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하나은행과 외한은행의 조기통합을 이루고 회장 연임에 성공할 수 있을까?
김 회장이 배수의 진을 치고 조기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외환은행 독립경영을 5년 동안 보장한다는 합의서는 백지로 만들었다. 올해 초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을 퇴진시키고 김한조 행장을 앉힌 것은 그 전주곡이었다.
김 회장은 최근 직접 외환은행 노조와 대화에 나서고 있다. 김 회장은 지난 13일 외환은행 노조 사무실을 직접 방문해 김근용 노조위원장과 마주 앉았다. 그동안 노사합의는 김한조 외환은행장의 몫이라는 데에서 방향을 선회했다.
이는 정치권에서 외환은행 독립경영 합의를 지킬 것을 요구하는 데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노사합의를 통합의 전제로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김 회장으로서 그만큼 절박하게 조기통합을 밀어붙이고 있다.
김 회장이 조기통합을 강력히 추진하는 데 김 회장의 연임에 대한 의지와 닿아있다고 금융권 관계자들은 얘기한다. 김 회장은 2012년 3월 취임해 2015년 3월 임기가 끝난다.
김 회장은 2012년 취임하면서 2015년까지 국내 은행업계 1위가 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실적은 크게 떨어져 하나금융은 신한금융과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
김 회장의 조기통합 추진은 연임을 보증해주는 비장의 카드이기도 하다.
◆ 김정태는 왜 조기통합 서두를까
김 회장은 2015년 3월 임기가 끝난다. 그는 1952년 태생으로 하나금융 회장직 제한연령인 만 70세보다 나이가 적어 연임이 가능하다.
김 회장은 그동안 연임을 착실히 준비했다.
하나금융 회장 임기는 3년으로 연임할 경우 1년씩 임기가 연장된다. 그런데 하나금융 이사회는 지난 4월 기존 회장이 다시 선임될 경우 3년을 이어서 일하는 것으로 연임방식을 바꿨다. 이에 따라 김 회장은 연임을 할 경우 2018년까지 임기를 보장받는다.
하나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하는 사외이사도 올해 들어 대폭 바뀌었다. 하나금융은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임기가 끝난 사외이사 5명 가운데 4명을 교체했다.
당시 자리에서 물러난 사외이사들은 대부분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 시절 선임된 인사들이다. 김 회장은 사외이사 물갈이를 통해 이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했다.
김 회장의 연임가도에 발목을 잡는 게 있다면 하나금융의 부진한 실적이다. 하나금융은 지난해 연결재무제표 기준으로 당기순이익 9430억 원을 기록했다. 순이익은 2011년 말 1조3031억 원에서 1조 원 아래로 내려갔다.
김 회장은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통합 후 실적개선을 부쩍 강조한다. 그는 “현재 외환은행 국내 영업지점 수가 320개고 하나은행은 630개로 통합할 경우 960개가 된다”며 “두 은행이 합치면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부분이 무궁무진하다”고 밝혔다.
하나금융이 전통적으로 인수합병을 통해 규모를 키우면서 실적을 극대화해왔던 전력도 김 회장에게 힘을 실어준다. 하나금융은 1991년 처음 영업지점 2개를 내면서 은행업계에 발을 디뎠다. 그뒤 서울은행, 보람은행, 충청은행을 인수해 빠르게 성장했다.
하나금융의 한 관계자는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통합할 경우 시너지를 살릴 수 있다는 김 회장의 말에 하나금융 내부에서 대체로 공감한다”며 “조기통합이 이뤄지면 이를 통해 하나금융 성장을 꾀하라는 요구는 김 회장의 몫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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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오른쪽)이 지난 8월5일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를 찾아 송락경 센터장에게 설명을 듣고 있다. <하나금융지주> |
◆ 하나-외환 조기통합 성공 바이러스 퍼뜨리는 김정태
하나금융이 공식적으로 추산한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조기통합 시너지는 약 1조 원이다.
하나금융은 두 은행이 합병하게 되면 비용절감 및 수익증대를 통해 연평균 3121억 원의 시너지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본래 통합논의가 예정됐던 2017년보다 3년 빨리 할 경우 그만큼 효과가 커진다는 뜻이다.
김 회장도 두 은행의 통합이 훌륭한 시너지를 만들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금융사는 서로 통합해야 비용은 줄이고 수익을 올린다”며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인도네시아 통합법인이 거둔 성과를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하나금융은 올해 3월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인도네시아 법인을 통합했다. 이 통합법인은 지난달 말 기준으로 총자산이 15조4천억 루피아(1조3629억 원)에 이르러 합병 전보다 60% 성장했다. 현지 은행의 평균자산성장률 20%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대출금과 당기순이익도 이전보다 각각 19.9% 및 42.2% 증가했다.
