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출범 후 처음으로 서울권 아파트 분양권의 거래금지와 지역별 금융규제 강화 등을 뼈대로 하는 부동산대책을 내놓았다.
부동산시장 과열현상을 잡기 위한 투기과열지구 지정 등은 대책에서 빠졌지만 문재인 정부의 정책기조를 볼 때 규제를 점점 조일 것으로 보인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부동산시장 안정화에 강한 의지를 보인다는 점을 감안할 때 ‘분양원가 공개제도’와 ‘분양가상한제’, ‘후분양제’ 등 강력한 규제책이 도입될 가능성이 여전히 열려 있다.
◆ 정부, 앞으로 내놓을 부동산대책에 뭘 더 담을까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금융위원회 등 부동산정책을 주관할 정부부처들이 19일 서울 정부청사에서 합동브리핑을 열고 ‘주택시장의 안정적 관리를 위한 선별적 맞춤형 대응방안’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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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형권 기획재정부 제1차관이 19일 오전 서울 정부청사에서 '주택시장의 안정적 관리를 위한 선별적 맞춤형 대응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40일 만에 내놓은 첫 부동산정책은 ‘서울권 아파트 분양권의 전매금지’와 ‘청약조정대상지역의 금융규제 강화’로 압축할 수 있다.
실수요자 위주로 분양시장을 재편하고 과도한 부채를 끌어와 집을 무리하게 사는 구조를 바꾸기 위한 대책으로 평이한 수준의 부동산대책을 내놨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집값을 안정화시키는 데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투기과열지구 선정’이 빠진 점은 아쉬운 대목으로 꼽힌다.
하반기에 부동산시장에 풀리는 아파트 입주물량이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는 데다 금리가 인상될 여지가 있어 문재인 정부가 집값을 안정화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이는 수준에서 정책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업계는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시장을 안정화하겠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낸 만큼 앞으로도 이런 기조의 부동산정책이 계속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보고 있다.
특히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청문회 과정에서 부동산시장의 과열현상을 바라만 보고 있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면서 앞으로 발표될 부동산정책의 규제수준이 점점 강화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 김현미, '분양원가 공개제도'와 '분양가 상한제' 검토할까
김 후보자가 청문회 당시 발언했던 내용을 놓고 분석하면 앞으로 ‘분양원가 공개’와 ‘분양가 상한제’ 등이 다음 부동산대책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김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분양원가 공개와 관련한 입장을 묻는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의 질문에 “공공주택부문부터 분양원가 공개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민간은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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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
분양원가 공개제도는 건설사들이 아파트를 지을 때 얼마만큼의 원가가 들었는지를 공개하는 제도다. 참여정부가 2006년에 도입했다가 이명박 정부 말기인 2012년에 폐지됐다.
국내 건설사들은 분양원가 공개제도로부터 자유로워 현재 건설원가에 적정이윤을 합한 금액이 아닌 주변 시세를 고려해 분양가격을 결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건설사들이 의도적으로 부동산시장 띄우기에 앞장서 분양가격이 치솟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분양원가 공개제도가 재도입될 경우 분양가격의 왜곡현상이 바로잡히는 효과를 볼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참여정부가 2007년 9월부터 전국의 모든 아파트를 대상으로 61개 항목의 분양원가를 공개하기 시작한 뒤부터 2012년 까지 약 5년 동안 서울시 아파트 매매가격은 약 6.8% 내렸다.
분양원가 공개제도와 함께 추진될 정책으로 박근혜 정부가 사실상 무력화한 분양가 상한제가 다시 도입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분양가 상한제는 주택을 분양할 때 택지비와 건축비에 건설사들이 얻어야 하는 적정 이윤을 보탠 분양가격을 산정해 이 가격 이하로 분양하도록 정한 제도다. 분양원가 공개제도와 함께 추진될 경우 고공행진을 거듭하는 부동산시장의 과열양상이 한풀 꺾일 것이라고 부동산 전문가들은 바라본다.
◆ 김현미, 부동산시장 체질 어디까지 바꿀까
부동산업계가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될 부동산정책이 규제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높다는 데 무게를 싣는 배경에는 김 후보자의 이력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그동안 국토교통부 장관에는 행정부 출신의 관료나 민간 경제연구소 출신 인사가 대거 임명돼왔다.
현재 국토교통부 수장인 강호인 장관은 기획재정부에 오래 몸담은 행시 출신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초대 국토교통부 장관을 맡은 서승환 전 장관은 한국주택학회에서 이사를 역임했다.
이런 이력 때문에 주택시장의 정책을 수립하고 지휘할 수장으로서 부동산시장 안정화와 관련한 요구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건설업계의 이익을 훼손할 수 있는 강력한 부동산대책을 마련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면 김 후보자는 3선 의원을 하면서 국회 정무위원회와 예산결산위원회 등에서 활동하기만 했을 뿐 국토교통위원회에서 활동한 경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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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정부에서 '분양원가 공개제도'와 '분양가상한제', '후분양제' 등의 도입이 검토될 가능성이 있다. |
야당은 김 후보자가 국토교통위원회 활동을 하지 않은 점을 이유로 들어 국토교통부 장관으로서 충분한 역량을 발휘하기 힘들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김 후보자가 그만큼 건설업계의 입김에서 자유롭게 부동산정책을 수립할 여지가 크다고도 볼 수 있다.
부동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건설업계 눈치를 보지 않고도 부동산시장의 체질을 개선할 적임자로 김 후보자를 국토교통부 장관에 낙점했다는 시각이 많다”고 말했다.
건설업계는 김 후보자가 ‘후분양제’를 도입할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모든 건설사들이 아파트를 짓기도 전에 분양을 받는 ‘선분양제’를 실시하고 있다. 한 번 분양을 받고 나면 아파트가 제대로 지어지는지와 관련없이 아파트를 사야한다는 맹점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부동산시장에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민간건설사가 주택시장에서 상당히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민간건설사들이 준공률이 일정부분 넘은 아파트만 분양을 실시할 수 있기 때문에 투기수요가 줄어들는 효과를 봐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의 분양가를 책정하기 힘들어진다.
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서 “후분양제는 소비자의 권익 보호를 강화하고 투기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며 “장관으로 취임한다면 후분양제 의무화를 신중하게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