를 나타냈다. 이 수치는 같은 기간 시중은행의 0.66%보다 8배 이상 높다.
고정이하여신비율은 전체 대출액 가운데 만기가 돌아온 뒤에도 3개월 이상 원금이 회수되지 않은 여신의 비중을 나타내는 수치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