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타이어 업계가 전기차 전용 타이어 등 고성능 타이어를 만들기 위해 AI 기술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사진은 금호타이어의 고성능 전기차 타이어 '마제스티 X 솔루스'. <금호타이어>
[비즈니스포스트] 전기차에 최적화된 고성능 타이어 개발이 타이어 업계의 새로운 경쟁 포인트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세계적으로 전기차 판매량이 주춤하는 캐즘(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정체) 현상이 심화하고 있지만, 3~4년 전부터 판매돼온 전기차의 타이어 교체 시기가 다가오면서 전기차용 타이어 수요는 늘고 있는 추세다.
20일 타이어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타이어 업계는 전기차 전용 타이어 등 고성능 타이어를 개발하기 위해 인공지능(AI) 기술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전기차 타이어는 일반 타이어에 비해 내구성, 소음 저감, 회전 저항 등을 강화한 설계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기존 타이어에 비해 개발에 시간과 비용이 더 들어간다.
하지만 전기차용 타이어는 일반 타이어보다 교체 주기가 1년 가량 빠르고, 가격도 15~30% 더 비싸다. 타이어 제조사 입장에선 전기차용 제품을 판매하는 게 훨씬 더 이익이다.
지금은 수요가 정체돼 있지만, 결국 전기차로 전환하는 게 대세가 될 것이란 게 지배적 관측이다. 이에 따라 타이어 제조사들은 전기차 타이어 제조 기술력을 높이는 것이 미래 경쟁력을 가를 것으로 판단하고, AI 기술을 도입해 품질을 높이는 한편 제품 개발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데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금호타이어, 넥센타이어 등 국내 타이어 3사는 올해 상반기 연구개발비로 전년 동기 대비 29% 늘어난 모두 2453억 원을 투자했다.
전기차 타이어는 일반 타이어보다 개발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모돼 AI 기술 도입이 필수가 됐다. AI 기술로 기존 복잡한 개발 과정을 혁신해 수익률을 극대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타이어는 타이어 개발을 포함한 연구·개발 업무 전반에 AI 기술 도입했다. 회사는 AI를 활용한 타이어 컴파운드 물성 예측 모델인 ‘버추얼 컴파운드 디자인(VCD) 시스템’을 최근 개발했다.
▲ 한국타이어의 고성능 전기차 전용 타이어 '아이온 에보'(iON evo). <한국타이어>
컴파운드는 타이어 제조를 위해 원재료를 혼합해 만든 고무 복합체다. 타이어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소재로 수십 종의 원료를 혼합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예산과 시간이 투입된다.
VCD 시스템은 컴파운드의 특성을 예측해 시제품 생산과 테스트를 진행하지 않고도, 최적의 원재료 조합법과 설계법을 찾아내도록 도와준다.
VCD 시스템을 이용하면 실 주행 테스트를 진행하지 않고도, AI 분석 시스템에 접속하면 1분에 약 10만 건의 조합법을 비교한 뒤 그 가운데 타깃 성능에 도달하기 가장 좋은 조합법을 찾아준다. 이를 통해 컴파운드 개발 기간을 최대 50%까지 단축한다.
금호타이어는 빅데이터와 AI 기술을 타이어 개발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회사가 도입한 기술은 '디지털 트윈'으로 현실 속 제품 개발 과정을 디지털 공간에서 그대로 구현, 제품 개발 기간 단축하고 개발 효율을 끌어올린다.
이 시스템은 기존 축적된 시험 기반의 빅데이터를 AI가 학습하도록 해, 새로운 사양의 컴파운드 성능을 예측한다. 회전 저항과 제동, 마모, 승차감, 소음 진동 등 주행 성능을 만족시키기 위해 제품 컴파운드와 구조·형상 등을 최적으로 설계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타이어 설계 인자와 시험 결과를 빠르게 적용할 수 있도록 빅데이터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넥센타이어는 최적의 전기차 타이어 설계안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기간을 하루로 줄이는 개발 혁신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회사는 설명 가능한 인공지능(XAI)과 3D 프린팅 기술 등 첨단 기술 활용해 이같은 연구개발 시스템을 만들 계획이다. XAI란 AI가 스스로 내린 판단에 대해 추론 이유와 근거까지 사용자에 제공하는 AI다. 다양한 정보를 제공받아 타이어 설계 효율을 극대화하고, 타이어 개발자가 요구하는 성능에 부합하는 최적의 구조와 설계를 제안한다.
제안한 설계를 바탕으로 가상 시스템 내 타이어 모델을 생성하고, 가상 환경에서 제품 성능을 평가해 조기에 고품질의 타이어를 개발할 수 있게 한다. 회사는 2026년부터 이 기술을 타이어 개발 현장에 도입할 계획을 세웠다.
회사는 또 업계 최초로 플랫폼 형태의 AI 기반 타이어 제품 검사 자동화 시스템을 최근 구축했다.
AI 기반 제품 검사 자동화 시스템은 기계가 카메라로 시각 정보를 인식하고, 분석하는 기술인 머신비전 방식의 비파괴 검사 장비를 대상으로 적용, 기존에 사람 시각에 의존하던 검사 이미지 판독을 AI가 오류가 생기지 않도록 도와주는 시스템이다. AI가 학습하고 실무에 적용하는 과정까지 프로세스를 자동화해 시스템 실용성을 높였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 넥센타이어 직원이 AI 제품 검사 자동화 플랫폼을 이용해 전기차 타이어 제품의 결함 유무를 판정하고 있다. <넥센타이어>
또 단순 머신러닝 자동화를 넘어 AI 모델의 라이프 사이클 전체를 최적화하고 자동화하는 '머신러닝 운영 관리'(MLOps) 기술과 플랫폼형 시스템을 타이어 업계 최초로 도입했다.
그 결과, 기존 방식으로는 하나의 검사 장비로 6~12개월까지 걸리던 딥러닝 모델 생성 기간을, 단 이틀 만에 끝낼 수 있게 됐다. 또 플랫폼형 시스템으로 새 공장 또는 설비에도 즉각 활용할 수 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회사 관계자는 “내년 AI 관련 연구개발비를 증액하고, 관련 연구 조직을 강화하는 한편 추가 AI 개발 인력을 보강할 예정”이라며 “기존 인력에 대해서도 AI 개발 능력을 높이기 위해 상급 학위 교육기관 교육 지원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성근 기자