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정부가 한국과 유럽, 일본을 대상으로 체결한 무역협정에 포함된 LNG 수출 계획을 실현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생산 및 운송 능력에 분명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 텍사스주에 위치한 LNG 저장 설비.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트럼프 정부가 한국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 액화천연가스(LNG) 수출을 대폭 확대하는 무역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현실성은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미국의 LNG 생산 및 공급 능력이 전 세계에 수출하려는 물량과 비교해 태부족한 상태에 그치는 만큼 한국도 지나친 압박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31일 “여러 국가에서 미국산 화석연료 수입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며 “그러나 자국 내 실제 수요나 미국의 생산 역량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럽연합(EU)은 최근 미국과 무역협정을 체결하며 3년 동안 미국에서 천연가스와 석유 등 에너지 7500억 달러(약 1041조 원) 규모를 수입하기로 약속했다.
이는 연간 기준으로 유럽연합이 미국에서 수입하는 물량을 약 3배로 늘려야 하는 수준이다. 또한 미국의 올해 에너지 전체 수출량의 80% 안팎에 해당한다.
미국 트럼프 정부는 자국 내 화석연료 증산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2030년까지 천연가스 생산량을 현재의 두 배까지 확대하는 계획이 포함됐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당장 유럽연합과 체결한 협정에 따라 천연가스 등 에너지를 수출하려면 다른 국가에 수출을 대폭 줄여야만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미국 정부가 최근 한국 및 일본과 잇따라 천연가스 수출을 확대한다는 내용을 무역 협정에 포함한 뒤 타결했다는 점이다.
한국은 미국에서 앞으로 3년 반 동안 1천억 달러(약 139조 원) 상당의 천연가스 등 에너지를 수입하기로 했다.
지난해 전체 수입액은 194억 달러인데 이를 두 배 가까이 늘려야 하는 셈이다.
앞서 일본과 체결한 무역 협정에도 미국은 양국이 공동으로 천연가스 프로젝트에 투자한 뒤 생산 물량을 대폭 확대해 수출을 늘리겠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미국이 단기간에 천연가스를 비롯한 화석연료 생산을 늘리기 한계가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결국 한국과 유럽, 일본에 약속된 물량을 모두 수출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 LNG 해상 운송에 쓰이는 탱커선 모형 사진. |
에너지 전문지 클린테크니카는 천연가스 운송 인프라 제약도 트럼프 정부의 수출 확대 계획에 현실성을 낮추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클린테크니카는 “트럼프 정부는 결국 천연가스 수출에 생산이나 운송과 같은 세부 사항을 고려하지 않았다”며 “정치적 효과만을 노리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투자나 거래 규모를 부풀려 유권자에 상징적 승리를 앞세우는 전략을 이어왔던 만큼 천연가스와 같은 에너지 수출에도 이를 반복했다는 것이다.
이번에 관세 정책과 함께 발표된 세계 각국의 미국산 에너지 수입 계획은 결국 트럼프 1기 정부에서 중국과 맺은 계약을 답습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에 중국과 무역 협상에서 에너지 및 농산물 수출 확대에 합의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미국의 수출 목표가 대부분 달성되지 않아 사실상 아무런 결과도 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런 사례가 이번에도 재현될 수 있다는 의미다.
에너지 경제 재무분석 연구소(IEEFA)는 한국도 결국 미국과 천연가스 장기 공급 계약을 맺기보다 필요에 따라 이를 유연하게 수입하는 단기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권고를 뉴욕타임스에 전했다.
트럼프 정부의 천연가스 수출 계획은 세부 내용이 부족하고 현실성도 낮기 때문에 한국이 서둘러 대량의 공급 계약을 맺어야 할 이유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의 1천억 달러 규모 에너지 수입 계획은 미국의 생산과 공급, 운송 능력 측면에서 한계를 고려할 때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한국이 과도한 LNG 수입에 따른 재정 부담이나 공급과잉, 온실가스 배출 증가 등 문제를 지나치게 우려하지 않아도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 트럼프 정부가 풍력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지원 정책을 대폭 축소한 만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에서 자국 내 천연가스 수요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도 제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에너지 수출 확대를 세계 각국과 무역 협상에서 핵심 성과 가운데 하나로 앞세우고 있다. 실제 공급이 대폭 증가하지 않더라도 목적은 충분히 달성한 셈이다.
데이비드 골드윈 미국 전 에너지부 관리는 뉴욕타임스에 “트럼프 대통령의 에너지 수출 약속은 명확하지 않고 강제성도 없다”며 “이는 결국 정치적 수단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