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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또 한 번 인수합병 승부수를 던졌다.
삼성그룹으로부터 방위산업과 화학사업 관련 회사 4개를 통째로 인수했다. 인수금액만 2조 원에 이른다.
한화그룹은 이번 인수 덕에 자산규모가 37조 원에서 50조 원으로 늘어났다. 재계순위도 한 계단 올라서 9위에 오른다. 2002년 대한생명을 인수해 재계 10위권에 재진입한 지 12년 만이다.
김승연 회장은 올해 초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한화그룹의 사업구조 재편을 이끌어 왔다. 한화그룹의 제조부문을 태양광사업과 석유화학사업으로 재편하면서 비핵심기업을 팔고 여러 회사를 인수했다.
이번 삼성그룹 계열사 인수는 한화그룹 사업구조 재편의 백미다. 김승연 회장은 구조조정의 마술사이자 인수합병의 승부사로 불려왔다.
김 회장은 외환위기 때 자력으로 한화그룹의 구조조정을 완성해 오늘의 한화그룹 토대를 쌓았다.
2002년 대한생명을 인수해 인수합병 성공사례를 만들었다. 한화생명은 2조 원이 넘는 손실을 6년 만에 털어내고 보험업계 2위에 올라있다. 한화생명은 이제 한화그룹 전체 매출의 50%를 담당하며 그룹의 탄탄한 ‘자금줄’이 됐다.
김 회장은 이번 인수로 경영복귀의 발판을 다졌다. 김 회장은 최근 300여 시간의 봉사활동을 모두 채웠다.
김 회장은 얼마 전 최측근이었던 금춘수 전 한화차이나 사장을 그룹 경영기획실장으로 다시 불러들였다. 재계 인사들은 김 회장이 내년 초 경영일선에 복귀할 것으로 관측한다. 이번 인수로 한화그룹의 미래를 도모한다는 명분이 갖춰졌다.
이번 인수가 김 회장 세 아들의 경영승계 구도까지 감안했다는 분석도 업계에서 나온다.
◆ 방산사업, 독보적 국내 1위로 올라서
한화그룹은 26일 삼성그룹의 방산회사인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 석유화학회사인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 등 4개 계열사를 인수한다고 26일 밝혔다. 인수금액은 1조9천억 원에 이른다. 여기에다 성과에 따라 1천 억원을 추가로 준다는 옵션도 붙어있다.
이번 인수는 한화그룹이 먼저 제안해 이뤄졌다. 특히 한화그룹의 모태인 방산사업을 글로벌 수준으로 키우려는 김 회장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한화그룹에서 삼성탈레스의 인수를 타진했고 삼성그룹에서 지분 등이 얽혀있는 점을 감안해 4개 회사의 인수를 역으로 제안했다는 것이다.
한화그룹의 지주회사인 한화는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 인수로 방위사업부문 매출이 지난해 1조 원에서 2조6천억 원으로 뛰게 된다. 국내 방산업체 1위로 올라서는 것이다.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는 2012년 생산액 기준으로 각각 1조1650억 원, 5108억 원을 기록해 국내 1위와 7위를 기록했다.
글로벌 방산시장에서도 위상을 높일 수 있게 됐다. 한화는 올해 여름 미국 국방전문매체 디펜스뉴스가 발표한 ‘세계 100대 방산업체’ 명단에 포함되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삼성테크윈(70위)을 인수하면서 글로벌 방산업체 35위권 내로 진입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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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월 열린 '2014 대한민국 방위산업전(DX Korea 2014)'에 전시된 삼성테크윈의 K9자주포 |
특히 삼성테크윈의 경우 세계 최고 수준의 엔진을 만들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엔진기술은 거대 글로벌 방산종합기업인 미국의 록히드마틴도 보유하지 못한 기술이다. 삼성테크윈은 국내 유일의 항공기제작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지분 10%도 보유하고 있다.
김 회장은 1974년부터 정밀탄약과 유도무기 위주로 방산사업을 키워 왔다. 이번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를 인수하면서 기존 사업에 엔진, 사격통제장치, 포수조준경 등을 더해 사업다각화가 가능해 졌다.