김 회장은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통합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게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올해 상반기 말 기준으로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총자산은 각각 194조 원과 146조 원이다. 두 은행이 통합할 경우 총자산 340조 원으로 KB국민은행(292조 원), 우리은행(273조 원), 신한은행(263조 원), NH농협은행(195조 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총여신 규모로 따져도 하나-외환은행 통합법인이 1위에 오른다. 현재 하나은행 총여신은 129조 원이며 외환은행은 80조 원이다. 둘이 합병한다면 총여신이 209조 원까지 늘어나면서 선두인 국민은행(200조 원)을 제치게 된다.
금융업계 관계자들은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통합할 경우 외환거래사업에서 특히 시너지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본다. 하나금융은 올해 상반기 당기순이익에서 해외영업부문이 전체의 17.7%를 차지해 다른 금융사보다 비중이 높다.
외환은행은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23개 국가에 92개 네트워크를 보유했다. 국내 단일은행 중 가장 해외영업망이 넓다. 여기에 하나은행을 합치면 총 24개 국가에 128개로 네트워크가 늘어나게 된다.
김 회장은 2016년 시행되는 계좌이동제를 고려해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통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계좌이동제는 고객이 주거래계좌를 다른 은행으로 옮길 때 기존 계좌에 연결한 공과금과 급여이체 등도 별도 신청 없이 옮겨지는 것을 말한다. 금융업계 전문가들은 이 제도가 시행될 경우 각 은행들이 다른 은행에서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고 있다.
김 회장은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연내에 통합하고 다음해에 전산까지 합치는 것이 가장 낫다”며 “이렇게 해야 계좌이동제가 시행되는 2016년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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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왼쪽)이 지난 1일 주최한 외환은행 노사간 중재 모임에서 김한조 외환은행장(맞은편 오른쪽 첫째), 김종준 하나은행장(오른쪽 둘째), 김창근 하나은행 노조위원장(오른쪽 셋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하나금융지주> |
◆ 조기통합, 김정태에 양날의 칼 되나
김 회장에게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조기통합은 양날의 칼이다.
조기통합에 성공하면 연임의 보증수표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실패한다면 김 회장의 입지를 오히려 조일 수 있다.
또 설령 김 회장이 조기통합을 이뤄 연임에 성공한다고 해도 다음 임기 내내 조기통합의 후유증에 시달릴 수 있다.
금융업계 전문가들은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통합하면서 수익지표 개선없이 자산만 늘어날 경우 오히려 경영위험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한 금융학계 연구자는 “실물경제보다 너무 많은 은행 규모 키우기는 부실자산을 늘린다”며 “자칫 위험성만 높아지고 수익성을 떨어지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예로 든 인도네시아 통합법인 성공의 경우 이제 막 금융 인프라가 깔리기 시작한 신흥시장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도네시아는 현재 인구 10만 명 당 상업은행 영업지점 수가 9.6개로 한국의 18.4개보다 훨씬 적다. 이미 성숙기를 넘어 저성장과 저금리에 시달리는 국내 금융시장과 비교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통합을 서두르는 과정에서 갈등의 골이 지나치게 깊어지는 것도 나중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노사갈등이 극한에 치달은 것은 물론이고 두 은행이 통합된 뒤에도 직원들이 제대로 섞이지 않을 경우 앞으로 더 큰 문제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외환은행 노조는 하나금융이 직원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채 겉으로만 대화를 하는 척 한다고 반발한다. 노조 관계자는 “약속을 어긴 데서 벗어나 두 은행은 부실금융기관도 아닌데 통합 사전작업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며 “노사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노사갈등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채 조기통합이 이뤄지면 내부동요 때문에 경영환경이 불안해질 가능성이 생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두 은행을 합병하려면 양쪽 직원들이 통합을 환영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필수적”이라며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할 경우 차별이나 구조조정에 대한 우려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두 은행을 통합해도 영업지점을 줄이거나 인력 구조조정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하나금융이 이전에 펼쳤던 영업전략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불안은 외환은행을 비롯해 하나은행 내부에서도 고개를 든다.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은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서울지역에 각각 영업지점 280개와 147개를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지역이 중복되는 곳이 많아 합병 후 영업지점 통폐합을 시행할 가능성이 높다. 외환은행이 하나은행보다 평균 연봉이 2천만 원 가량 많은 것도 구조조정 불안에 더욱 불을 붙인다.
결국 통합이 이뤄져도 장기적으로 통합법인 안에서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출신 직원 사이의 갈등과 반목을 뿌리박게 할 수도 있다.
국민은행의 경우 2001년 주택은행과 합병한 지 13년이 흘렀으나 지금도 두 은행 세력 사이에 갈등은 여전하다. 국민은행이 ‘리딩뱅크’에서 추락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도 꼽힌다.
은행권 관계자는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통합이 성공하려면 각 은행 직원들의 분위기가 먼저 하나가 될 필요가 있다”며 “독립경영을 보장하는 동안 드는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정서통합을 우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