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영 동부그룹 회장이 금융계열사를 주축으로 동부그룹의 새 ‘정체성’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김남호 동부금융연구소 상무의 경영권 승계작업도 함께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26일 재계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동부그룹은 11월1일 공식적으로 ‘DB그룹’으로 이름을 바꾸고 ‘CI선포식’과 함께 이 회장체제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매각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동부대우전자를 제외한 모든 계열사들도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거쳐 이름을 ‘DB’로 바꾸기 위한 준비를 모두 마무리했다.
이 회장은 이름변경을 계기로 제조사 이미지가 강한 동부그룹에서 벗어나 금융그룹으로 거듭나기 위한 작업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제조업을 바탕으로 그룹을 일궜던 김준기 전 회장이 9월 물러나고 ‘금융전문가’로 꼽히는 이 회장이 그룹을 이끌게 된 만큼 금융그룹의 색채가 짙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회장은 한국투자신탁 사장과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산업은행 총재, 금융감독원장 등을 맡은 뒤 2008년부터 동부그룹에서 일하고 있다.
김 전 회장이 구조조정을 거친 뒤 제조업과 금융업을 두 축으로 삼아 그룹의 재도약을 추진했지만 제조업 계열사가 매각과 실적부진 등을 겪으며 정상화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점도 금융그룹 전환 가능성에 힘을 실어준다.
김 전 회장이 애착을 보였던 동부대우전자의 경우 매각절차가 일정대로 진행되고 있다.
동부대우전자 재무적투자자(FI)들은 동부대우전자 적격인수후보를 대유위니아와 중국 메이디, 프랑스 브란트, 터키 베스텔 등 4곳으로 좁힌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주관사인 NH투자증권은 11월 중순에 본입찰을 진행해 올해 안에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을 세웠다.
동부그룹은 동부대우전자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전략적투자자(SI)를 유치하는 방안이나 산업은행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는 방안 등을 추진했지만 뾰족한 대안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부하이텍의 경우 2014년 13년 만에 처음으로 흑자를 거둔 뒤 3년 연속으로 실적을 개선해왔지만 올해는 중국 스마트폰업체들의 반도체수요 감소 등에 영향을 받아 실적이 후퇴할 것으로 예상됐다.
최도연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동부하이텍이 올해 매출 6937억 원, 영업이익 1591억 원을 낼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보다 매출은 10.3%, 영업이익은 7.7% 줄어드는 것이다.
제조업계열사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과 달리 동부화재와 동부생명, 동부증권 등 금융 계열사는 그룹 전체 매출에서 약 90%를 차지하며 굳건하게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김 전 회장의 장남인 김남호 동부금융연구소 상무가 동부그룹 금융부문의 전략을 총괄하는 동부금융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도 금융계열사를 주축으로 하는 그룹 쇄신 가능성에 힘을 실어준다.
김 상무는 동부 지분 18.59%, 동부화재 지분 9.01%를 각각 보유해 두 회사의 최대주주에 올라있다.
그룹 지분구조상 동부와 동부화재가 각각 제조업 계열사와 금융계열사 정점에 있는 회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그룹 전반에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는 지분을 들고 있는 셈이다.
이 회장이 금융계열사로 그룹의 중심을 옮기는 과정에서 김 상무가 몸담고 있는 동부금융연구소가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을 가능성도 높다.
김 상무가 1975년생으로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인 만큼 충분한 경험을 쌓을 때까지 이 회장이 일종의 ‘가교’ 역할을 맡게 되는 셈이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비금융부문이 축소된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이 회장이 취임한 뒤 금융과 비금융의 조화를 강조한 만큼 금융계열사를 중심으로 한 그룹 쇄신은 너무 앞서간 이야기”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최석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