방산업계의 한 전문가는 “방위산업은 CEO의 의지가 굉장히 중요한 산업”이라며 “장기적으로 삼성테크윈의 항공기 엔진부문과 한화의 미사일 등이 결합해 상당한 시너지를 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 화학과 정유사업도 효과 볼까
한화케미칼은 삼성종합화학과 삼성토탈 인수를 통해 석유화학사업 부문에서도 자산 20조로 국내 1위 화학회사가 됐다.
한화케미칼의 자산총액은 15조5415억 원이고 삼성토탈과 삼성종합화학의 자산총액은 각각 6조5529억 원과 1조5974억 원이다.
이로써 한화케미칼은 국내 최대화학회사인 LG화학의 자산규모 18조2616억 원을 넘어서게 된다. 직원 수도 한화케미칼,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 등 3사를 모두 합치면 약 4585 명으로, LG화학의 1만3517 명에 이어 두 번째가 된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이번 인수합병을 통해 60년 한화그룹의 모태가 되어 온 방위사업과 화학사업의 위상을 국내 최고로 높였다”며 “주요 사업부문에서 세계 일류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구축해 선택과 집중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인수를 통해 한화케미칼은 석유화학의 기초원료인 에틸렌 생산규모가 세계 9위 수준인 291만 톤으로 늘어난다.
또 다양한 원료 사업포트폴리오를 갖추면서 저가원료 기반으로 북미와 중동 등의 글로벌 석유화학 회사들과 경쟁에서 유리해졌다.
그러나 한화케미칼이 석유화학업계에서 어느 정도 규모를 갖췄다 해도 중국 화학회사들의 저가공세가 워낙 치열하다 보니 타격을 피하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삼성정밀화학은 중국수요가 감소하고 있는 고순도테레프틸산(PTA)을 주력생산하고 있어 적자가 지속될 가능성도 보인다.
또한 한화케미칼이 삼성토탈까지 떠안으면서 국내 정유업계의 유례없는 불황에 대비해야 하는 과제도 안게 됐다.
삼성토탈은 국내 정유4사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으며 ‘알뜰주유소’ 등으로 내수시장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지난 4월에도 이들의 반대로 석유협회 정회원으로 인정되지 않는 등 사업확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유업체들의 점유율 경쟁이 치열해져 이익을 얻어내기 힘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종합화학은 지난해 2조3642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영업이익은 576억 원 적자를 냈다. 삼성종합화학은 삼성토탈 지분을 50% 보유하고 있는 비상장사다.
삼성토탈은 2003년 프랑스의 토탈그룹과 50대50 비율로 합작한 회사로 합성수지와 항공유 휘발유 LPG 등을 생산한다. 지난해 매출 7조8691억 원과 영업이익 5496억 원을 거뒀다.
◆ 김승연, 2조 자금 어떻게 마련하나
김승연 회장이 이번 인수로 2조 원에 이르는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해 시장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김 회장이 그동안 주도적으로 추진했던 태양광사업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보지 못하면서 현금을 확보할 여력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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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화생명 본사 |
한화그룹이 추진했던 다우케미칼 인수자금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태양광사업 등을 확장하고 있어 차입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그러다 보니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한화그룹의 자금줄인 한화생명을 매각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한화그룹의 연결기준 순차입금은 지난 3분기 기준으로 4조 원 정도다. 한화그룹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최근 한화첨단소재의 건자재부문과 제약계열사인 드림파마 등 주력사업을 매각해 자금을 확보하고 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9천억 원 수준의 인수자금을 이미 확보했고 분납을 통해 인수금액을 지불하는 만큼 자금조달에 문제없다”며 “한화생명 매각은 사실무근”이라고 말했다.
삼성그룹은 이번에 4개 회사를 한화그룹에 넘기면서 한화그룹의 자금사정을 고려해 삼성테크윈은 2년, 삼삼성종합화학은 3년 동안 분할 결제하도록 배려했다.
그러나 증권업계나 신용평가사는 자금조달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는 등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권영배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한화케미칼은 연간 순이자비용으로 2200억 원을 지출하고 있다”며 “인수대금 5천억 원 가량을 외부로부터 차입할 경우 이자 부담이 더 커지게 된다”고 분석했다.
