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전체 주식수의 13%에 이르는 자사주를 모두 소각하기로 결정하며 우호지분이 크게 줄어 삼성그룹의 지배력 약화가 불가피해졌다. 외국 투자자들의 비중과 영향력도 더 커지게 됐다.
이런 변화에 맞춰 삼성전자는 외국인 주주들의 기준에 맞도록 적극적으로 주주환원정책을 강화하며 ‘글로벌 스탠다드’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를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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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김선우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28일 “삼성그룹이 삼성전자의 지배력을 높이기 어려워졌다”며 “주주들의 우호적 여론을 확보하기 위해 주주환원정책이 필연적으로 강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공식적으로 검토중이던 지주사 전환계획을 철회했다. 앞으로도 지주사 전환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기 위해 보유한 13% 정도의 자사주를 내년까지 소각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인적분할 뒤 지주회사가 사업회사를 지배하는 형태로 재편될 것으로 예상됐다. 이 경우 지주회사는 사업회사의 신주를 배정받아 의결권이 있는 주식수를 기존의 2배로 늘려 안정적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자사주 소각결정으로 상황이 완전히 바뀌게 됐다.
현재 삼성전자의 우호지분은 자사주와 계열사, 오너일가 등 특수관계인 지분을 포함해 31.6% 정도다. 자사주를 매각할 경우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이 높아져도 20% 정도에 그친다.
국민연금의 지분율은 10% 이상으로 높아지지만 박근혜 게이트 여파로 이를 우호지분으로 확보하기 어렵게 됐다. 외국인 주주의 비중은 현재의 50.7%에서 58% 정도로 대폭 높아진다.
향후 삼성전자가 이사 선임이나 주요 사업계약 체결, 인수합병 등 주주 동의가 필요한 안건을 결의할 때 외국인 주주들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커지게 되는 셈이다.
삼성그룹은 과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서 외국인 주주들의 반대로 곤혹을 치렀다. 이재용 부회장이 재판을 받고 있는 뇌물죄 혐의도 이 과정에서 정부의 도움을 노렸다는 의혹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외국인 주주들도 대부분 동의한 지주사전환을 포기하고 ‘어려운 길’을 택한 배경을 놓고 다양한 관측이 이어지고 있다.
이승우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지주사전환 철회가 이 부회장의 재판에 유리한 법리적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삼성전자 실적이 최근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만큼 성장에 집중하기 위해 계획을 철회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외국언론과 해외 증권사들은 삼성전자의 결정에 대체적으로 긍정적 반응을 내놓고 있다. 기존 한국 재벌기업들과 차별화되는 방향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삼성전자는 지주사 전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대신 ‘플랜B’를 내밀었다”며 “이 부회장의 경영승계 방법 등은 불투명하지만 주주들은 대체로 만족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삼성전자 지주사 전환을 요구했던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도 삼성전자의 이번 결정을 “변화의 중요한 첫걸음”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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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 싱어 엘리엇매니지먼트 회장. |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월스트리트저널을 통해 “삼성전자가 이번 결정을 계기로 주주환원정책을 점점 더 강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매우 고무적으로 보고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삼성전자는 지배구조와 주주환원정책 등을 모두 ‘글로벌 스탠다드’ 수준에 맞춰 변화하겠다는 목표를 꾸준히 강조하고 있다. 이번 결정을 계기로 이런 노력에 더 속도가 붙을 수 있다.
노무라증권은 삼성전자가 마침내 ‘한국형 디스카운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며 세계적으로도 주주환원에 가장 모범적인 기업 가운데 하나로 거듭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전자는 이미 2020년까지 장기적인 주주환원계획을 검토하는 단계에 있다고 밝혔다.
블룸버그는 “삼성전자는 한국 재벌기업의 변화에 첫 포문을 열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며 “정권교체와 맞물려 이를 계기로 한국 대기업에 대규모 개혁운동이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