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한국철도공사(코레일) 현장에서 발생한 잇단 사망사고로
한문희 사장의 안전관리 역량에 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산업재해 근절에 공을 들이는 상황에서 사망사고를 놓고 공기업으로서 책임을 피하기 어려운 만큼 한 사장의 임기 완주 여부를 놓고 시선이 몰린다.
▲ 한문희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사장의 거취가 안갯속에 빠졌다. |
20일 정부와 정치권 안팎을 종합하면 지속해서 사망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코레일을 향한 비판과 압박 수위가 점차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수년 동안 코레일 관리 현장 등에서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이 민간 기업의 산업재해 근절에 전력을 다하는 상황에서 코레일에서 새 정부 들어 처음으로 공기업 관련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전날 10시50분경 경부선 남성현-청도 구간에서 구조물(비탈면) 안전점검 현장으로 이동하던 작업자들이 무궁화호 열차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안전점검 전문업체 및 코레일 직원 1명씩 모두 2명이 사망하고 업체 직원 5명이 부상을 입었다.
김윤덕 국토부 장관 등이 현장을 찾아 직접적으로 코레일을 비판한 만큼 주무부처 국토부 차원에서 코레일의 안전관리체계를 향해 쇄신의 칼날을 들이밀 가능성이 나온다.
사고 현장을 방문한 김 장관은 이번 사고를 ‘후진국형 철도사고’로 보고 위법사항을 놓고 엄중히 조치하겠다고 강조했다.
강희업 국토부 2차관은 코레일이 과거 사고 이후 매번 재발방지대책을 내놓지만 대형사고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코레일의 안전관리에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사고 직후 15명 규모의 수사전담팀을 꾸린 노동부도 코레일의 산업안전보건법 및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어느 때보다 상세히 들여다보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김영훈 고용부 장관도 “후진적 사고에 관해 강력한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사망자 빈소를 찾아 조문하며 집권여당으로서 사고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겠다고 유가족에게 약속했다.
박홍배 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코레일은 2022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올해 1분기까지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기업 10곳에 포함됐다. 이 기간 코레일에서는 7명의 근로자가 목숨을 잃었다.
특히 2023년 7월 한 사장 취임 이후에도 사망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코레일에서는 한 사장 체제 1년 동안 사망사고를 막는데 성공했지만 지난해 8월 구로역에서 작업차량 작업을 하던 근로자 2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한 사장은 유족들을 만난 자리에서 사망한 근로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발언으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지난 2월에도 동해선 근덕역에서 작업하던 외부업체 근로자 1명이 차량에 부딪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최근 구로역 사고 1주기를 지나며 유가족들이 전면 재조사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또 다른 사망사고를 막지 못했다.
이번 사고는 한 사장이 직접 철도현장 안전사고 예방 상황을 챙긴지 2주일여 만에 발생한 것으로 그간 코레일의 대책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레일은 지난 4일 오전 대전사옥에서 ‘철도현장 산업재해 예방대책 점검회의’를 열고 정부의 중대재해 예방 강화 기조에 따라 안전대책 추진현황 등을 점검했다.
이 자리에서 한 사장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현장의 모든 작업 인력을 대상으로 하는 안전관리시스템을 구축하겠다”며 “전국 철도현장에서 첨단기술을 활용한 선제적 산업재해 예방대책이 추진될 수 있도록 자원과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국토부 장관 임명이 마무리되면서 산하 공공기관장 인사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한 사장의 임기 완주 여부 역시 불확실성이 커지는 국면이다.
▲ 한 사장(가운데)이 4일 대전 동구 사옥에서 열린 '철도현장 산업재해 예방대책 점검회의'에 참석한 모습. <한국철도공사> |
한 사장의 임기는 내년 7월로 현재 11개월가량이 남아 있다.
국토부 산하 공공기관에서는 기존 사장이 사표를 제출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남은 임기가 1년 미만인 사장 가운데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정치인 출신 수장을 둔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도로공사 등에서 먼저 인사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많다.
다만 코레일에서 지속적으로 사망사고가 이어지면서 한 사장도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시각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산업재해 근절 약속을 내세우는 상황에서 최근 중대재해가 발생한 민간 건설사 대표들도 줄줄이 사의를 표명하고 책임을 지려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이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한 사장이 사망사고와 관련해 입장을 내놔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사건 책임자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한 사장이기 때문에 한 사장이 책임져야 한다”며 “정부가 사고를 예방하지 못한 한 사장의 사표를 받아야 하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한 사장은 올해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코레일의 등급을 보통 수준인 C등급으로 올리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임기 2년차부터 사망사고가 발생하며 정부로부터 강도 높은 안전관리 역량 강화 요구를 받고 있다.
올해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한 사장은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관 12곳 가운데 재임 중인 기관장 10명에 포함돼 경고 조치를 받았다. 이에 기획재정부로부터 안전관련 개선계획 제출 요구를 받기도 했다.
코레일 관계자는 “기관장 인사와 관련해 알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장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