이응주 신한금융투자 연구원도 “한화그룹의 자금조달 계획을 보면 배당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보인다”며 “구체적 조달계획이 나올 때까지 좀더 기다려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김승연의 인수합병의 역사
김 회장은 그동안 수많은 인수합병으로 한화그룹의 규모를 키워 왔다.
김 회장은 1982년 한양화학과 한국다우케미칼을 인수해 10대 그룹으로 도약했다. 당시 제2차 석유파동 탓에 글로벌 화학경기가 위축돼 임원들의 반대가 심했는데도 이들 회사를 인수했다.
이 덕분에 김 회장은 1980년 7300억 원이던 한화그룹 매출 규모를 1984년 2조1500억 원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어 정아그룹 한양유통 골든벨상사 등을 차례로 사들여 한화갤러리아 등 유통사업의 기반을 만들었다.
김 회장은 2000년대 들어 동양백화점과 대우전자 방산부문, 신동아화재해상보험 등을 인수했다.
이런 인수합병 행진은 2002년 대한생명을 인수하면서 정점에 올랐다. 김 회장은 적자에 허덕이던 대한생명을 한화생명으로 탈바꿈하고 한화그룹의 현금창출원으로 만들었다.
그뒤에도 2012년 파산기업이던 독일의 큐셀을 인수해 태양광사업에 뛰어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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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관 한화솔라원 영업실장 |
◆ 김승연, 승계구도 발판 마련하나
이번 인수에 한화그룹의 계열사인 한화에너지가 참여하면서 승계구도와 관련해 눈길을 끌고 있다.
한화에너지는 석유화학과 사업상 직접 연관이 없다. 한화에너지는 열병합 발전사업을 하고 있다.
이번 인수에서 한화에너지는 삼성종합화학 지분 57.6% 가운데 30%를 가져가면서 한화케미칼보다 2.4% 많은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한화에너지는 한화그룹의 주력계열사인 한화케미칼보다 규모는 작지만 영업이익률은 30%가 넘을 정도로 알짜다. 사내유보금만 3천억 원에 이른다. 한화에너지는 지난해 매출 4434억 원, 영업이익 1622억 원을 거뒀다.
이번 인수에서 한화에너지 참여가 주목되는 점은 한화에너지가 한화그룹의 시스템통합업체인 한화S&C의 자회사라는 점이다.
한화S&C는 장남 김동관 한화솔라원 영업실장이 50%, 차남 김동원 한화그룹 디지털팀장이 25%, 삼남 김동선 한화건설 매니저가 25%씩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다.
한화S&C는 또 한화에너지(100%) 한컴(69.9%) 한화큐셀코리아(20%) 휴먼파워(100%) 등 계열사 지분도 보유하고 있고 지주회사인 한화의 지분 2.2%도 소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화에너지가 향후 3세 경영승계 과정에서 상당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들은 한화S&C의 몸집을 키운 뒤 한화그룹의 지주회사인 한화와 합병하는 방식을 통해 한화그룹이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에게 경영권을 넘기는 발판을 마련할 것으로 예상한다.
김 회장의 세 아들이 보유하고 있는 한화 지분은 미약하다. 김동관 실장은 한화 지분 4.4%를, 나머지 두 아들은 각각 1.7%씩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한화와 한화S&C를 합병할 경우 세 아들은 손쉽게 지분을 늘릴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한화S&C의 자회사인 한화에너지의 기업가치가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점친다.
업계 관계자는 “한화S&C의 기업가치를 끌어올려야 경영승계에 있어 연결고리를 마련할 수 있다”며 “한화에너지가 이번 인수를 통해 몸집을 키우면 지배회사인 한화S&C도 덩달아 커지면서 나중에 한화와 합병할 때 세 아들의 지분율이 높아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한화에너지의 경우 영업이익률이 높고 사내유보금이 충분해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한 것”이라며 “산업단지에 전기 등을 공급하는 사업구조상 석유화학업에 대한 이해도도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계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