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가상자산 투자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잇따라 규제 완화 공약을 내놓고 있다.
이는 청년층 비중이 높고 규모가 커진 가상자산 시장을 새로운 '표밭'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과거에도 공약들이 실제 이행되지 않았던 만큼 이번에도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는 회의적 시각이 나온다.
▲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가상자산 투자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잇따라 규제 완화 공약을 내놓고 있다. 비트코인 그래픽 이미지.
6일 정치권 움직임을 종합하면 6·3 조기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경쟁적으로 가상자산 공약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28일 '가상자산 7대 육성 과제'를 발표하며 이를 대선 공약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구체적으로 △1 거래소 1 은행 체제 폐기 △기업·기관 가상자산 거래 제도화 △가상자산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거래 연내 허용 △토큰증권(STO) 법제화 △스테이블코인 규율 체계 도입 △디지털자산 육성 기본법 제정 △획기적 과세 체계 마련 △글로벌 가상자산 산업 허브 육성 등을 약속했다.
또 공약의 이행 상황을 점검·보완하기 위해 다음달 3일 선출될 대통령 후보 직속으로 '가상자산특별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이는 시장이 오랫동안 요구해 온 규제 완화책이 대거 담겨 있다는 점에서 업계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특히 기업 가상자산 거래 허용과 비트코인 현물 ETF 거래 가능성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민주당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도하는 '디지털자산 기본법'이 업계 실무진과 전문가 의견을 반영한 2차 리뷰를 거치며 국회 발의를 앞두고 있다.
민주당은 이르면 이달 안에 법안을 공식 발의할 것으로 보인다. 해당 법안은 가상자산 ETF 도입과 디지털자산 위원회 설치, 스테이블코인 인가제 발행 허용 등 내용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양당에서 나오는 공약들은 대체로 규제 완화를 통한 가상자산 시장 활성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는 국내 가상자산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시장 참여자들이 새로운 '표밭'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특히 가상자산 투자자 가운데 청년세대 비중이 높은 점을 고려하면, 양당의 공약은 이번 대선에서 스윙보터가 될 20·30대 표심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1일 발표한 '2024년도 지급결제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가상자산 투자자 수는 1825만 명에 달한다. 투자자 상당수는 20·30대다. 중도 확장이 이번 대선의 가장 큰 화두인 만큼 대선 승리를 위해 가상자산 정책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공약들이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선거철에만 반짝 등장하는 '한철 장사'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선거철만 되면 투자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한 가상자산 공약이 쏟아졌다.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도 시장 육성을 뼈대로 하는 비슷한 공약들이 나왔지만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2022년 20대 대선 당시에도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20·30 유권자를 잡기 위해 가상자산 정책을 앞다퉈 내놨다.
▲ 윤석열 전 대통령이 4월21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혐의 형사재판 2차 공판에 출석해 피고인석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투자수익 비과세 한도 5천만 원 △거래소공개(IEO) 도입 후 가상자산공개(ICO) 허용 △디지털자산 기본법 제정·디지털산업진흥청 설립 △대체불가토큰(NFT) 거래 활성화·디지털자산시장 육성 등을 공약한 바 있다.
하지만 공약 가운데 시행된 것은 가상자산기본법 1단계(이용자보호법)가 유일하다. 이마저도 2023년 터진 김남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태가 없었다면 1단계도 제정되지 못했을 것이란 평가가 많다.
김남국 전 의원은 지난 2022년 60억 원이 넘는 코인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가상자산 거래 실명제'로 불리는 트래블 룰(Travel Rule)이 시행 직전에 전량을 인출해 투자 및 보유 의혹에 휘말렸다. 이 사건은 국회 차원의 제도화 필요성을 급속도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치러진 제22대 총선에서도 양당은 공통적으로 △비트코인 현물 ETF 발행 및 거래 허용 △가상자산 2단계 법안 추진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 가운데도 실현된 공약은 없다.
이 밖에 국민의힘은 과세 시점을 연기하는 방안을 총선 당시 공약으로 내놨고 더불어민주당은 총선 이후 혼선을 거듭하다 지난해 12월 가상자산 과세를 2년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이마저도 정책적 결단보다는 투자자들의 표심과 직결되기 때문에 결정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흐름이 이렇다보니 결국 이번에 등장한 공약들도 사실상 '재탕'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부분은 지난 대선부터 반복적으로 등장한 공약으로, 선거철마다 비슷한 공약이 발표되지만 실제 실현된 공약은 적다는 것이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나눈 통화에서 "'1 거래소 1은행 체제 폐기'를 제외하면 사실상 이미 오래 전부터 업계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던 것들"이라며 "이것들이 왜 이제와서 '공약'으로 다시 포장되는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미 수 차례 '공염불'에 그친 경험이 있지만 업계는 이번에도 일단 기대를 걸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공약이 실행될 것이라는 기대보다는 가상자산 업계를 '화두'에 올려주시는가 보다 하고 있다"면서도 "정치권에서 나서서 빨리 해야 한다고 추진력을 넣어주면 탄력을 받기 때문에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성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