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그룹에서 각 계열사별 독립 경영체제가 완전히 자리잡기도 전에 안팎으로 여러 사건이 잇따르며 위태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가장 최근 벌어진 삼성증권 유령 주식 사고는 삼성 미래전략실 해체 뒤 각 계열사의 위기 관리 능력을 가늠할 중요한 시험대로 꼽히고 있다.
구성훈 삼성증권 대표이사 사장이 취임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금융감독원 등 관련기관과 주주들의 거센 공세에 직면하며 확실한 후속조치도 내놓아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됐기 때문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명계좌와 뇌물 수수, 그룹 차원의 노조 와해 의혹 등으로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도 계속되며 삼성이 해결해야 할 난제는 계속 쌓이고 있다. 검찰 수사가 삼성전자서비스와 삼성전자 등 계열사들로 번지고 있지만 대응책을 마련하는 데 역부족으로 보인다.
예전에는 계열사에 이런 중대한 문제가 벌어졌을 때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이 나서 대응전략을 지휘하고 위기 관리를 주도해 왔다.
삼성전자에서 2016년 갤럭시노트7 단종사태가 벌어졌을 때도 미래전략실이 직접 상황을 점검하고 후속조치를 마련함으로써 신속하고 과감한 대응에 나설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래전략실이 해체된 뒤로 각 계열사를 지원하던 전략팀과 법무팀, 대관팀 등 조직이 사라지며 각 계열사가 독자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정부의 지배구조 개편 압박도 커지고 있지만 각 계열사 사이 지분 교환과 사업 재편 등을 총괄적으로 대응하던 미래전략실의 역할을 대체할 방안이 없는 점도 답답함을 가중하도록 하는 요인이다.
삼성그룹 계열사의 한 관계자는 "미래전략실 해체로 지배구조 관련 논의는 각 계열사 이사회에서 담당하고 있다"며 "그룹 차원의 움직임이 불가능해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다"고 말했다.
미래전략실은 각 계열사에서 핵심 임직원이 모여 그룹 현안을 논의하던 조직으로 체계적 전략 수립과 실행에 기여하며 삼성그룹이 '관리의 삼성'이라는 명성을 얻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미래전략실 해체 뒤 삼성그룹의 최대 장점으로 꼽히던 체계적 관리 능력이 떨어지며 컨트롤타워 부재의 심각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 서울 서초구의 삼성 서초사옥.
미래전략실은 오너일가의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지만 삼성그룹과 같은 거대집단에서 반드시 필요한 조직으로 꼽힌다.
이런 점에서 삼성증권 유령 주식 사고가 삼성그룹 컨트롤타워 구축을 앞당기는 촉매제로 작용할 수도 있다.
다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미래전략실 해체를 결정한 뒤 비슷한 형태에 이름만 바꾼 조직은 만들지 않겠다고 밝힌 만큼 새로운 컨트롤타워 구축에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과거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삼성과 같은 거대 기업이 컨트롤타워 없이 경영을 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미래전략실이 책임없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며 불법행위로 이어졌던 사례가 있는 만큼 긍정적 방향으로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