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가상현실기기 ‘기어VR’이 시장에서 영향력을 점점 잃고 있다.
가상현실시장이 점차 고성능 콘텐츠와 고가제품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경쟁력이 뒤처지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과 결합하는 형태의 기어VR은 성능발전에 한계가 있는 만큼 삼성전자는 가상현실사업의 본격적인 성장을 위해 별도 기기의 출시를 준비하며 고급화전략에 시동을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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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장. |
경제전문지 포천은 2일 “가상현실은 아직 소비자들에 ‘현실’로 자리잡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아직 틈새시장에 불과하지만 일부 기업은 주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1분기에 기어VR 49만 대를 판매해 21.5%의 점유율로 1위에 올랐다. 2위 소니가 43만 대, 3위 HTC가 19만 대 정도로 뒤를 이었다.
IDC는 가상현실기기 판매량을 처음 집계했는데 삼성전자 기어VR의 판매량이 이전과 비교할 때 하락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기어VR을 고가 스마트폰 갤럭시S와 갤럭시노트 시리즈에 결합해 사용하는 형태로 내놓았다. 가격을 10만 원 안팎으로 낮추고 이를 스마트폰 구매자에 사은품으로 제공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가격이 각각 400달러, 800달러로 높은 소니 ‘플레이스테이션VR’과 HTC ‘바이브’의 판매성적에 비교하면 삼성전자가 가상현실시장에서 입지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IDC는 삼성전자가 가상현실기기 판매에 고전하는 원인으로 고사양 콘텐츠의 부족을 꼽았다.
소비자들은 소니와 HTC의 제품을 플레이스테이션이나 PC에서 전용 게임 등 고사양 콘텐츠를 즐기기 위한 목적으로 구매한다. 반면 삼성전자는 아직 사용자의 수요를 자극할 만한 뚜렷한 콘텐츠가 없다.
기어VR의 최대 약점은 스마트폰의 성능에 맞추다 보니 콘텐츠의 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저사양 콘텐츠는 판매가격도 낮아 개발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이유가 적다.
삼성전자는 기어VR을 게임뿐 아니라 사회관계망(SNS) 플랫폼으로 활용하려는 목적을 두고 360도 카메라 등 관련제품을 출시하며 페이스북과도 가상현실사업에서 협력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가상현실기기의 수요층이 게임 등 특정 콘텐츠에 집중돼 있어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기어VR 전용으로 UFC 등 스포츠경기의 생중계권을 확보하고 글로벌 게임개발자를 초대해 개발자회의를 여는 등 가상현실 콘텐츠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하드웨어 성능개선 없이는 기어VR이 시장경쟁력을 확보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온다.
삼성전자는 가상현실사업에서 고민을 안고 있다. 스마트폰과 연결해 쓰는 형태의 기기로 초반에 빠르게 시장을 선점했지만 지속성장과 수익확대는 불투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삼성전자도 주요 경쟁기업을 뒤따라 스마트폰과 별도로 사용할 수 있는 고성능 가상현실기기를 선보이는 쪽으로 전략을 선회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최근 국제 디스플레이학회 ‘디스플레이위크2017’에 참가해 해상도를 기존의 3.5배로 끌어올려 기존에 약점으로 꼽혔던 화질을 대폭 개선한 기어VR 시제품을 선보였다.
기어VR에서 고사양 가상현실 콘텐츠를 구동할 수 있을 정도로 스마트폰의 성능과 디스플레이 화질을 높인다면 원가상승과 전력효율 감소가 불가피하다. 가상현실기기 사용을 원하지 않는 소비자에는 불필요한 부담을 지우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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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전자 가상현실기기 '기어VR'. |
삼성전자는 차기 스마트폰부터 구글의 가상현실 플랫폼 ‘데이드림’도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스마트폰과 가상현실기기를 연결하는 형태인 만큼 기어VR의 입지는 더 축소될 수밖에 없다.
LG전자 역시 지난해 스마트폰 G5와 연결해 사용하는 가상현실기기를 출시했지만 흥행에 실패하자 PC와 연결할 수 있는 별도의 고성능 가상현실기기를 개발하는 쪽으로 전략을 선회했다.
이영희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부사장은 최근 미국 씨넷과 인터뷰에서 “기어VR은 아직 시작단계에 불과하다”며 “스마트폰의 소비자경험을 넓히는 동시에 향후 전문가용 시장까지 진입을 확대할 목표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가상현실기술은 향후 신사업인 기업용 솔루션이나 원격진료, 전장부품분야까지 적용될 수 있어 확장성이 높은 사업으로 꼽힌다. 초반에 성과가 부진하더라도 삼성전자는 계속 투자를 이어갈 공산이 크다.
씨넷은 “삼성전자는 저가 가상현실기가와 고가제품의 격차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며 가상현실시장의 확대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다양한 전략변화로 선두기업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