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 서구 청라동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메르세데스-벤츠 차량 화재가 발생한 지 10개월이 다 되가지만 복구 공사가 늦어지고 있다. 지하주차장 주변 놀이터에 출입통제선이 둘러져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인천] 메르세데스-벤츠 EQE350 차량 화재 발생 10개월여 만에 찾아간 인천 서구 청라동 아파트단지 곳곳은 아직도 복구 공사가 한창이었다.
아파트 단지 한 가운데 위치한 놀이터와 공원 전체에는 출입통제선이 둘러져 있었다. ‘분진 청소 전까지 사용금지’라는 안내문 너머로 보이는 놀이시설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다. 놀이터를 빙 둘러 하교하는 아이들 중에는 놀 곳이 없는 지 벤치에 모여 앉아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한 주민은 "놀이터 복구 공사를 언제 시작할지는 아직 논의조차 하지 못한 것으로 안다"며 답답해했다.
인천 서구 청라동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메르세데스-벤츠 EQE350이 불탄 지 1년이 다 돼 가지만 주민들의 불편은 여전하다.
지하주차장 복구 공사가 끝나지 않아 매일 저녁 주차난을 겪고 있고, 지하주차장 주변 놀이터가 폐쇄되면서 아이들이 뛰어놀 공간도 사라졌다.
주민들에 따르면 보수 공사가 늦어지면서 아직 아파트로 복귀하지 못한 입주민도 있다. 일각에서는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지원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비즈니스포스트 취재 결과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가 인천 청라 화재 사태 지원을 위해 내놓은 45억 원이 사실상 모두 소진됐음에도 지하주차장 복구 공사나 주민 보상 등은 여전히 부족한 것으로 확인됐다.
메르세데스-벤츠 EQE350 차량 화재는 지난해 8월1일 발생했다. 인명피해 없이 8시간 만에 진화됐지만 아파트 5개동 480세대가 화재로 인한 피해를 입었고 이재민도 여럿 발생했다.
주민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었다. 실제 아파트 단지 안 통행로에는 회색 컨테이너가 열 개 남짓 이중으로 늘어서 있었다. 화재청소 전문업체 현수막도 크게 걸려 있었다.
▲ 지하 1층 주차장에는 여전히 ‘복구공사로 인해 출입이 제한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지하 1층 주차장에 누수로 인한 물받이용 비닐을 설치해 놓은 모습(오른쪽). <비즈니스포스트> |
지하 1층 주차장에는 ‘복구공사로 인해 출입이 제한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곳곳에 출입통제선을 둘러놔 한눈에도 주차공간이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아직 배관공사가 완료되지 않았는지 곳곳에서 누수도 발견됐다. 물받이용 비닐이 머리에 닿을 듯이 늘어져 있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실은 공사 관련 미팅 때문에 오가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관리사무소장은 “화재복구 공사 문제로 거의 매일 야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하 2층 주차장에는 퇴근 시간 이전인데도 차량들로 가득했다. 지하 1층 주차장을 사용하지 못하면서 차량들이 지하 2층으로 몰린 것이다.
직접적으로 화재 피해를 입지 않은 주민들도 “저녁 6시만 돼도 주차장에 자리를 찾을 수 없다”며 불편을 호소했다.
각 세대 출입구의 자동문은 강제 개방돼 있었다. 화재 이후 아파트 네트워크 서버가 복구되지 않아 출입문 관리 시스템이 먹통이 된 것이다.
40대 주민 정모씨는 “화재경보기도 아직 작동하지 않는다”며 “임시방편으로 조악한 연기탐지기를 쓰고 있어 불안하다”고 말했다.
화재 얘기를 꺼내자 피해를 입은 주민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불만을 털어놨다. 30대 중반인 이모씨는 “당시 뽑은 지 2주밖에 안 된 새 차가 검게 변했다”며 “개인적 보상이 없다는 게 이해가 안 가고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측에 화가 많이 난다”고 말했다.
화재 당시 차량 한 대가 전소됐다는 70세 주민 이모씨는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에서 1년 동안 제공한 리스 차량을 타고 다니는데 기한이 다 돼 간다”며 “개인 보험금이 모자라 새 차를 살 수가 없는데 앞으로가 걱정이다”고 말했다.
그는 “차량 구입 비용 정도는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쪽에서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는 지난해 8월 차량이 전소된 피해자들에게 E클래스 모델을 1년 동안 무상으로 대여해 주는 지원책을 내놨지만 당시에도 제대로 된 해결책이 아니라는 비판이 많았다.
▲ 아파트 단지 안 통행로에 복구 공사를 위한 회색 컨테이너가 열 개 남짓 이중으로 늘어서 있는 모습. <비즈니스포스트> |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는 지난해 8월 아파트 주민들을 위해 지원금 45억 원을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45억 원 가운데 7%인 3억1500만 원은 재단 수수료로 처리되고 나머지를 집행한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지하주차장 복구 공사는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지원금이 아닌 화재보험금으로 진행하고 있다. 관리사무소장은 주민들에게 일상회복지원금을 제공하려고 하는데 서류 진행 절차가 복잡해 늦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가 ‘아이들과미래재단’을 통해 기부한 45억 원이 진정성 있는 지원인지에 대해서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아이들과미래재단은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가 매년 기부 활동을 진행하고 있는 곳이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는 매년 기부금으로 30억 원 안팎을 집행하고 있다.
전자공시시스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의 기부금은 2019년 31억 원, 2020년 35억 원, 2021년 28억 원, 2022년 29억 원, 2023년 31억 원, 2024년 68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기부금이 두 배 이상으로 증가한 것은 인천 청라 화재 입주민 긴급지원금을 기부금으로 회계 처리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가 매년 30억 원 안팎을 기부했다는 점을 생각할 때 화재 지원을 위해 45억 원을 기부한 것을 제외하면 오히려 순수 기부금은 2024년에 더 줄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45억 원이 지원금인 만큼, 기부금 부풀리기를 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길을 걷던 40대 주민 3명은 인상을 찌푸리고 “45억 원은 화재 복구하기에는 터무니없는 금액”이라고 말했다. 관리사무소장이 얘기한 일상회복지원금 지급도 쉽지 않아 보인다.
아이들과미래재단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메르세데세-벤츠코리아가 내놓은 지원금 45억 원은 이제 거의 다 소진된 단계다”며 “입주민들이 보상에 대해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직접 협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인선·김주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