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금융권에 따르면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이 취임 15일 만에 사퇴해 최흥식 전 원장에 이어 역대 최단명 금감원장이라는 불명예를 안으면서 금감원 추진업무의 동력이 약해지게 됐다.
▲ 서울시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전경. <뉴시스>
두 전 금감원장은 유례없던 민간 출신으로 금감원 내부와 금융시장 개혁을 추진할 뜻을 밝혔지만 불명예스럽게 퇴진하면서 금감원은 대외적 신뢰에 타격을 받게 됐다.
최 전 원장은 인사·조직문화 혁신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내부 채용비리 문제 해결에 나섰고 김기식 전 금감원장도 금감원의 역할 회복과 위상 강화에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태스크포스팀이 꾸려진 지 얼마 안 돼 최흥식 전 금감원장은 채용비리 의혹, 김기식 전 금감원장은 '셀프 후원' 문제 등에 휩싸여 물러나면서 금감원 개혁은 표류하게 됐다.
금감원이 당면하고 있는 산적한 금융권 문제 해결에도 추진동력이 약해지게 됐다.
삼성증권 ‘유령 주식’ 사태에 관한 조사와 수습, 증권가 전반에 걸친 우리사주 배당 시스템 점검이 우선 시급한 사안으로 꼽히고 있다. 김 전 원장이 조사기간까지 연장하며 철저히 조사하고 삼성증권에 강력한 책임을 물을 의지를 보였으나 갑자기 사퇴해 앞으로 힘이 빠지게 됐다.
김 전 원장은 신한금융그룹의 임원자녀 셀프채용 문제도 공소시효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재조사를 지시했지만 채 시작도 하기 전에 총사령관이 손을 떼는 꼴이 됐다.
금융권 채용비리 문제를 제2금융권에도 확대해 조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어떻게 검사조직을 구성하고 어디부터 언제 이뤄진 채용과정을 살펴볼지 기본사항조차 정해진 것 없다.
당장 7월 시행을 앞둔 금융그룹 통합감독 작업도 흔들릴 수 있다.
금융위원회는 3일 금융그룹 통합감독을 위한 모범규준 초안을 발표했다. 의견수렴을 거쳐 6월 최종안을 마련해 하반기 시행을 목표로 삼고 있다.
금융위가 시행하는 금융그룹 통합감독 모범규준에 따르면 금감원장에게 감독대상 금융그룹 지정 등 중요 권한이 위탁된다. 금감원장의 공백이 장기간 지속되면 구체적 시행에 차질이 벌어질 수도 있다.
금융그룹 통합감독 모범규준(초안) 제23조는 감독대상 금융그룹 지정, 그룹의 대표회사 지정 등 핵심적 감독 권한이 금융감독원장에게 위탁하도록 규정했다.
저축은행 관련 정책도 으름장만 놓은채 표류할 수 있다.
김 전 원장은 16일 저축은행 CEO 간담회에서 "고금리 대출을 많이 취급하거나 금리산정체계가 미흡한 저축은행을 주기적으로 공개할 것"이라며 "예대율 규제를 도입해 고금리 대출이 과도하거나 기업대출이 부진한 저축은행을 놓고는 대출영업을 일정부분 제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저축은행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시중은행과 저축은행을 같은 등급으로 놓고 잣대를 들이대는 일이라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업계의 반발을 진화하면서 바른 규범을 정착시키려면 금감원장의 강력한 추진력이 필요한데 방향타를 잡을 수장이 없으니 시작조차 어려운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유광렬 수석부원장이 원장 직무대행을 맡아 흔들림없이 업무를 진행할 것을 당부했다. 그는 "이번 사태로 금감원 직원들의 사기가 꺾이거나 조직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도록 추슬러 달라"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연이어 수장이 물러나면서 금감원 내부 사람들은 사기가 다소 떨어지고 심리적 혼란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기본적 업무는 특별한 영향을 받지 않아 큰 변화가 없지만 새로 시작하는 일들과 미묘한 갈등이 있거나 중대한 결정이 필요한 일들은 강력한 원장의 추진력이 아쉬울 수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