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일본 SBI홀딩스를 장기적 파트너로 맞이하며 지배구조 개편에 속도를 내는 동시에, 디지털 전략에서도 장기 협력 기반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약 7년 동안 지속된 풋옵션 분쟁이 해소되는 시점에서 이뤄진 SBI홀딩스 지분 확대 발표는 단순 외부 자본 유입을 넘어 신 회장의 지주사 전환에 힘을 실어줄 ‘우군’ 확보로 풀이된다.
▲ 신창재 교보생명 대표이사 회장(사진)이 일본 SBI홀딩스와 손잡고 지주사 전환과 디지털 역량 강화라는 숙원사업 추진에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
18일 일본 SBI홀딩스는 교보생명 주식 취득 등을 공시했다. 주식 취득 계약 체결일은 전날인 17일로 잠정 공시됐으며 계약 효력 발생일은 미정이다.
취득가액은 계약 조항에 따라 미공개됐다. 거래 상대방도 이날 기준 공개되지 않았지만 IB업계에서는 아직 엑시트(자금 회수)하지 않은 교보생명 재무적투자자(FI) 지분 가운데 일부를 끌어왔을 것으로 바라본다.
이번 주식 취득이 각 나라 금융당국에서 최종 승인되면 SBI홀딩스는 최종적으로 교보생명 지분 약 20%를 보유하게 된다. 신 회장과 특수관계인(모두 합쳐 36.37%) 다음으로 많다.
이번 지분 취득 결정에는 교보생명과 SBI홀딩스의 오랜 협업 관계뿐 아니라 신 회장과 기타오 요시타카 SBI홀딩스 회장의 개인적 친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각 나라를 방문할 때 따로 시간을 내 만날 정도로 각별한 사이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신 회장의 차남 신중현 교보라이프플래닛생명 디지털전략실장은 일본 SBI그룹 계열사 SBI스미신넷뱅크 등에서 근무하며 경력을 쌓았다.
이에 보험업계와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은 SBI홀딩스 지분을 ‘신 회장 측’으로 해석한다.
신 회장이 교보생명 지주사 전환을 준비하는 시점에서 SBI홀딩스와 같은 든든한 ‘우군’ 확보는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교보생명은 비상장 상태에서 지주사 전환을 추진하는 만큼 주주들의 의결권 구조가 지배구조 안정에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비상장사는 상장사보다 공시 의무도 적고 지분 구조도 상대적으로 폐쇄적이다. 또 상장사보다 주식 매매가 어려운 특성상 소액주주나 외국인 투자자 비중이 낮고, 그만큼 의결권을 강력히 행사하려는 소수 주주가 지분을 차지하는 경향이 있다.
즉 우호적인 SBI홀딩스가 주요 주주가 되면 신 회장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는 셈이다.
신 회장이 오랜 시간 재무적 투자자(FI)들과 갈등을 이어온 만큼 SBI홀딩스의 교보생명 지분 취득은 외부 자본을 장기 협력 기반을 갖춘 전략적 파트너 쪽에 끌어왔다는 시각도 나온다.
SBI홀딩스는 교보생명 친화적 성향을 가졌음과 동시에 단기 수익을 노리는 재무적투자자(FI)보다 안정적으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상대라는 해석이다.
신 회장은 약 7년 동안 ‘풋옵션’ 가격 행사를 놓고 어피니티컨소시엄 등 FI와 분쟁을 벌여왔다. 이는 지금까지 교보생명 지주사 전환 발목을 잡은 요인으로 꼽힌다.
해묵은 갈등은 지난해 말부터 서서히 해소돼 올해 3월 분쟁 중심에 있던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 등이 엑시트하며 실질적으로 소강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그리고 3월 어피티니에쿼티파트너스가 처분한 지분 9.05%를 매입한 게 바로 SBI홀딩스였다.
신 회장과 SBI홀딩스의 인연은 2007년부터 시작됐다. SBI홀딩스는 당시 교보생명 지분 약 5%를 취득 뒤 2009년 정리했다.
하지만 여기서 연이 끊어지지 않고 두 회사는 2019년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컨소시엄을 함께 추진하는 등 협업을 이어왔다.
2017년엔 SBI홀딩스 계열사 SBI소셜렌딩과 교보생명의 일본 자회사 교보생명애셋매니지먼트(KLAM)재팬이 재생에너지 투자 협력을 맺기도 했다. 당시 KLAM재팬 대표였던 원형규는 현재 교보생명 헬스케어 자회사 교보다솜케어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 교보생명은 일본 SBI홀딩스와 우호적 관계를 이어왔다. |
특히 2024년 7월 교보생명과 SBI홀딩스는 디지털 헬스케어와 토큰증권 공동 추진 등 디지털금융 분야 협력 강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를 고려하면 신 회장의 핵심 전략 가운데 하나인 ‘디지털’과 헬스케어 사업에도 탄력이 붙을 수 있다.
교보생명과 SBI홀딩스는 이미 2022년에도 동남아시아 벤처캐피탈(VC) 투자를 목표로 한 펀드를 결성하고 운영하는 등 VC 및 핀테크 분야에서 협력을 지속했다.
SBI홀딩스 역시 교보생명 지분 매입을 알리는 공시에서 “교보생명은 디지털 금융 등 여러 영역에서 오랜 기간 파트너십을 맺어온 회사다”고 말하며 이번 지분 인수도 협업 강화와 사업 확장의 연장선임을 시사했다.
이러한 여러 요소를 고려했을 때 교보생명의 지주사 전환을 목표로 하는 신 회장이 SBI홀딩스와 손을 잡은 것은 단순한 재무적 협력 이상의 신호로 읽힌다.
신 회장은 2023년 신년사에서 “다양한 데이터 확보와 활용 역량은 디지털 시대에 기업 혁신과 성장의 핵심 경쟁력이다”라 말했다. 2024년 신년사에서는 “혁신을 통해서만 보험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신사업의 성공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며 디지털 혁신을 추구해 왔다.
올해 신년사에서도 “시장 환경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고객 가치 중심 비즈니스 혁신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