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목동에 사는 회사원 이모(51)씨는 출근길에 아내로부터 “제주에 가서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올 것”이란 얘기를 들었다.
“갑자기 무슨 제주냐”는 물음에 1만5천 원짜리 제주 항공권이 있어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로 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최소 2~3박 일정으로 제주도 여행을 생각하기 쉽지만 이처럼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일도 이제 흔한 풍경이 됐다. 저비용항공(LCC) 시대가 활짝 열리면서 치열한 가격경쟁 속에 평일 편도 기준 1만 원대 항공권까지 등장한 덕분이다.
저비용항공업계는 6개사 경쟁체제로 춘추전국시대를 보이지만 제주항공과 진에어 중심의 양강구도로 재편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저비용항공사들이 가파른 성장을 계속 하기에 앞날에 먹구름도 만만찮게 자리잡고 있다.
◆ '춘추전국시대' 속 제주항공 진에어 양강 굳히기
28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올해도 저비용항공사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국내 저비용항공업계는 올해 새로 가세한 에어서울까지 합해 제주항공, 진에어, 에어부산, 이스타항공, 티웨이항공 등 모두 6개사 경쟁체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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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규남 제주항공 사장. |
저비용항공사들은 국내 및 중단거리 노선에서 수송능력을 급속도로 키워 국내선 수송점유율만 해도 3분기에 전체의 절반이 넘는 58.4%에 이르렀다. 노선확대 경쟁에 보유대수도 꾸준히 늘어 최근 100대를 넘어섰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양대 국적 항공사가 독점해온 시장의 파이를 저비용항공사들이 빠르게 잠식해가고 있는 것이다.
저비용항공사들의 가파른 성장세는 국내 및 중단거리 노선을 넘어 장거리노선으로 옮겨질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 계열 저비용항공사인 진에어는 14일부터 두번째 장거리 노선인 호주 케언즈 노선에 신규 취항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인천~호놀룰루 노선으로 장거리 첫 취항에 나서기 시작해 장거리노선 확대전략의 일환이다.
제주항공 등 나머지 회사들도 직접 취항하지는 않더라도 장거리노선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점은 마찬가지다. 이들은 해외 저비용항공사들과 연합군을 꾸려 노선과 서비스 등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장거리 진출을 꾀하고 있다. 인터라인을 확장하는 방식이다.
제주항공은 아태지역 8개 저비용항공사들이 속한 밸류 얼라이언스에 가입해 내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한다. 이스타항공도 21일 업계 처음으로 유플라이 어플라이언스 가입을 통해 인터라인 판매를 개시했다.
저비용항공사들의 비상은 실적에서도 확인된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제주항공은 올해 매출 7400억~7500억 원, 영업이익 620억~700억 원을 낼 것으로 추정된다.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최소 20% 이상 늘어나는 수준이다.
제주항공은 실적 고공행진에 힘입어 내년에도 항공기 도입과 인력채용 규모를 더욱 늘려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제주항공은 내년에 737-800 기종 6대를 추가로 도입해 보유대수를 현재 26대에서 32대까지 늘릴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 조종사와 승무원 채용도 올해 약 400명을 뽑은 데 이어 내년에 600명가량을 더 뽑을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항공과 저비용항공업계 1위 다툼을 벌이고 있는 진에어도 공격적인 경영전략을 펴고 있다.
진에어는 올해 3분기에 매출 2193억 원, 영업이익 402억 원을 냈다. 제주항공이 같은 기간에 매출 2217억 원, 영업이익 382억 원을 낸 것과 비교해보면 매출은 다소 뒤졌지만 수익에서 앞섰다.
진에어가 경쟁포화 상태에 이른 국내선 및 단거리노선에서 벗어나 장거리노선으로 확대를 꾀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주항공과 업계 선두다툼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 유가상승, 단거리노선 과열경쟁 속 성장세 이어갈까
그러나 저비용항공사들이 내년에도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는 데 먹구름도 잔뜩 끼어있다.
서비스보다 가격경쟁에 치중할 수밖에 없어 특가 항공권 판매 등 출혈경쟁도 과열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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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원태 진에어 대표이사 겸 대한항공 대표이사. |
업계 관계자는 “항공기 도입 및 노선 확대 등을 위해 공격적으로 투자에 나서는 상황에서 가격경쟁이 과열되는 만큼 수익성에 주름이 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최근 유가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는 점도 내년 실적에 부담을 안길 요인이다. 싱가포르 항공유는 11월까지만 해도 60달러를 밑돌다 12월초에는 배럴당 62.73달러(갤런 당 149센트)를 넘어섰다.
항공사들은 유가가 배럴당 1달러만 올라도 유류비 부담이 3200만 달러(약 360억 원) 늘어나는 것으로 업계는 추정한다. 이는 대형항공사들도 마찬가지지만 수익구조가 취약한 저비용항공사들의 실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요인이다.
저비용항공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된지 내년이면 10년이 넘는다. 그동안 여러 저비용항공사들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시장에서 퇴출되기도 했다.
제주항공과 진에어가 실적과 수송점유율, 노선 및 항공기 보유대수 등에서 크게 앞서 나가며 양강체제를 굳혔지만 역시 앞날을 장담하기 어렵다. 후발주자들의 도전이 내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강원도 양양을 기점으로 하는 플라이양양이 국내 7번째 저비용항공사로 운항을 시작한다. 플라이양양은 우선 서울과 제주를 오가는 노선을 취항하고 향후 수익성이 높은 지역으로 노선을 확대할 것으로 알려졌다.
포항시도 중국 자본 등과 손잡고 저비용항공사인 포항에어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포항시는 내년 초 법인을 설립한 뒤 국토부에서 면허를 취득하는 대로 내년 9월부터 서울, 제주 등을 오가는 노선을 운용할 계획을 세웠다.
또 대구와 청주 등 공항을 보유한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 저가항공사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레일이 운영하는 KTX와 별도로 수서발고속철도(SRT)가 최근 개통한 것도 부산과 목포행 등 중복노선에서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업계 전문가는 “내년에는 항공 국제여객 시장에서 공급증가율이 수요증가율을 넘어설 것”이라며 “저비용항공사들이 몰린 단거리노선에서 경쟁이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