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제목은 ‘한국 금융은 왜 이토록 잔인한가: 신용등급이라는 불완전한 과학’, 2편과 3편 제목은 각각 ‘금융위기는 누가 만들었나: 절벽으로 설계된 도넛 시장’ ‘끊어진 시장을 잇는 방법: 금융을 다시 연결하는 설계’다.
5일 올린 보론(補論) ‘1997년이 남긴 그림자와 소유구조의 메커니즘’까지 더하면 모두 4편이다. 김 실장이 올린 장문의 글은 은행 시스템에서 밀려나는 중저신용자 대출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금융은 왜 이리 잔인한가. 중저신용자를 향한 대출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준공공기관’인 은행이 변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그동안 수차례 강조해 온 질문을 김 실장이 이어받은 것인데 무게감이 다르다.
이 대통령이 “왜 가장 여유 있는 사람이 낮은 금리를 누리고, 가장 절박한 사람이 가장 비싼 이자를 내야 하나” 물었을 땐 정치적 수사로 치부되며 금융시스템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김 실장 본인조차도 이번 글에서 “대통령은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며 “신용의 기본을 모르고 하시는 질문이라 생각했다”고 적었다.
하지만 김 실장은 다르다.
그는 금융 전문가다. 재정경제부,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를 거친 정통 금융관료로 누구보다 금융의 생리를 잘 안다. 그런 그가 자신도 지금의 체제를 정당화한 ‘공범’이라는 자기 비판적 반성을 담아 화두를 던졌으니, 더없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6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도 김 실장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맨날 그 말을 길게 했는데 그걸 간단히 줄여 주셨다. 아주 잘 지적하셨다. 실장님은 권한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냥 뜻대로 하세요.”
은행의 역사는 규제와의 싸움으로도 볼 수 있다.
현대 은행업은 중세 유럽 이탈리아 북부 환전업과 영국의 금은 세공업에서 시작됐다.
이후 더 많은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의 속성상 은행은 정부 규제가 약할 때는 탐욕을 부리다 부실해졌고 이를 막기 위해 다시 규제가 강해지는 과정을 거치며 건전성과 안정성을 확보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규제의 방법과 강도가 변하며 은행이 사회와 안정적으로 공존하는 방식을 터득한 것인데 이 시대 한국사회는 은행에 ‘수익성’ ‘건전성’과 함께 ‘포용’을 요구하고 있다.
은행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포용금융은 서민금융, 미소금융, 행복금융, 상생금융 등 이름만 바뀌었을 뿐 진보와 보수 정권을 가리지 않고 지난 20여 년 동안 언제나 국내 금융권의 핵심 화두였다.
시대적 요구라는 점, 이는 김 실장의 글에 동의할 수 없는 몇몇 지점들이 있음에도 그의 진지한 고민을 응원하는 이유다.
김 실장은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에게 페이스북 글 때문에 “욕을 먹고 있다”고 푸념했지만, 표정은 더없이 당당했고, 그가 바라던 대로 관련 논의도 이미 시작됐다.
금융당국이 직접 움직이는 것은 물론 언론과 SNS 상에서도 관련 이야기들이 지속해서 나오며 공론장에서 생산적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김 실장 페이스북 댓글만 봐도 ‘당신 개인자금이면 그렇게 빌려줄 수 있느냐’는 비판부터, 현장의 고충을 담은 권재중 전 JB금융지주 부사장의 제언과 권 전 부사장의 글을 반박하는 ‘생산적 금융’의 저자 김용기 전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의 반론까지, 여러 의견이 오가고 있다.
다만 여러 논의와 고민의 종착지에 완벽한 해답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 이재명 대통령은 6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김용범 실장의 페이스북 글을 칭찬하며 은행의 사회적 책임 확대 논의에 힘을 실어줬다. 사진은 이재명 대통령이 7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김용범 정책실장(왼쪽),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오른쪽)과 함께 입장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결국 중저신용자 가운데 돈을 갚을 사람들을 잘 분별해서 돈을 빌려주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현재 상황에서는 돈을 갚을지 안 갚을지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김 실장은 글에서 “신용등급은 철저히 ‘과거’만 본다”며 현재 신용평가 시스템을 비판했지만 이는 인간이기에 지니는 한계일지도 모른다. 미래를 보는 건 신의 영역이다.
차주가 열심히 일해서 갚으려 해도 거시경제 등 예기치 않은 외부변수에 무너질 수도 있다. 이는 아무리 정교한 기법으로 미래를 예측한다 해도 다수의 경제전문가가 틀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차주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미래를 더 정교하게 예측하려는 노력은 계속 돼야 한다.
마치 일기예보 같은 걸 수 있다. 가끔 틀릴 때도 있지만 사회 전체 효용을 높이는.
조선시대 일기예보 시스템이 있었다면 기우제는 없었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바라는 건, 정치적으로 중저신용자 대출을 늘리겠다는 목표를 정해놓고 고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신용평가 시스템의 개선 없이 무턱대고 중저신용자 대출을 늘리려고 하면 향후 부실이 커지며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이한재 금융증권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